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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월미동의 가잿골에 전해 내려오는 효행 이야기이자 지명 이야기. 「가잿골 유래」는 공주시 우성면 월미리(현 공주시 월미동, 1983년 2월 15일에 편입됨)에서 전승되는 구약형(救藥型) 효행 전설이다. 아이가 가재를 얻었다는 효행이 마을 이름을 붙인 동기와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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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효종 2)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공주감영에서 머물며 지은 한시. 「공산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학주전집(鶴洲全集)』5에 전한다. 김홍욱이 42세 때 당시 국정의 중요 정책이었던 대동법을 시행함에 있어, 적임자로 발탁되어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자 공주에 머물면서 주위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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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제작된 공주목의 지도.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종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중심 산업인 농업 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이와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만 아니라 문학·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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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소장되어 있는 사적입안. 「마곡사 사적입안(麻谷寺事蹟立案)」은 1851년(철종 2) 임원횡이 정리한 마곡사의 연혁에 관한 문서로, 제일 자세하며 사적입안이 작성된 이후의 중수 현황은 마곡사에 전해 내려오는 몇몇 현판을 통해 간단하게 살필 수 있다. 「마곡사 사적입안」에는 마곡사의 연혁을 비롯한 마곡사 전반에 걸친 여러 가지 기록들이 전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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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영조 40) 공주 출신인 김인겸이 일본을 다녀오고 지은 장편 기행가사. 「일동장유가」는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 출신인 김인겸이 조엄(趙曮)을 정사로 하는 일본 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하여 일본 에도(江戶, 오늘날 東京)까지 11개월 동안(1763. 8. 3~1764. 7. 8)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을 8,000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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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서 장이 서던 옛 조선시대 지명의 특색을 소재로 한 단가. 「호서가」는 조선시대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주요 고을과 장이 서던 생활권 중 광범위한 고장을 포함하여 지은 노래로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지역의 이름을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기 위한 애향의 단가이다. 또한 「호서가」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지명으로 노래한 「호남가」와 함께 쌍벽을 이루면서 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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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년(인조 25) 신유가 공주 일원의 명승고적 가운데 10곳을 골라서 지은 한시. 「후공주십경시」는 작자의 문집인 『죽당집(竹堂集)』에 전한다. 신유가 38세 때 공산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공주 일원의 명승고적 중 10곳을 택하여 시를 지었다. 후십경시(後十景詩)라 한 것은 2백 년 전에 서거정이 지은 「공주십경시」가 있기에 이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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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조익이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쓴 일기. 조익(趙翊)[1556~1613]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을 제거하려는 선조(宣祖)에게 맞서다가 탄핵을 받아 1602년(선조 35) 4월 공주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이후 1607년(선조 40) 6월까지 약 6년간 충청남도 공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쓴 일기가 『공산일기(公山日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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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간행된 충청남도 공주의 사찬 읍지. 『공산지(公山誌)』는 영조 대의 구읍지를 바탕으로 관찰사, 판관 등의 협조를 받아 공주 지역의 유력 향반이 보완하여 제작하였다. 편찬 작업에는 임정회(林挺會)·이익형(李翼亨)·오흠(吳欽)·노기웅(盧基雄) 등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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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송래희의 문집. 송래희(宋來熙)[1791~1867]는 조선 후기 공주 관리를 역임했던 문신이자 학자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7세손으로서,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학통을 이은 이직보(李直輔)의 문인이다. 25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오랫동안 벼슬에 나가지 않다가 1835년(헌종 1) 45세에 선공감역으로 출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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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헌종 11) 4월 은진송씨가 공주 지역을 유람하고 저술한 내방가사집. 내방가사는 주로 영남 지방 부녀자들에 의해 창작되어 출가하는 딸이나 조카딸에게 전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내방가사의 영남편재설이라 한다. 그러나 기호지방이나 충청 및 호남에서도 일부 내방가사 자료가 발견되어 전국분포설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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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 있는 1811년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에 다녀온 김이교가 작성한 일록. 1811년(순조 11) 김이교(金履喬)[1746~1832]는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에 다녀오면서 관련 문서들을 모아 『신미통신일록』을 작성하였다. 통신사 파견 직전인 1809년(순조 9) 8월 27일 강정(講定) 교섭부터 시작하여 통신사행이 대마도에 가 국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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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문신 이용하의 문집. 이용하(李用夏)[1789~1874]는 명문대가의 후예였으나 문달(聞達)을 구하지 않았으며, 또한 세도(世道)가 점점 쇠락해져 감을 보고는 낙향하여 향리 공주 이인(현재 공주시 이인면 목동리)에 은거하였다. 이때 공자·주자·율곡을 삼대성(三大成)이라 일컬으며 성현(聖賢)의 종주(宗主)로 삼아 의지하며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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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세거한 이유태의 문집. 이유태(李惟泰)[1607~1684]가 작고한 후, 손자인 이단성(李端誠)이 가장(家藏) 시문을 수습하고 연보를 편찬하던 중 세상을 떠나자, 그 후 5세손(이름 미상)이 임성주(任聖周)[1711~1788]와 김지행(金砥行)[1716~1774]의 교정을 거쳐 17책으로 산정하였다. 이후 다시 김정묵(金正默)[1739~1799]의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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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정조 14) 간행된 충청감영의 현황을 기록한 읍지. 영조(英祖) 대에 이어 정조(正祖) 대에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속성 작업이 계속되었다. 1789년(정조 13) 실록 기사에 “여러 문신들이 분담, 각 도의 읍지를 널리 모아 『동국여지승람』의 속성 작업을 실시하되 편찬은 교서관에서 하라고 규장각에 명하였으나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는 내용으로 보아 지지(地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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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10월에 안택을 위한 고사 때에 올렸던 떡을 먹는 풍속. 음력 10월은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기 때문에 상달이라 한다. 햅쌀과 붉은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집을 지키는 성주신께 올리고 제사하며, 제사 후 음복한다. 가을떡 먹기는 이때의 시루떡 먹기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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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청림사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종형 부도. 부도는 승려가 입적한 후 문도들이 세워주는 기념적인 조형물로 일종의 묘탑(墓塔)이다. 부도에는 입적한 승려를 화장하고 남은 유골이나 사리가 봉안된다. 가척리 청림사지 석조 부도도 조선 후기 청림사에 오랫동안 머물렀거나 청림사에서 입적한 승려를 기념하여 만든 조형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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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소속 사찰인 갑사 부속 암자.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의 『한국 사찰 전서』에 의하면 갑사 내원암은 1808년(순조 8) 청담 화상(淸潭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암자 건축의 독특한 모습으로 당시 사찰 건축의 새로운 유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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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 갑사 삼신불 괘불탱은 1997년 9월 22일 국보 제29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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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삼세불상. 