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공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공주 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첫 시도는 3월 7일 있었고, 3월 10일에는 독립만세운동을 위한 사전 모임이 있었으며, 3월 12일에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은 3월 14일 유구에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3월 15일과 17일 양일에 거쳐 공주에서 일어났고, 4월 1일부터 5일까지 공주...
-
1927년 7월 충청남도 공주에 있던 공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일으킨 동맹 휴교 사건. 1922년 5월에 개교한 공주고등보통학교는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들이 함께 다닌 학교였다. 교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교사가 일본인으로 조선을 무시하고 조선인을 폄하하는 말과 행동이 잦았다. 조선인 학생들은 이러한 민족 차별의 식민지 현실 속에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
1929년 12월에 충청남도 공주에 있던 공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일으킨 동맹 휴교 사건. 1929년에 발생한 공주고등보통학교동맹휴교사건은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1929년 11월 3일 발생한 광주학생운동이다.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으로 당시 전국 곳곳에서는 학생들이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 확립, 식민지적 노예 교육의 철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전개되었던 중등 교육 기관 유치 운동. 일제 강점기 공주 인근 지역인 대전에는 관립 대전중학교(현 대전고등학교)와 대전공립실과고등여학교(현 대전여자중학교)가 있었으나 대전중학교와 대전공립실과고등여학교 모두 일본인 자녀를 위한 학교였으므로 1920년대 초반까지 충청도 지역에는 민족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한국인을 위한 중등 교육 기관이 전무한 상태였다...
-
1892년(고종 29) 10월 충청도 공주에서 서인주와 서병학이 동학 교조 최제우의 신원과 포교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개최한 집회. 1864년 3월 교조 최제우가 좌도난정(左道亂政: 사악한 종교로 세상을 어지럽힘)의 죄목으로 처형된 이후, 동학(東學)은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교세는 수그러들지 않았으며, 1890년대 초반 삼남지역(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
1950년 7월 충청남도 공주에서 국민보도연맹원이 집단 학살된 사건. 1949년 6월 이승만 정권은 해방 후에 좌익 활동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하였다. 국민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 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로당, 북로당의 파괴 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의...
-
1950년 7월 12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미 8군 제24사단이 금강철교를 폭파한 사건. 금강철교(일명 금강교)는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준공되었으며,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자 6월 27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중앙 정부를 대전으로 이전할 것을 결정하였다. 중앙 정부가 대전으로 이전하자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피난민이 대전으로...
-
822년(헌덕왕 14) 웅천주에서 김헌창이 일으킨 난. 김헌창(金憲昌)[?~822]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이다. 김주원은 선덕왕(宣德王) 6년에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한 후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780년(혜공왕 16)에 일어났던 정변에서 큰 공을 세운 덕에 아들 김헌창은 정부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
1176년(명종 6)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주도로 일어난 민란. 무신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 약화, 신분제의 변화, 지방관의 수탈 등이 원인이 되어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는데, 특히 소(所)는 특산물을 생산하여 국가에 공납하는 지역으로서 국가나 지방관에 의한 수탈은 다른 지역보다 욱 심각했다....
-
1932년 2월 28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김순태, 노수남 등이 반제국주의의 내용이 담긴 격문을 살포한 사건. 1929년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위기에 처하고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대중들의 생활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일제는 공황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고 조선의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탄압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이후 전반적으로 학생 운동이 침체되는...
-
660년 7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정복당한 뒤 금강 유역을 비롯해 백제 전역에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642년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大耶城)[현 경상남도 합천군] 등 40여 성을 함락시키는 등 관산성(管山城) 전투에서 성왕(聖王)의 전사로 실추된 백제의 국위를 만회하기 위해 신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위협을 느낀 신라는 김춘추로 하여금 당의 고종에게...
-
1636년(인조 14) 12월 2일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발생한 전쟁.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형제의 의’를 맺은 이후 조선은 후금(後金)과 무역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러나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명(明)의 북경 부근까지 공격하면서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의’을 ‘군신의 의’로 고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종...
