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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광복루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번지의 공산성 안에 있다. 공산성은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110m고,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85m인데, 광복루는 동쪽에 있는 해발 11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鎭南樓)에서 동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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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루(門樓). 진남루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번지의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다. 공주 시내의 중동 교차로에서 웅진로를 따라 공산성 회전 교차로 방면으로 향하는 길의 우측에 남문길이 있는데, 남문길의 끝에서 진남루로 진입할 수 있다. 공산성 전체를 놓고 보면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정자인 쌍수정(雙樹亭), 동쪽으로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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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서 금강을 가로질러 신관동의 전막으로 연결되는 철교. 공주는 예로부터 서울과 전라도를 연결하는 육로·수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충청감영이 공주에 설치되면서 교통·행정·군사적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이때 공주 지역에서는 금강을 건너기 위해 주로 나무로 만든 배를 연결하여 그 위에 판을 깔아 만든 ‘주교(舟橋)’, 즉 배다리를 이용하였다.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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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앞 구 금강철교 동쪽에 있던 배를 엮어 만든 다리. 배다리는 과거에 하천에서 배를 엮어 다리로 이용하던 것이다. 배다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후기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위해 한강에 설치한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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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개항기 산신도. 공주 상세동 산신도는 1896년(고종 33) 화주(化主) 신양선(申良善)이 공주시 유구읍 상세리 상세동 마을의 산제당 건립과 함께 산신도 제작을 주도하여 봉안한 산신 탱화이다. 공주 마곡사 금어(金魚)[불화를 그리는 스님]인 금호당(錦浩堂) 약효(若效)가 그린 것으로, 태화산 상세동의 산제당 건립과 함께 이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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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집을 짓기 전 집터를 다지면서 하는 민속문화. 공주 의당 집터다지기는 공주 의당면 일원에서 집을 지으면서 했던 노동과 제의, 놀이 성격이 결합된 민속문화이다. 공주 지역에서 집터를 다지는 일은 땅을 다지는 노동을 넘어서 지신(地神)에 대한 숭배와 일체화 과정의 제례행위였다. 이는 인간과 지신과 땅이 하나 되어 집터다지기라는 소리로 결실을 보게 되는 이 노동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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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귀의 묘. 공주시청에서 송산리 고분군을 지나 소정펄길을 타고 약 7.95㎞ 가면 이인면 만수리가 있다. 만수리 아랫마을의 남서쪽 계성산 능선에 연평부원군 이귀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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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서양식 주거용 건물.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미국인인 샤프 선교사가 설계하여 1921년 10월에 중국인 목수가 시공한 주거 시설로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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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노응환·노응탁·노응호 3형제의 생가 터. 노응환(盧應皖)[1555~1592], 노응탁(盧應晫)[1560~1592], 노응호(盧應皓)[1574~1592] 등은 본관이 만경이다. 이들은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주목사였던 중봉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공부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이 의병을 모아 왜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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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에 전승되는 상여소리.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 연반계는 조선 후기 이래 상례를 주관해 온 자치 조직이다.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에는 초상이 나면 임종부터 출상(出喪)까지 사흘 동안 주민들이 모두 나서 상가를 돕는 전통이 있다. 이때 연반계원을 2개 조로 나누어서 상여를 메는 일과 봉분을 조성하는 산역(山役) 등 제반 상례를 주도적으로 처리하였으며, 상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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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효자 향덕의 정려비. 향덕은 조선 세종 대에 간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효자로서 가장 먼저 수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향덕의 효행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나타난다. 『삼국사기』의 「열전」에 따르면 향덕은 웅천주(熊川州) 판적향(板積鄕)[공주시 소학동 일대] 사람으로 아버지의 이름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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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태봉산에 있는 조선 중기 숙종대왕의 태실비 2기. 숙종의 태실과 관련한 기록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태봉등록(胎封謄錄)』에 나타난다. 1661년(현종 2) 숙종이 태어났을 때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장소로는 공주, 청주, 춘천이 후보로 올랐고, 그 가운데 공주로 결정되었다. 안태사(安胎使) 여이재(呂爾載)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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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장되어 있는 1507년(중종 2)과 1625년(인조 3)에 간행된 공신 녹권. 공주순천박씨공신녹권2책은 계룡면 양화리에 세거하는 순천박씨가에 소장되어 있는 『십공신회맹록(十功臣會盟錄)』1책과 『정사원종공신녹권(丁巳原從功臣錄券)』1책 등 2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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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碑石)의 받침돌. 조선 16대 왕 인조의 제5남 숭선군(崇善君)[? ~1690] 이징(李徵)의 묘가 1766년(영조 42)에 이인면 오룡리로 이장되어 서북쪽 마을 안 골짜기에 있다. 숭선군은 인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서 태어나 1646년(인조 24) 숭선군에 봉해졌다. 효종이 즉위한 후 1651년(효종 2) 숭선군을 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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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이유태가 여생을 보낸 장소. 공주이유태유허지는 초려 이유태(李惟泰)가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이유태는 현종·숙종 대의 문인으로 특히 현종 때 학덕이 높은 유학자로 크게 활약하였다. 