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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적비. 공주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를 가면 계룡면소재지로 빠지는 길목이 있고, 이곳에서 계룡저수지를 지나 6㎞ 거리에 갑사 입구가 있다. 갑사 일주문을 통과해 사천왕문에 이르러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갑사 부도군 옆에 갑사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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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서기의 묘갈. 고청 서기 묘갈은 서기의 무덤 앞에 세운 작은 돌비석이다. 서기(徐起)[1523~159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서경덕(徐敬德)·이중호(李仲虎)·이지함(李之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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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효자 향덕의 정려비. 향덕은 조선 세종 대에 간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효자로서 가장 먼저 수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향덕의 효행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나타난다. 『삼국사기』의 「열전」에 따르면 향덕은 웅천주(熊川州) 판적향(板積鄕)[공주시 소학동 일대] 사람으로 아버지의 이름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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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태봉산에 있는 조선 중기 숙종대왕의 태실비 2기. 숙종의 태실과 관련한 기록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태봉등록(胎封謄錄)』에 나타난다. 1661년(현종 2) 숙종이 태어났을 때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장소로는 공주, 청주, 춘천이 후보로 올랐고, 그 가운데 공주로 결정되었다. 안태사(安胎使) 여이재(呂爾載)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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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碑石)의 받침돌. 조선 16대 왕 인조의 제5남 숭선군(崇善君)[? ~1690] 이징(李徵)의 묘가 1766년(영조 42)에 이인면 오룡리로 이장되어 서북쪽 마을 안 골짜기에 있다. 숭선군은 인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서 태어나 1646년(인조 24) 숭선군에 봉해졌다. 효종이 즉위한 후 1651년(효종 2) 숭선군을 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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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는 명나라 장수의 송덕비.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기리는 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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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공주목사를 역임한 김효성의 선정비. 공주목사 김효성(金孝誠)[1585~1651]은 청렴 결백하고, 백성을 잘 다스렸으며, 군대 통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칭송하기 위하여 목사김효성의비가 세워졌다. 김효성은 광주김씨로 영양부사를 역임했던 김수연(金秀淵)의 아들이다. 김효성은 1615년(광해군 7) 이이첨의 사주를 받아 정조와 윤인, 이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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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여 공산성 내에 머물렀다. 당시 인조가 머물던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인조는 두 나무 사이를 거닐며 이괄의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크게 기뻐하며 두 나무, 즉 쌍수(雙樹)에 정3품의 품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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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당시 삼도소모관(三道召募官)과 삼도선유관(三道宣諭官)을 역임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사를 조직하였다. 그는 전쟁 중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한양 수복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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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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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와 묘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숙종 대 남인 세력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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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우공로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 우공로(禹恭老)는 본관이 단양으로 단양우씨는 공주의 토착 성씨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현보이고 할아버지는 개성부 유휴사 우홍부이다. 우공로는 1481년(성종 12) 만경현령으로 재임 중 사망하였다. 이후 우공로는 1498년(연산군 4)에 가선대부로 증직되었다. 우공로 묘비는 1499년(연산군 5) 8월 15일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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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 송선생 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조헌(趙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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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공주시 이인면 면사무소 앞에 충청도관찰사 선정비 3기와 찰방 선정비 5기의 비석군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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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의 서문 입구에 모아 둔 공적비 중의 하나. 제민천 영세비는 공산성 서문 입구에 있는 43개의 비석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민천 영세비는 공주의 제민천과 제민천에 놓였던 교량의 중수에 대한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제민천은 금학동의 남쪽 지막골에서 발원하여 공주시내를 관통하여 북으로 흘러 정지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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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에 있는 서원 사적비. 충현서원 사적비는 충현서원(일명 공암서원) 안에 있는 서원 사적비로, 1712년(숙종 38) 연천의 임장서원에서 주자의 화상을 모사해와 신판 뒤에 봉안한 과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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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일동장유가」를 지은 김인겸을 기리기 위하여 1989년 금강교 옆에 세운 비석. 퇴석(退石) 김인겸(金仁謙)[1707~1772]은 1763년(영조 39) 일본 통신사 조엄(趙曮)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본의 풍속을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순국문으로 기록하였는데, 이때 지은 기행 가사가 바로 「일동장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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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금강 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세운 공주판관 조병로의 불망비. 조병로(趙秉老)[1816~1886]의 본관은 양주(楊州)이고, 자는 유원(孺元)이다. 아버지는 임파현령을 지낸 조이순(趙頤順)이다. 1849년(헌종 15) 음관으로 처음 출사한 뒤 동몽교관, 보성군수,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에 제수되었다. 이후에도 충주목사, 상주목사 등의 외관직과 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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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안임씨 임완수의 처 안동김씨의 열녀비. 조선은 유학을 정치·제도의 기본 이념으로 채택하며 유교 윤리의 확립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건국 초기부터 충효가 두드러진 인물을 매년 예조에 보고해 정려(旌閭), 복호(復戶), 상직(賞職) 등을 한 것은 도덕 규범을 확립해 사회를 교화시키고자 함이었다. 절부(節婦)도 논상 대상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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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성의 정려비. 공주에서 천안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로부터 약 21.83㎞ 거리에 정안면소재지가 있다. 면소재지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산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 있는 대산교를 건너 작은 길을 따라 700m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왼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