삼세불(三世佛)이란 원래 과거, 현세, 미래불이라는 시간적인 개념의 부처를 말하는 것이었으나, 이후 점차 그 개념이 확대되어 서방극락정토, 사바세계, 동방약사유리광정토의 공간적인 개념까지 함축하는 다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갑사 소조삼세불은 2002년 1월 1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되었다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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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다포식 목조 건축물. 갑사강당은 정면의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인다. 강당 남쪽에는 적묵당이, 북쪽에는 진해당이 좌우에 각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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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공주 갑사 대웅전에서 서쪽 개울을 건너면 비교적 넓은 마당 앞에 서향으로 요사와 나란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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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적비. 공주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를 가면 계룡면소재지로 빠지는 길목이 있고, 이곳에서 계룡저수지를 지나 6㎞ 거리에 갑사 입구가 있다. 갑사 일주문을 통과해 사천왕문에 이르러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갑사 부도군 옆에 갑사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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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운 승병장 청허당서산대화상(淸虛堂西山大和尙) 휴정(休靜)과 사명당대선사(四溟堂大禪師) 유정(惟政), 봉진위장군기허당대선사(封振威將軍騎虛堂大禪師) 영규(靈圭)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갑사표충원에 봉안된 영규는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를 하였고, 뒤에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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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 아버지는 강주(姜籒)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응서(金應瑞)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김씨 김광수(金光燧)의 딸이다. 강백년이 죽은 후 그의 후손들은 사패지(賜牌地: 나라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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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강백년의 묘와 신도비. 강백년(姜柏年)[1603~1681]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시호는문정(文貞)이다. 아버지는 죽창(竹窓) 강주(姜籒)이며, 어머니는 김응서(金應瑞)의 딸 안동김씨이다.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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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작된 공주의 지도. 공주의 고지도는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 단독 지도, 읍지에 포함된 지도 등이 있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제작된 자료들이다. 공주의 옛 지도를 크게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와 읍지에 포함된 지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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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서기의 묘갈. 고청 서기 묘갈은 서기의 무덤 앞에 세운 작은 돌비석이다. 서기(徐起)[1523~159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서경덕(徐敬德)·이중호(李仲虎)·이지함(李之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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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안에 있는 조선 중기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北門樓).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약 2.33㎞ 가면 공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공북루는 금강에 인접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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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일반적인 누정들이 주변 풍광을 고려하거나, 강학 위주로 건립되었다면 공산성 만하루는 공산성 동쪽 누대에 있는 군사적 기능이 중심이 된 누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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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공주시청 정문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약 2.3㎞ 정도 가면 공주 공산성 입구가 나온다. 공산성 쌍수정은 진남루 부근의 서쪽 고지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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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주목에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배역자(背逆者)가 생겼을 때 강등하여 부르던 이름. 『인조실록』권 47, 인조 24년(1646) 5월 1일 기사에 처음으로 공산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공청도(公淸道) 공주목을 강등하여 공산현으로 삼고, 이산(尼山)·연산(連山)·은진(恩津)을 혁파하여 1개현으로 합하여 은산현(恩山縣)이라고 하고, 공청도를 홍청도(洪淸道)로 바꾸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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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내원암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상과 복장유물. 공주 갑사 내원암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公州甲寺內院庵木造釋迦如來坐像-腹藏遺物)은 갑사 성보보장각에 모셔져 있다. 복장물 가운데 조성기에 불상 제작에 참여한 시주자와 조각승들의 이름 등이 남아 있다. 2013년 12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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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성암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공주 갑사 대성암 목조보살좌상(公州甲寺大聖庵木造菩薩坐像)은 대성(大聖)이 문수보살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수보살로 봉안되어 있다. 제작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호와 신체 표현, 착의법 등에서 조선 후기 보살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2013년 12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30호로 지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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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법당 건물. 갑사 정문인 해탈문을 지나면 강당이 있는데, 강당 뒷면에 있는 중간 뜰을 두고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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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대적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아미타 삼존불 좌상. 공주 갑사 대적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公州甲寺大寂殿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은 중앙에 본존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불상이다. 아미타불은 죽은 사람을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영혼을 구제한다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 대세지보살은 중생 구제를 의미한다. 공주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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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본래 「석가후불화」, 「약사후불화」, 「아미타후불화」 3폭이 한 조를 이루는 『삼세불회도』였으나 수년 전 왼쪽의 「약사후불화」를 도난당하여 지금은 2폭만 남아 있다. 1700년대 전라남도 조계산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화사 의겸이 으뜸 화원을 맡아 조성하였다.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 및 복장유물은 2007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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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석가여래 삼불 좌상 및 사보살 입상과 복장유물.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및 복장유물(公州甲寺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四菩薩立像-腹藏遺物) 가운데 보살상은 1617년(광해군 9) 행사(幸思) 등 9명의 조각승이 제작한 총 7존(尊)으로 구성된 대단위 작품이다.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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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하던 제향 건축물. 1879년(고종 16) 중수한 건축한 건물이지만,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은 신라의 제사 규정에서 중사(中祀)에 속한다. 신라 5악 신앙에 의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이 후대로 계승된 것이다. 15세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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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동불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공주 동불사 목조석가여래좌상(公州東佛寺木造釋迦如來坐像)은 동불사 불교회관 2층에 설치된 법당에 모셔져 있다. 