1675년(숙종 1) 복상 문제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의 배척을 받아 영변에 유배되었다. 유배 이후 중동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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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에서 정월 대보름날 남·여 장승을 합궁시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탄천장승제는 송학리의 소라실에서 마을의 안녕과 길일을 축원하는 마을 축제이다. 특히 축원에 의하면 칠성(七姓) 즉 공주의 토성(土姓)이 그 대상인 것으로 보아 단순히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 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주 지역과 관련된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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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국립 중등 교육기관. 공주향교는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며,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공주향교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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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명(행적)·연대 및 건립 경위와 주체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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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시산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 큰 다리를 건너 국도 32호선을 따라 유구 방면으로 가다 보면 유구읍소재지 직전에 만년교가 있다. 만년교를 지나 100m 정도 유구읍 쪽으로 가면 왼쪽에 노동리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4.3㎞ 정도 가면 노동리에 이른다. 김시산 정려 충신문은 마을회관 뒤쪽으로 1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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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출생지. 김옥균선생유허는 조선 말기 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옥균[1851~1894]이 태어난 곳이다. 김옥균은 본관이 안동, 자는 백온(白溫), 호는 고균(古筠) 또는 고우(古愚)로 아버지 감역(監役) 김병태(金炳台)와 어머니 은진송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부터 1853년(철종 4) 천안으로 이사하기까지 약 3년 동안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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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김종서의 생가지. 김종서유허지가 있는 의당면 월곡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자 명장이며 절의인으로 이름 높은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의 생가 터와 김종서를 배향하던 사우 요당서사(蓼塘書社)가 있던 마을이다. 김종서는 천태산 아래 하월곡리에서 태어났다. 죽은 후 이곳 천태산 아래에 묻었다가 장기면 대교리 밤실로 이장하였다. 이 마을의 비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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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해(金澥)와 아들 김경원(金慶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5㎞ 정도 가면 연미산이 있으며, 이 산을 지나면 도로 오른쪽으로 우성면 신웅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더 가면 현재는 폐교된 청산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 직전 다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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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노숙의 정려.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다가 목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길을 따라 3㎞ 정도 더 가면 우성면 동곡리가 나온다. 동곡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동곡리 조왕골이 있는데, 노숙정려는 이 마을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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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동복오씨 3대 열녀의 정려. 동복오씨삼위효열정려(同福吳氏三位孝烈旌閭)는 1869년(고종 6)에 건립된 것으로, 오횡(吳竑)[1606~1626]의 처 남원윤씨(南原尹氏), 오정창(吳挺昌)[1634~1680]의 처 해주정씨(海州鄭氏), 오시원(吳始元)[1658~1673]의 처 진주유씨(晉州柳氏)의 정려를 모시고 있다. 1997년 6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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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아랫사송정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사송정은 공주시 월송동 금강 인근에 자리한 정자이다. 현재 공주 사람들은 사송정을 공산이씨(公山李氏)와 연관된 정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송정이 위치한 아랫사송정에 충절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기록인 『희암선생집(希菴先生集)』을 보면 사송정은 여주이씨 이상의(李尙毅)[1560~1624]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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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진 장소. 1919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정안면에서도 여러 인물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전국에서 일어나는 만세 운동의 소식을 듣고 석송리를 비롯한 주변 마을 사람 수백 명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석송3·1만세유적지는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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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 안말에 있는 정자. 석송정은 인조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내려오는 길에 잠시 쉬어 갔던 곳이다. 당시에는 소나무 아래 바위만 있었는데 지방 유림들이 인조가 머물다 간 것을 기념하여 정자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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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곳을 감영이라고 하는데, 감영에는 다양한 업무 기능을 하는 각종 건축물이 건립되어 있었다. 감영에는 감사본아(監司本衙)로 상방, 청옥, 행랑, 각종 누고, 도사청, 부관청, 육방청 등 큰 규모의 건물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감사의 행정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선화당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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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충신 신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큰다리를 건너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9㎞를 가다 보면 신풍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들어서게 된다. 경계를 지나 다시 1.5㎞ 더 가면 냉정리와 영정리의 경계가 나오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예산 쪽으로 100m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으로 신할의 사적비가 보인다. 신할 충신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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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여 공산성 내에 머물렀다. 