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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김갑순은 1872년(고종 9) 5월 김현종(金顯宗)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갑순은 그의 부친과 형님의 요절로 13살 때인 1884년(고종 21)에 호주가 되었다. 김갑순은 조선 말기에 내장원봉세관(內藏院捧稅官)을 거쳐, 1906년에는 공주군수, 1911년 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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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학자. 김영배[1918~1983]는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장으로 참여하였으며, 제3대와 제5대 국립공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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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민영선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인물로 조선 말기 주사와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말기 명화학교에 기부금을 냈으며, 공주청년회 주관 자선행사에 후원금을 기부 하는 등 공주 지역사회 발전에 관심이 높았다. 민영선 1920년 6월 성보영 등과 함께 남선흥업주식회사(南鮮興業株式會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남선흥업주식회사는 일제 강점기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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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박준식은 1884년(고종 21)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조선 말기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와 승훈랑(承訓郞)을 역임하였다. 박준식의 축재과정은 명확하지 않으나 궁내부주사를 역임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에는 공주권업주식회사 사장, 우성수리조합 평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5년에는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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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덕순은 1892년(고종 29) 2월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서덕순의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 중추원 의관, 1911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덕순은 조선 말기 명화학교(明化學校)를 다니다가 1910년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13년 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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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범순은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고종 38)에 중추원 의관, 1911년에 충청남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범순은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0년 말 기준으로 205㏊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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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경제인. 성보영(成普永)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한 경제인이다. 조선 말기 주사(主事) 출신인 성보영은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남선흥업, 금성금융조합, 공주권농조합 등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또한, 성보영은 1921년 공주청년수양회(公州靑年修養會)의 부회장으로 당시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전조선청년당대회(全朝鮮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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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교육자. 조선왕조는 1880년대에 오랜 쇄국정책을 버리고 외국의 여러 나라와 통상수호조약(通商修好條約)을 맺음으로써 본격적인 개화기에 돌입하였다. 1882년에 미국·영국·독일과의 교류를 개시하면서, 1884년에는 러시아와 1886년에는 프랑스와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앞서 일본과는 1876년(고종 13) 불평등조약으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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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고고학자. 안승주(安承周)[1937~1998]는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으로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회장, 공주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다. 백제 고고학의 발전에 공헌한 고고학자이자 교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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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양천손(梁千孫)은 1902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공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양천손은 1922년 20세부터 공주 읍내에서 도자기 상점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주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1935년에는 공주주조 조합장을 역임할 정도였다. 특히 양천손의 특별한 양조방법은 애주가들로부터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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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오지영(吳智永)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오지영은 조선 후기에 광산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 말 기준으로 212㏊ 전(田)과 92㏊의 답(畓) 등 392㏊의 토지를 소유한 대주지였다. 그러나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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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향토 사학자이자 교육자. 윤여헌은 공주에서 태어났고, 공주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공주에서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공주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서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공주 지역사 연구를 이끈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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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환여승람』을 집필한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유학자. 이병연(李秉延)[1894~1977]은 우리나라 129개 군의 방대한 읍지 자료인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을 집필하고자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리·풍속·인물·산천·고적 등을 49조목으로 구분하여 자료를 수집·정리하였다. 이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이후 가장 방대한 지리지 편찬 사업이었으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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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정한명(鄭漢明) 1892년(고종 29)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선대로부터 많은 토지를 물려받은 일제 강점기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이다. 정한명은 1930년 말 기준으로 76㏊의 전(田), 39㏊의 답(畓) 등 16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한명은 다른 공주 지역의 대지주들과 함께 남선제사에 자본을 투자하고, 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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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조병옥(趙炳玉)은 1894년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를 거쳐 1911년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였다. 1914년 연희전문(延禧專門)을 졸업하고 곧 미국으로 건너가 1918년 펜실베이니아주 킹스턴의 와이오밍 고교를 졸업하였다. 이어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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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홍원표(洪元杓)는 1904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0년 26세의 나이로 할아버지 홍종협(洪鍾夾)의 사망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홍원표는 1930년 상속 당시 소작인 2천 명의 소작료 1천 석과 채권 3만 원을 탕감해 주는 자선사업으로 공주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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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교육자. 황인식(黃寅植) 1889년(고종 26) 12월 23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1909년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제1회로 졸업하고,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하여 1912년에 졸업하였다. 1912년 6월 모교인 영명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21년에는 영명학교 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