법당 상단에 석가 삼존상과 천불상, 하단에 목조 석가여래 좌상과 목조 지장보살 좌상을 봉안하였는데, 이 가운데 목조 석가여래 좌상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공주 동불사 목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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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각승 각민이 제작한 불상과 복장유물.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중 복장유물은 2010년 8월 동학사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의 개금불사(改金佛事)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조성 발원문, 개금 중수 발원문, 개금불사 원문을 비롯해 후령통(喉鈴筒)과 사경(寫經), 각종 경전류와 갓끈, 거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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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법당 건물. 마곡사는 가람 배치가 개울[川]을 가운데 두고 남북 구역으로 구분된다.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은 교화 가람의 중심 위치에 중정을 면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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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대광보전 바닥에 깔려 있는 조선 후기 굴피자리.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굴피자리는 대광보전 바닥에 펴는 깔개의 용도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한 기운을 차단하고 위생적인 실내 활동에 필요한 필수품이다. ‘삿자리’라고도 불리며 갈대나 억새, 부들, 볏짚, 버들가지 등과 지역에 따라 참나무나 귀룽나무, 껍질을 벗긴 삼대 등으로 만든다. 공주 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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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불전. 마곡사는 가람 배치가 개울[川]을 가운데 두고 남북 구역으로 구분된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은 교화 가람의 가장 뒤쪽 언덕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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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삼세불상.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은 2007년 9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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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천왕문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소조 사천왕상.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公州麻谷寺塑造四天王像)은 서방 광목천왕의 좌대 내부 기둥에서 발견된 ‘강희이십삼년 계해 삼월 오일(康熙二十三年癸亥三月五日)’ 묵서명을 통해 제작 시기가 ‘1683년(숙종 9)’으로 밝혀졌다. 또한 동방 지국천왕 보관(寶冠)의 떨어진 화염 장식 뒷면에서 ‘동방’이라는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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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공주 마곡사 영산전은 마곡사 안의 불전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수행 가람의 중심 건물이다. ‘영산(靈山)’은 영취산(靈鷲山)의 준말로, 중인도 마가다국 왕사성 부근에 있는 산으로서 석가모니가 설법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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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영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조 불상과 복장유물. 공주 마곡사 영산전에 봉안된 목조 칠불 좌상은 천불상의 주존불로는 현전하는 조선 후기 불상 중 유일하게 과거칠불(過去七佛)로 조성되어 있다. 목조 칠불 좌상 모두 나무로 제작한 팔각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우측에 비바시불, 비사부불, 구나함모니불을 배치하였고, 좌측에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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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대광보전에 있는 조선 후기 영산회상도. 공주 마곡사 영산회상도(公州麻谷寺靈山會上圖)[대광보전]는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에 후불탱화로 걸려 있는 불화이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한 법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1788년(정조 12) 동홍(錬弘)의 주도하에 모두 15명의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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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마곡사 포교당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청동 범종. 공주 마곡사 포교당 범종은 오대산 상원사 소장 범종 이후 우리나라 범종의 전통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거의 완전한 형태의 조선시대 범종이다. 2007년 9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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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서기가 유생을 가르쳤던 서당 건물. 공주 박약재(公州博約齋)는 충현서원(忠賢書院)의 모태가 된 건물로 서기(徐起)[1523~1591]가 1574년(선조 7)부터 1591년(선조 24)까지 유생들을 가르치던 서당 건물을 가리킨다. 서기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지금의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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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관내 상원암에 있는 승탑군. 공주 상원암 승탑군(公州上院庵僧塔群)의 승탑은 모두 5기로, 대부분 조선 후기 승탑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2024년 4월 2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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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귀의 묘. 공주시청에서 송산리 고분군을 지나 소정펄길을 타고 약 7.95㎞ 가면 이인면 만수리가 있다. 만수리 아랫마을의 남서쪽 계성산 능선에 연평부원군 이귀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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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청련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좌상. 공주 청련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1701년(숙종 27) 우두머리 조각승 마일(摩日)을 비롯하여 상현(尙玄), 대심(大心)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4월 불상과 함께 복장 유물 11점이 2013년 4월 2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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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노응환·노응탁·노응호 3형제의 생가 터. 노응환(盧應皖)[1555~1592], 노응탁(盧應晫)[1560~1592], 노응호(盧應皓)[1574~1592] 등은 본관이 만경이다. 이들은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주목사였던 중봉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공부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이 의병을 모아 왜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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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태봉산에 있는 조선 중기 숙종대왕의 태실비 2기. 숙종의 태실과 관련한 기록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태봉등록(胎封謄錄)』에 나타난다. 1661년(현종 2) 숙종이 태어났을 때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장소로는 공주, 청주, 춘천이 후보로 올랐고, 그 가운데 공주로 결정되었다. 안태사(安胎使) 여이재(呂爾載)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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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경부터 약 160년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개설된 약령시. 약령시는 원래 감영 소재지로 모이는 약재 중에서 국가가 구입한 뒤 일반인에게 판매를 하는 장터로서 처음에는 각종 약재의 채집과 집산 등의 사정으로 월령(月令)에 따라 몇 차례 개설하였으나 점차 봄과 가을 두 차례 개시로 정착되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장터에는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심마니, 상인과 한의사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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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관음보살좌상. 공주영은사목조관음보살좌상은 2001년 6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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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범종. 공주영은사청동범종은 2001년 6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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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碑石)의 받침돌. 조선 16대 왕 인조의 제5남 숭선군(崇善君)[? ~1690] 이징(李徵)의 묘가 1766년(영조 42)에 이인면 오룡리로 이장되어 서북쪽 마을 안 골짜기에 있다. 숭선군은 인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서 태어나 1646년(인조 24) 숭선군에 봉해졌다. 효종이 즉위한 후 1651년(효종 2) 숭선군을 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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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이유태가 여생을 보낸 장소. 공주이유태유허지는 초려 이유태(李惟泰)가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이유태는 현종·숙종 대의 문인으로 특히 현종 때 학덕이 높은 유학자로 크게 활약하였다. 