항목 ID | GC0173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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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興邑圖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4[중동 28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명환,박범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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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흥읍도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4년 5월 17일 - 함흥읍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4월 21일![]() |
현 소장처 |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4[중동 284-1]![]() |
성격 | 고지도 |
소유자 |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
관리자 |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함경도 함흥부 읍성의 전경을 그린 회화식 지도.
함흥읍도는 조선 시대 함경도 감영의 소재지였던 함흥부의 읍성과 그 주변 일대 전경을 담은 회화식 지도이다. 2010년 공주 능성 구씨(綾城具氏) 첨추공(僉樞公)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지도를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기탁하였다. 지도의 제작 시기와 제작자는 알 수 없다. 능성 구씨 공주 입향조는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16세손인 첨추공 구득원(具得源)[1576~1665]으로 1620년(광해군 12)을 전후하여 의당면 중흥리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구득원의 증손자 구칙(具侙)[1680~1754]이 1745년(영조 21) 회령 도호부사(會寧都護府使)에, 구재중(具載重)[1770~1832]이 1818년(순조 18) 장진 도호부사(長津都護府使)에 임명된 것으로 보아 이들과 관련성이 있는 유물로 추정될 뿐이다. 지도를 기탁할 당시에 족자의 장황이 훼손되고 화면의 오염과 가로 및 세로 꺾임이 심하였다. 이후 보존 처리 후 2014년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함흥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함경도의 중심이 되는 고을이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와 그 선조들이 설던 곳이라 하여 전주와 함께 풍패지향으로 일컬어졌다. 왕업의 터전을 닦은 왕실의 고향이라는 의미인데, 태조, 즉 조선왕조의 고향이 되는 셈이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함흥은 조선시대 북방의 국경 지역으로서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함흥읍도는 한 폭의 족자로 채색화이다. 크기는 가로 68.2㎝, 세로 107.8㎝이다. 함흥읍도에는 읍성의 문루(門樓)와 성벽(城壁), 해자(垓字)가 자세히 표현되어 있으며, 읍성 내부에 관찰사가 집무하던 선화당(宣化堂), 객사(客舍), 풍패관(豊沛館), 중군(中軍)이 머물던 중영(中營) 등 주요 관청도 찾아볼 수 있다. 또 읍성 서쪽에 위치한 성천강(城川江)과 만세교(萬歲橋)·장제(長堤), 북동쪽에서 읍성을 내려다보는 반룡산(盤龍山), 읍성 내외에 위치한 많은 민가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성곽 시설이 매우 구체적인데, 북문인 기북문(岐北門), 서문인 풍서문(豊西門), 남문인 운룡문(雲龍門), 동문인 패동문(沛東門)을 비롯하여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킨 치(雉) 위에 북산루(北山樓), 낙민루(樂民樓), 무검루(撫劍樓), 명검루(鳴劍樓), 간검루(看劍樓), 의월루(倚月樓) 등의 포루(鋪樓)가 잘 묘사되어 있다. 그 외에도 구천각(九天閣), 집승대(集勝臺), 만갑정(萬甲亭), 종각(鐘閣), 장사정(壯士亭) 등이 성곽에 배치되어 있다.
성의 서쪽으로 가면 서문과 남문 사이에 본부(本府)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함흥부사가 머물던 관청이다. 함흥읍성 안에 관찰사와 머무는 감영과 함흥부 관아가 함께 있었는데 이는 공주에 충청감영과 공주목 관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서문인 풍서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함흥을 지나 동해로 흐르는 성천강이 나오고 태조가 이름 붙였다는 만세교가 보인다. 다리 앞으로는 1741년에 세워진 박문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에 유행하던 읍성도의 전형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회화식 지도이다. 함흥성 내부의 주요 지형·지물을 상세히 표현하고 명칭을 병기하여 제작 당시 관찰영(觀察營)과 본궁(本宮)의 각종 전각과 이름난 누대(樓臺)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만세교를 건너는 사람과 말의 모습을 비롯하여 나무 한 그루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예술적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