-
538년(성왕 16) 백제 제26대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사건. 고대 사회에서 도읍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천도는 곧 중심지의 이동이며, 지배 세력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의 평양 천도 이후 국내성에 거주한 귀족들의 반발이나 신라 신문왕(神文王)의 달구벌[현 대구광역시] 천도 실패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지...
-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성립하였으며, 6월 23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일내각과 함께 동학농민군 토벌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전봉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러나 전봉준을 비롯한 손...
-
1920년대 일제의 수리 시설 확충에 반대하여 공주 지역 우성면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우성면민들은 일제에 의한 우성수리조합의 설립을 반대하여 조합 설립의 부당성을 진정하고 도지사·군수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공사 저지 투쟁까지 전개하였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식민지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우성수리조합 설립 반대 투쟁은 농민민족운동의 한 양상...
-
475년 백제 문주왕이 왕도를 한성[현 서울특별시]에서 웅진[현 충청남도 공주시]으로 옮긴 사실. 백제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 왕도인 한성을 공략하였으며, 개로왕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한성이 함락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로왕은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한성에서 즉위한 문주왕(文周王)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그해 10월...
-
1596년(선조 29) 충청남도 부여 및 홍산 일대에서 이몽학(李夢鶴) 등이 일으킨 난. 임진왜란은 당시 국가의 권위를 상당히 실추시켰고, 백성들의 생활을 점차 피폐하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흉년과 전쟁은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당시 곡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벼슬을 나누어주던 모속관 이몽학 등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안해하는 민심을 쉽게 결속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서얼...
-
1894년(고종 31) 11월 19일 충청도 공주 이인역에서 동학농민군과 관군 및 일본군의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1894년 정월 전라도 고부봉기로부터 시작된 제1차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5월 관군과의 전주화약을 계기로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執綱所: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라도의 각 군현에 설치하였던 농민 자치 기구)를 설치하고...
-
1624년(인조 2) 2월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함락됨에 인조가 공주에 잠시 피난한 일.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국방의 강화와 중립적 외교 정책 등 민생과 대외 정치에 있어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대내 정치에 있어서는 대북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함으로써 다른 정치 세력들을 소외시켰고, 무엇보다도 인목대비를 폐비시킴으로써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조선 사회에...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연합군을 형성, 일본에 대항하는 한편, 일본과의...
-
1932년 3월 충청남도 공주에서 이수준, 이용하 등의 청년들이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독서회를 결성한 사건.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탄압하였다. 사회 운동 세력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체포되자, 소수 지식인과 학생 중심...
-
1931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청년들이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대중 운동을 지원한 사건.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민족 운동과 사회운동을 탄압하였다. 사회 운동 세력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체포되고, 소수 지식인과 학생 중심의 활동을...
-
1376년(우왕 2) 7월 공주목 정현에서 공주목사 김사혁의 부대가 왜구 침입에 대항하여 벌인 전투. 14세기 말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고려가 벗어나는 시기이지만 또한,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과 함께 전국적인 왜구의 침입이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충청도의 경우만 53건이 기록되고 있다....
-
1931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충청남도 도청을 대전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한 운동. 공주 지역은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던 곳으로 호서 지역과 호남 지역의 교통과 상업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대전 지역을 통과하면서, 대전 지역이 삼남 교통의 요충지이며 물산 집산지로 변모하면서 신흥 상공업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더욱이 대전...
-
665년 8월 취리산에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 사이에 맺은 화친의 맹약.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당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간 부여융(扶餘隆)은 백제 태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백제를 재건하기 위해 당나라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 지역에 친당정권(親唐政權)을 심어놓으려던 당나라는 664년 10월 유인궤(劉仁軌)의 추천이 있은 이후에 부여융을 웅진도독...
-
1236년(고종 23) 12월 공주 효가동에서 있었던 고려의 야별초와 몽고군과의 전투. 몽고의 고려 침입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총 6차(학자들에 따라서는 7차, 9차, 11차로 구분하기도 함)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사이 호남 지역으로까지 침략군이 남하한 경우는 1236년, 1247년, 1256년, 1257년 등 도합 4회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