1675년(숙종 1) 복상 문제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의 배척을 받아 영변에 유배되었다. 유배 이후 중동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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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윤각의 처 광주김씨 정려. 광주김씨열녀정려는 광주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725년(영조 1) 명정을 받아 세워졌다. 열녀 광주김씨는 진사 김명뢰(金命賚)의 딸로 조선 후기 무신 윤각(尹慤)[1665~1724]과 혼인했다. 남편이 통제사를 거쳐 총융사가 되었으나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평안도 삼화에 유배되자 유배지에 따라가 귀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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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승길(金承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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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시산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 큰 다리를 건너 국도 32호선을 따라 유구 방면으로 가다 보면 유구읍소재지 직전에 만년교가 있다. 만년교를 지나 100m 정도 유구읍 쪽으로 가면 왼쪽에 노동리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4.3㎞ 정도 가면 노동리에 이른다. 김시산 정려 충신문은 마을회관 뒤쪽으로 1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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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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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이자 개화 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온(伯溫)이고, 호는 고균(古筠)·고우(古愚)이다. 김병태(金炳台)의 장남으로, 6세 때 당숙 김병기(金炳基)의 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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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출생지. 김옥균선생유허는 조선 말기 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옥균[1851~1894]이 태어난 곳이다. 김옥균은 본관이 안동, 자는 백온(白溫), 호는 고균(古筠) 또는 고우(古愚)로 아버지 감역(監役) 김병태(金炳台)와 어머니 은진송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부터 1853년(철종 4) 천안으로 이사하기까지 약 3년 동안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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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성주(星州). 성산부원군 이직(李稷)[1362~1431]의 후손으로 선산김씨 가문의 김원발과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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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이교의 유물. 죽리(竹里)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정조(正祖) 연간에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순조(純祖)가 즉위하자 시파였던 김이교는 벽파에 의해 함경도로 유배를 갔다. 귀양에서 풀려난 이후 이조참의와 강원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810년(순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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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굴덕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인 김충수의 처 금성나씨의 정려. 공주에서 부여로 가는 국도 651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약 23㎞ 가다 보면 96번 도로와의 연결 지점이 있다. 이때 96번 도로로 들어가면 대학리 입구가 있는데 대학리 굴덕 안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구릉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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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해(金澥)와 아들 김경원(金慶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5㎞ 정도 가면 연미산이 있으며, 이 산을 지나면 도로 오른쪽으로 우성면 신웅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더 가면 현재는 폐교된 청산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 직전 다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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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내고 참판에 추증된 남위(南瑋)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이다. 6형제 가운데 셋째로 아버지의 6촌인 남대우(南大佑)[영의정과 의흥부원군에 추증됨]의 양자가 되었으며, 양모는 영일정씨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성에서 최후를 마친 남이흥(南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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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문백(文伯), 호는 관류당(觀流堂)이다.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노응환(盧應晥)[1555~1592]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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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노숙의 정려.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다가 목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길을 따라 3㎞ 정도 더 가면 우성면 동곡리가 나온다. 동곡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동곡리 조왕골이 있는데, 노숙정려는 이 마을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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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선비. 노이복(盧以復)[1704~1785]은 생전 학문과 도덕이 남들보다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자연과 더불어 풍월을 즐겼으며 빈궁 속에서도 근심이 없었다.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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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대래(大來), 호는 무척와(無慽窩)이다. 충신 노응환(盧應晥)의 5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노현급(盧賢及), 할아버지는 노결(盧潔), 아버지는 노언상(盧彦相)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로 임강(任矼)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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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소속 사찰. 동혈사가 있는 천태산은 ‘동혈산(銅穴山)’, 혹은 ‘동혈산(東穴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절 이름도 지금처럼 ‘동혈사(銅穴寺)’로 부른 것 외에 『신증동국여지승람』·『공산지(公山誌)』에는 ‘동혈사(東穴寺)’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동혈사가 공주 지역의 혈사(穴寺)라는 의미로서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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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동혈사지 동쪽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부도. 동혈사(東穴寺)는 백제시대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근래에 다시 동혈사가 세워져 법등을 잇고 있는데, 원래의 동혈사 자리로 보이는 건물 터가 입구에 있다. 또한 사찰 주변에 많은 수행굴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혈사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수행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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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군.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문도들이 세워주는 기념물로서, 일종의 무덤이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지위를 누렸거나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던 고승들의 부도를 세웠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살아생전의 법계(法階) 및 지위와는 상관없이 문도들이 승려의 입적을 추모하고 명복을 빌고자 세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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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야외 의식용 괘불화. 마곡사 석가모니불 괘불탱은 1687년(숙종 13) 능학(能學)이 으뜸 화원을 맡아 그린 괘불화이다.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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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승의 영정을 봉안한 건물. 마곡사는 가람 배치가 태화천을 가운데에 두고 남북 구역으로 구분된다. 마곡사국사당은 수행 가람 남쪽 구역의 명부전 뒤쪽 언덕 위에 약간 떨어져 별도로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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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시대 구리 종. 마곡사동종은 태화산(泰華山) 남쪽 기슭의 마곡사 경내에 있는 종으로서, 조선 후기의 범종이다. 마곡사의 경내 중에서도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동쪽 심검당(尋劍堂)의 툇마루에 자리하고 있는데, 높이는 107㎝, 입지름은 75㎝이다. 주종장은 보은, 법현, 민화, 학순, 학준이다. 