당시 인조가 머물던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인조는 두 나무 사이를 거닐며 이괄의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크게 기뻐하며 두 나무, 즉 쌍수(雙樹)에 정3품의 품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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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당시 삼도소모관(三道召募官)과 삼도선유관(三道宣諭官)을 역임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사를 조직하였다. 그는 전쟁 중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한양 수복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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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안동권씨의 정려. 안동권씨는 동흥군 권상의 5세손인 권세헌의 딸로, 덕이 높고 행동이 정숙하며 말수가 적은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강화최씨 집안의 최백복[1733~1753]에게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며 효부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남편 최백복이 1753년(영조 29)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안동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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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규대사의 묘.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당(騎虛堂), 속성은 박씨이다. 공주 출신으로 갑사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영규대사는 선장(禪杖)으로 무예를 익히기도 했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유학자 출신의 의병장인 조헌과 합세하여 1592년(선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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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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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오대붕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도로 오른편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다. 오대붕 정려는 효포초등학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500m 정도 들어간 곳에 동북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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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와 묘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숙종 대 남인 세력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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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우금치 전투에서 사망한 동학농민군의 시체를 처리하였다고 알려진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못. 공주시 교동에 있는 하고개를 넘어서면 무령로와 왕릉로가 만나는 모서리에서 ‘송장배미’로도 불리는 ‘용못’을 만날 수 있다. 1894년(고종 6) 가을 동학 농민군 최후의 전투였던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밀린 농민군이 무수히 죽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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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우공로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 우공로(禹恭老)는 본관이 단양으로 단양우씨는 공주의 토착 성씨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현보이고 할아버지는 개성부 유휴사 우홍부이다. 우공로는 1481년(성종 12) 만경현령으로 재임 중 사망하였다. 이후 우공로는 1498년(연산군 4)에 가선대부로 증직되었다. 우공로 묘비는 1499년(연산군 5) 8월 15일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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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원산정은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인물인 박의립[1556~1616]에 의해 창건되었고, 의 아들 5형제가 살았던 곳이다. 따라서 원산정의 건립 연대는 박의립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립 후 사적은 정확하지 않다. 건립 이후 언제, 어떤 이유로 정자가 없어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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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따르면, 월성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봉수 체계에서 중요한 중계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월성산 봉수대는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의 정보를 서울로 전달하는 제5로 직봉(直烽) 노선에 포함된 봉수대로, 남쪽의 논산 노성산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정안면 북계리 고등산 봉수대로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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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효자 윤빈의 정려. 윤빈은 칠원윤씨 윤수(尹脩)와 단양우씨 사이에서 태어나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심과 우애가 깊어 주위의 칭찬을 자주 받았다. 이후 봉림대군의 사부를 지냈으며, 1650년(효종 1) 봉림대군이 즉위하자 서전(書傳), 강목(綱目), 주자의 주차(奏箚) 중 치국의 도와 관련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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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중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장군석. 장군석은 조선 후기의 구선익이 부친 구득원(具得源)의 묘소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석물이다. 그러나 부친의 품계(品階)가 이품(二品)에 머물러 석의(石儀)를 갖출 수 없게 되자 현재의 장소인 의당면 중흥리에 그대로 세워 둔 것이라 전한다. 이후 구선익은 자신의 무덤에도 석의를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비록 묘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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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세 쌍의 효열 정려. 전의이씨삼위효열정려는 1729년(영조 5)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李延會)[1648~1690]와 1736년(영조 12)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의 처 열녀 청송심씨, 그리고 1724년(영조 1)에 명정을 받은 이진성(李晋聖)[1668~1708]의 효행과 절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전의이씨삼위효열정려는 2012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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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및 효자 정분·정지산의 정려.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타고 14㎞ 정도 가다 보면 사곡면소재지가 나온다. 호계리는 면소재지에서 지방도 629번을 따라 북쪽으로 0.5㎞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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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의 서문 입구에 모아 둔 공적비 중의 하나. 