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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효종 2)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공주감영에서 머물며 지은 한시. 「공산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학주전집(鶴洲全集)』5에 전한다. 김홍욱이 42세 때 당시 국정의 중요 정책이었던 대동법을 시행함에 있어, 적임자로 발탁되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자 공주에 머물면서 주위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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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2년(문종 2)으로 추정되는 해에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공주를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공주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사가집(四佳集)』에 전한다. 작가가 젊어서 공주를 유람하였는데, 이 때 집현전 학자 이개(李塏)[1417~1456]를 만나 연회를 베풀 때 시를 수창한 바 있으며, 또 계룡산의 「가섭암중신기(迦葉菴重新記)」를 1452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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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세조 1) 전후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공주에 있는 연정(蓮亭)에서 지은 한시. 「공주연정」은 『사가집(四佳集)』4에 전한다. 서거정이 36세 전후 공주를 찾았을 때 마침 이개(李塏)[1417~1456]가 도착하여 함께 공주 객관의 정자인 연정에서 연회를 베풀며 시를 지어 유흥을 펼쳤다. 「공주연정」 역시 그 즈음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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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년 (공민왕 20)에 공주에 거주하던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지은 시조. 「구름이 무심탄 말이」는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이존오가 우정언의 직책에 있을 때, 공민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국정을 전횡하며 풍속을 어지럽히는 신돈의 무리들을 탄핵하다가 장사(전라도 무장, 현 전라북도 고창) 감무로 좌천되었다. 뒤에 향리인 공주의 석탄(石灘)에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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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1430년경 남수문(南秀文)이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위치한 독락정의 건립 배경과 경관 및 그 의의에 대해 쓴 기문(記文) 형식의 글.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조선시대에는 삼기면이라 함.)에 고려 후기의 충신인 전서공 임란수(林蘭秀)[1342~1407] 장군의 둘째 아들 임목(林穆)[1371~1448]이 독락정을 건립하였다. 임목은 이 정자에 대한 기문을 아들 뻘인 남수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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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영조 40) 공주 출신인 김인겸이 일본을 다녀오고 지은 장편 기행가사. 「일동장유가」는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 출신인 김인겸이 조엄(趙曮)을 정사로 하는 일본 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하여 일본 에도(江戶, 오늘날 東京)까지 11개월 동안(1763. 8. 3~1764. 7. 8)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을 8,000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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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7년(우왕 3) 정도전이 유배 생활을 마치고 옛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공주의 금강루에 올라 지은 한시. 「제공주금강루」는 작자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17, 공주조에 실려 있다. 정도전이 1375년(우왕 원년)에 친원정책을 반대하여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에 해배되어 상경하는 길에 금강루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감회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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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년(인조 25) 신유가 공주 일원의 명승고적 가운데 10곳을 골라서 지은 한시. 「후공주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죽당집(竹堂集)』에 전한다. 신유가 38세 때 공산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공주 일원의 명승고적 중 10곳을 택하여 시를 지었다. 후십경시(後十景詩)라 한 것은 2백 년 전에 서거정이 지은 「공주십경시」가 있기에 이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