마곡사동종은 1976년 1월 8일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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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승려들의 수행처 및 창고. 심검당은 원래 승려들이 수행하는 곳이다. 사찰 내에 적묵당과 함께 있을 경우 적묵당은 수행을 하는 선원(禪院)으로 사용하고, 심검당은 강원(講院)으로 사용한다. 마곡사의 심검당은 대방(大房)으로서 요사와 인접하여 요사의 기능을 지닌 수행 공간이다. 마곡사 고방은 요사에서 필요한 물건을 넣어 두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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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건축물. 응진전은 나한전, 아라한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마곡사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시고 있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산스크리트어 아라한(arhan)에서 음역된 말이다. 본래의 뜻은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다. 일반적으로 불전들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비해 응진전은 조금 다르다. 불전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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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는 명나라 장수의 송덕비.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기리는 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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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한제국의 황후. 생전에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위치한 신원사 내의 중악단이 1651년(효종 2)에 폐지된 것을 명을 내려 재건하였다.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천거로 왕비에 간택되어 1866년(고종 3) 한살 아래인 고종의 비로 입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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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공주목사를 역임한 김효성의 선정비. 공주목사 김효성(金孝誠)[1585~1651]은 청렴 결백하고, 백성을 잘 다스렸으며, 군대 통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칭송하기 위하여 목사김효성의비가 세워졌다. 김효성은 광주김씨로 영양부사를 역임했던 김수연(金秀淵)의 아들이다. 김효성은 1615년(광해군 7) 이이첨의 사주를 받아 정조와 윤인, 이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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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노(聖老)이고, 호는 학촌(鶴村)이다. 아버지는 박이순(朴頤淳)[1751~1816]이고,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승의랑(承議郞) 최홍야(崔弘倻)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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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12월 2일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발생한 전쟁.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형제의 의’를 맺은 이후 조선은 후금(後金)과 무역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러나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명(明)의 북경 부근까지 공격하면서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의’을 ‘군신의 의’로 고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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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선현이나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당은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가족 차원에서는 가묘(家廟), 국가 차원에서는 종묘(宗廟)라고도 한다. 또한 서원이나 향교를 비롯한 학문 공동체나 지역 사회에서도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조선시대부터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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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아랫사송정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사송정은 공주시 월송동 금강 인근에 자리한 정자이다. 현재 공주 사람들은 사송정을 공산이씨(公山李氏)와 연관된 정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송정이 위치한 아랫사송정에 충절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기록인 『희암선생집(希菴先生集)』을 보면 사송정은 여주이씨 이상의(李尙毅)[1560~1624]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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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곳을 감영이라고 하는데, 감영에는 다양한 업무 기능을 하는 각종 건축물이 건립되어 있었다. 감영에는 감사본아(監司本衙)로 상방, 청옥, 행랑, 각종 누고, 도사청, 부관청, 육방청 등 큰 규모의 건물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감사의 행정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선화당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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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를 받아 세운 열녀문. 공주에서 국도 40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부여 방면으로 가다가 공주시와 이인면 경계에서 4㎞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에 오룡리 숭선군 묘로 가는 문화재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5㎞ 정도 들어가면 오룡리 마을회관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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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우물. 조선 중기 때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갔을 때, 소가 기갈이 심하자 물을 먹이고 간 우물이다. 한자로 ‘우정(牛井)’이라 하였으며, 소물이 위치한 곳의 행정명은 우정면이라 하였다. 우정면은 7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두면과 합해지며 우성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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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천주교 성지. 수리치골 성지는 천주교 박해기인 1846년 11월 2일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Daveluy)와 신부, 신자 들이 모여 성모성심회(聖母聖心會)라는 신심 단체를 설립한 일을 기리는 성지이다. 이 단체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승리의성모성당 신부 데주네트(Desgenettes)에 의해 창설된 것으로, 수리치골의 성모성심회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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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숭선군묘. 숭선군은 인조의 다섯째 아들로 이름은 이징(李澂)이고, 시호는 효경(孝敬)이다. 1646년(인조 24)에 숭선군에 봉해졌으나, 1651년 모친과 누이가 역모에 관련되었다 하여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1656년 부수찬 홍우원의 소청으로 풀려나 관직이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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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야외 의식용 불화.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은 예산 수덕사 소장 「노사나불괘불화」와도 동일한 도상을 보여 한 계파의 작품으로 파악된다. 1997년 9월 22일 국보 제29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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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달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유의 묘. 신유(申濡)[1610~1665]의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군택(君澤), 호는 죽당(竹堂)·이옹(泥翁)이다. 첨지중추부사 신말주(申末舟)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신기한(申起漢)이고, 어머니는 김영국(金英國)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6년(인조 14)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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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충신 신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큰다리를 건너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9㎞를 가다 보면 신풍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들어서게 된다. 경계를 지나 다시 1.5㎞ 더 가면 냉정리와 영정리의 경계가 나오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예산 쪽으로 100m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으로 신할의 사적비가 보인다. 신할 충신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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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여 공산성 내에 머물렀다. 당시 인조가 머물던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인조는 두 나무 사이를 거닐며 이괄의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크게 기뻐하며 두 나무, 즉 쌍수(雙樹)에 정3품의 품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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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남원양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인 양계무(梁季武)의 8세손으로 양정규(梁廷揆)와 홍관휴(洪觀休)의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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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당시 삼도소모관(三道召募官)과 삼도선유관(三道宣諭官)을 역임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사를 조직하였다. 