제민천 영세비는 공산성 서문 입구에 있는 43개의 비석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민천 영세비는 공주의 제민천과 제민천에 놓였던 교량의 중수에 대한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제민천은 금학동의 남쪽 지막골에서 발원하여 공주시내를 관통하여 북으로 흘러 정지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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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인 조견을 모신 사당. 조견(趙狷)[1351~1425]의 자는 거경(巨卿), 호는 송산(松山)이다. 시중 조인규(趙仁規)의 증손자이고,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다. 조선 전기 영의정까지 오른 조준(趙浚)의 동생이기도 하다. 조견은 어릴 때 출가하여 여러 절의 주지를 하다가 30세가 넘어 환속하였다. 이후 벼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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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익항의 정려. 최익항(崔益恒)의 자는 원구(元久)이다. 1684년(숙종 10) 최준(崔浚)[1656~1722]과 진주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성품이 매우 착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주위에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해, 부친이 병환 중에 배[혹은 감]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한겨울이라서 산속을 헤매도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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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청도 최초로 세워진 사액 서원. 공주시청에서 대전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8㎞ 달리면 공암이 나온다. 대략 27분여의 시간이 소요되며, 충현서원은 마을의 중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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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주희의 초상. 주희(朱熹)[1130~1200]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주자(朱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살아생전 초상화를 여러 차례 그리도록 했으며, 죽은 후에는 후학들이 그의 초상을 보고 그의 업적을 찬미하였다.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명나라 대부터는 『주자대전(朱子大全)』이나 『성현도(聖賢圖)』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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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공주시 옛 감영 터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의 정문. 포정사 문루는 원래 충청감영의 옛터인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후 옛 공주군청 부근으로 이건되었다가 현재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구 국립공주박물관] 인근에 복원되어 선화당, 동헌 건물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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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자.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7㎞ 정도 달리면 사곡면사무소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더 가면 예산과 마곡사로 통하는 사곡면 길목에 화암정(花巖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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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박주은의 정려. 효자 박주은 정려는 ‘소라실 박씨 효자 정문’이라고도 한다. 소라실 마을에 세워진 정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박주은의 본관은 함양이고, 자는 성노(聖老), 호는 학촌(鶴村)이다. 박이순과 승의랑 최홍야(崔弘倻)의 딸 전주최씨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함양박씨 일가는 16세기 중엽 전라도 김제에서 소라실[송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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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수혁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계룡면 소정마을에 이르게 된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이 마을의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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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청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윤직의 정려각. 윤직(尹稷)의 본관은 파평이고, 자는 경도(敬度), 호는 호은(瑚隱)이다. 윤행대(尹行大)와 전주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직 효행에 대해서는 1905년(고종 42) 이민교가 지은 「정려기」에 전한다. 어머니가 화상을 입자 화독에 좋은 약초를 구해 오고, 아버지가 병이 들어 돌아가실 지경이 되자 꿈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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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구상의 효자 정려. 이구상(李玖相)[1784~1840]의 본관은 여주이고, 자는 경도(景道), 호는 구화(九華)이다. 여주이씨 공주 입향조인 이지화의 7세손이다. 1784년(정조 8) 이세두(李世斗)와 연안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이구상은 성품이 온화하고 항상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랐다고 한다. 특히 부모가 병이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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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기원의 정려. 이기원(李基遠)[1809~1890]의 본관은 전주로, 덕천군(德泉郡)의 13세손이다. 계룡면 신기동 새터에서 이면원(李勉遠)과 보성오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행이 지극하여 극진하게 부모를 모셨다고 한다. 부모가 병환 중일 때 정성을 다하여 간호를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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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효자 이복의 정려비. 이복은 고려시대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눈먼 홀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집이 가난하여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음식을 얻어 와서 생계를 이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읍내의 부잣집에서 일을 마치고 고깃국 한 그릇을 얻은 이복은 국이 식을까 가슴에 품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고개를 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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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성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효자 황춘억의 정려. 황춘억(黃春檍)[1639~1710]은 방촌 황희(黃喜)[1363~1452]의 7세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매우 지극했다고 하며, 부친이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자르고 그 피로 목숨을 살렸다. 모친이 삼복더위에 신열이 나자 강에서 직접 고기를 잡아 올려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하였다. 노부모의 진짓상에 고기가 없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