그는 전쟁 중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한양 수복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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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안동권씨의 정려. 안동권씨는 동흥군 권상의 5세손인 권세헌의 딸로, 덕이 높고 행동이 정숙하며 말수가 적은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강화최씨 집안의 최백복[1733~1753]에게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며 효부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남편 최백복이 1753년(영조 29)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안동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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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회원의 처 부령김씨의 정려. 열녀 김씨 정려는 1812년(순조 12) 10월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열녀 김씨는 김홍필(金弘弼)의 딸로 본관은 부령이다. 신풍면 만년동(萬年洞)에서 살았다. 삼수도호부사(三水都護府使)를 지낸 유회원(柳晦源)[1751~1798]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이 후사 없이 죽자 양자를 들여 장례를 치른 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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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규대사의 묘.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당(騎虛堂), 속성은 박씨이다. 공주 출신으로 갑사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영규대사는 선장(禪杖)으로 무예를 익히기도 했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유학자 출신의 의병장인 조헌과 합세하여 1592년(선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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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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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순국지사. 본관은 보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이다. 아버지는 오치국(吳治國)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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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경도(景圖)이다. 보성오씨 시조 오현필(吳賢弼)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오응두(吳應斗)이고, 어머니 전의이씨 이경우(李景佑)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 이희정(李希程)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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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고,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어머니는 조간(趙幹)의 딸 한양조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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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직장 오극권(吳克權)이고, 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다.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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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한영(吳漢英)이고, 어머니는 공산이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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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이(德而), 호는 수촌(水邨)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오정원(吳挺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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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와 묘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숙종 대 남인 세력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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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정자(正字)를 지낸 유명전(柳命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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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조부는 지돈녕(知敦寧) 정효준(鄭孝俊)이며, 아버지는 판서 정익(鄭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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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정창의 처 해주정씨 정려. 공주에서 청양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7㎞ 정도 가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에 조금 못 미쳐 도로 오른쪽에 단지리가 나온다. 오정창 처 해주정씨 정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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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남원. 아버지는 찰방 윤형준(衡俊)이다. 손자 오시수(吳始壽)[1632~1681]가 공주 지역에 전장을 마련하고,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오시수의 종숙(從叔) 오정창(吳挺昌)의 묘를 쓰면서 후손들이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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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상왕3동에 있는 조선 중기 유학자 이유태(李惟泰)가 세운 사립 교육 기관. 용문서원의 모체는 처음 1663년(현종 4)에 용문서재(龍門書齋)라는 이름으로 건축되었으며, 현재의 용문서원은 1977년에 관비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었다. 조선 중기의 유현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를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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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 송선생 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조헌(趙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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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원산정은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인물인 박의립[1556~1616]에 의해 창건되었고, 의 아들 5형제가 살았던 곳이다. 따라서 원산정의 건립 연대는 박의립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립 후 사적은 정확하지 않다. 건립 이후 언제, 어떤 이유로 정자가 없어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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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충경공(忠景公) 유형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유취장(柳就章)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 부인은 경주이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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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부령. 김홍필(金弘弼)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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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세거하던 훈신,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백(誠伯)이다. 아버지는 수군통제사 유형(柳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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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충민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윤각의 부조묘와 신위. 충민공 윤각(尹慤)[1665~1724]의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여성(汝誠), 호는 창동(蒼東)이다. 아버지는 진사 윤익상(尹翊商)이다. 숙종 연간 무관으로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큰 공을 세웠다. 충민사에 있는 윤각 부조묘 신위(尹慤不祧廟神位)는 2022년 10월 17일 공주시 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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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이고,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선교랑 이전(李瑑)의 딸 평창이씨는 1607년(선조 40)에 윤문거에게 시집왔다. 자식은 아들 셋에 딸 다섯을 두었다. 아들은 송시열(宋時烈)의 사위가 된 장남 윤박(尹搏)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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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효자 윤빈의 정려. 윤빈은 칠원윤씨 윤수(尹脩)와 단양우씨 사이에서 태어나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심과 우애가 깊어 주위의 칭찬을 자주 받았다. 이후 봉림대군의 사부를 지냈으며, 1650년(효종 1) 봉림대군이 즉위하자 서전(書傳), 강목(綱目), 주자의 주차(奏箚) 중 치국의 도와 관련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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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僉知) 윤환(尹晥)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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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원거의 묘비. 공주시 계룡면소재지 방면으로 국도23호선을 따라 약 16㎞를 가다 보면 유평리 계룡초등학교가 나온다.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를 가면 영규대사 묘 입구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300m 들어가면 유평리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윤원거 묘는 파평윤씨 묘소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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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찬(尹燦), 자는 정숙(靜叔), 호는 후촌(後村)이다. 병사(兵使) 윤선지(尹先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며,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윤창세(尹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 경혼(慶渾)의 딸이다. 아우는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이다. 부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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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이고,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시(權諰)의 딸이다. 아버지 윤선거가 성혼(成渾)의 외손이므로 가학(家學)이 성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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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의 묘. 명재 윤증은 성혼(成渾)의 외증손이자 윤선거(尹宣擧)의 아들로, 17세기 조선조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성리학자, 예학자이다. 호서 산림을 대표한 부친과 함께 김집(金集)을 사사(師事)하고, 윤선거의 친구인 유계(俞棨)와 송시열(宋時烈)을 스승으로 섬겼으며, 권시(權諰)의 사위가 되었다. 윤증은 주자학적 종본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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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행대(尹行大)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형욱(李亨郁)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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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서(子恕)이고, 호는 농은(農隱)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형은 윤증(尹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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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옥여(玉汝)이고, 호는 묵재(默齋)이며,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기(李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이정화(李廷華)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청송부사 권용(權鎔)의 딸이다. 부인 인동장씨는 장민(張旻)의 딸로, 장민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일등공신에 오른 장만(張晩)[15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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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 전주(全州).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면달(李勉達)[1793~1877]이며, 어머니는 보성오씨(寶城吳氏)로 오종헌(吳宗憲)의 딸이다. 공주 지역의 전주이씨들은 덕천군의 후손들로 덕천군의 손자인 상산군(商山君)의 장남 이요년(李堯年)의 아들인 진주목사 이몽경(李夢慶)[1538~1624]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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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년(선조 29) 충청남도 부여 및 홍산 일대에서 이몽학(李夢鶴) 등이 일으킨 난. 임진왜란은 당시 국가의 권위를 상당히 실추시켰고, 백성들의 생활을 점차 피폐하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흉년과 전쟁은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당시 곡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벼슬을 나누어주던 모속관 이몽학 등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안해하는 민심을 쉽게 결속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서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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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현충(玄忠),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서봉(西峯) 이시방(李時昉)과 형제지간이다. 호조판서로 증직된 숙부 이자(李資)가 양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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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季溟), 호는 서봉(西峯)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사우당(四友堂) 이시담(李時聃)과 형제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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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1607년(선조 40)에 충청남도 금산군 노동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다.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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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공주시 이인면 면사무소 앞에 충청도관찰사 선정비 3기와 찰방 선정비 5기의 비석군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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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탄금(彈琴), 호는 사포(沙浦)이다. 성호 이익(李瀷)과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중환(李重煥)을 배출한 여주이씨 집안의 종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상홍(李尙弘)이다. 이상홍은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사위이다. 이지천은 1598년(선조 31) 형인 풍곡(楓谷) 이지화(李知和)[157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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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에 묘소가 있는 조선 인조의 다섯째 아들. 이징(李澂)[1639~1690]이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묻힌 까닭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따라 공주로 피난 와서 신분을 감추고 오룡골에 사냥을 나가 만난 처녀와의 인연으로 죽어서 처녀가 살고 있는 오룡골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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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아버지는 이덕사(李德泗)이고, 우암 송시열이 매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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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인조 2) 2월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함락됨에 인조가 공주에 잠시 피난한 일.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국방의 강화와 중립적 외교 정책 등 민생과 대외 정치에 있어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대내 정치에 있어서는 대북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함으로써 다른 정치 세력들을 소외시켰고, 무엇보다도 인목대비를 폐비시킴으로써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조선 사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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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연합군을 형성, 일본에 대항하는 한편, 일본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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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신. 19세기 한말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많은 관직들을 사양하고 성리학 특히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며, 자신의 문하에 간재(艮齋) 전우(田愚)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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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중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장군석. 장군석은 조선 후기의 구선익이 부친 구득원(具得源)의 묘소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석물이다. 그러나 부친의 품계(品階)가 이품(二品)에 머물러 석의(石儀)를 갖출 수 없게 되자 현재의 장소인 의당면 중흥리에 그대로 세워 둔 것이라 전한다. 이후 구선익은 자신의 무덤에도 석의를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비록 묘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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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세 쌍의 효열 정려. 전의이씨삼위효열정려는 1729년(영조 5)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李延會)[1648~1690]와 1736년(영조 12)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의 처 열녀 청송심씨, 그리고 1724년(영조 1)에 명정을 받은 이진성(李晋聖)[1668~1708]의 효행과 절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전의이씨삼위효열정려는 2012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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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기(長鬐). 할아버지는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제자 정래교(鄭來僑)이다. 아버지는 종제 정래숭(鄭來崇)의 장남 정광흠(鄭光欽)으로, 후사가 없는 집안에 양자로 입적되었다.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벽(趙壁)의 딸로 풍녕군(豊寧君) 조응록(趙應祿)의 6대손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심태진(沈泰鎭)의 딸로 부원군 심온(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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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및 효자 정분·정지산의 정려.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타고 14㎞ 정도 가다 보면 사곡면소재지가 나온다. 호계리는 면소재지에서 지방도 629번을 따라 북쪽으로 0.5㎞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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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 자는 춘원(春元), 호는 송정(松亭)이다. 중종 때 재상을 지낸 정광필(鄭光弼)[1462~1538]의 6세손이다. 정세화(鄭世和)와 남양홍씨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파평윤씨는 윤오거(尹五擧)의 차녀이며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의 질녀이다. 또한 윤증(尹拯)[1629~1714]과는 재종매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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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의 서문 입구에 모아 둔 공적비 중의 하나. 제민천 영세비는 공산성 서문 입구에 있는 43개의 비석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민천 영세비는 공주의 제민천과 제민천에 놓였던 교량의 중수에 대한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제민천은 금학동의 남쪽 지막골에서 발원하여 공주시내를 관통하여 북으로 흘러 정지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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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극(士克), 호는 퇴수재(退修齋)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을 지낸 조시채(趙始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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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19세기 천주교 박해기에 천주교도들이 비밀리에 은거해 살던 마을. 엄격한 의미에서는 천주교도들만으로 이루어진 신자 공동체형 교우촌을 뜻하지만, 넓게는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사는 혼거형 교우촌까지도 포함시킨다. 특히 공주 지역에는 박해가 끝난 뒤에도 이와 유사한 교우촌이 각처에 새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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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시행되었던 향촌 자치 규약. 초려 이유태[1607~1684]가 향촌민의 통제를 위해 향약을 조직하고, 그 규약을 기술하였다. 규약은 오가통(五家統), 향촌 경제의 안정을 위한 사창법(社倉法), 관학 교육으로서 학교 제도 등을 동시에 포괄하는 종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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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열녀. 최백복 처 권씨의 본관은 안동이다. 아버지는 동흥군(東興君) 권상(權常)의 5대손 권세헌(權世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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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자는 여국(汝國).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의정부좌참찬을 지낸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다. 1646년에 최발원(崔發源)과 박계성(朴繼聖)의 딸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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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최익항(崔益恒)은 병환 중인 부모가 한겨울에 배(감)가 먹고 싶다고 하자 이를 구하기 위하여 산속을 헤매다가 비몽사몽간에 산신령을 만났다. 이때 산신령은 최익항에게 서쪽으로 가라고 말하였다. 최익항은 길을 가다 만난 까치 둥우리에서 과일을 구하여 부모에게 드려 병환을 낫게 하였다. 또 약초를 구하러 다니던 중 산길을 헤매다가 마곡사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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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익항의 정려. 최익항(崔益恒)의 자는 원구(元久)이다. 1684년(숙종 10) 최준(崔浚)[1656~1722]과 진주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성품이 매우 착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주위에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해, 부친이 병환 중에 배[혹은 감]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한겨울이라서 산속을 헤매도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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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사송정에 있는 여말선초 학자 이명성과 이명덕의 학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 충절사에 배향된 이명성(李明誠)의 본관은 공주(公州)공주, 자는 경장(敬章), 호는 송은(松隱)이다. 전공판서 충정공 이엽(李曄)의 아들로 목은 이색의 문인이며 정몽주와 교유하였다. 적성감무(積城監務), 감찰어사(監察御史)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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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적에 대한 훼손 탓에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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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세운 충헌공 윤전의 사우. 공주시 계룡면소재지인 유평리의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쯤 가면 영규대사의 묘소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그 길을 따라 300여m 정도 들어가면 유평리 중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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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에 있는 서원 사적비. 충현서원 사적비는 충현서원(일명 공암서원) 안에 있는 서원 사적비로, 1712년(숙종 38) 연천의 임장서원에서 주자의 화상을 모사해와 신판 뒤에 봉안한 과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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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주희의 초상. 주희(朱熹)[1130~1200]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주자(朱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살아생전 초상화를 여러 차례 그리도록 했으며, 죽은 후에는 후학들이 그의 초상을 보고 그의 업적을 찬미하였다.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명나라 대부터는 『주자대전(朱子大全)』이나 『성현도(聖賢圖)』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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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세운 정분(鄭苯)과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하는 사우. 공주시에서 예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가다 사곡면소재지를 지나 마곡사 방면으로 가다 보면 호계리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충효사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도로 왼쪽으로 약 300m 정도 가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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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포저유서(浦渚遺書)』 책판과 송곡(松谷) 조복양(趙復陽)의 문집인 『송곡문집(谷文集)』의 책판. 『포저유서』 책판의 형태는 전체 길이 52㎝이고, 전곽 길이 22.7×337㎝이며, 마구리 길이 25.9㎝이고, 판 두께 3.4㎝이다. 판의 형태는 10행 19자, 상하 내향 4엽 화문어미, 유계(有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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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공주시 옛 감영 터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의 정문. 포정사 문루는 원래 충청감영의 옛터인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후 옛 공주군청 부근으로 이건되었다가 현재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구 국립공주박물관] 인근에 복원되어 선화당, 동헌 건물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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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노첨(魯瞻), 호는 시와(是窩)이다. 아버지는 장령 한진(韓縝)이다. 청주한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한지(韓祉)[1675~?]가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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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함경도 함흥부 읍성의 전경을 그린 회화식 지도. 함흥읍도는 조선 시대 함경도 감영의 소재지였던 함흥부의 읍성과 그 주변 일대 전경을 담은 회화식 지도이다. 2010년 공주 능성 구씨(綾城具氏) 첨추공(僉樞公)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지도를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기탁하였다. 지도의 제작 시기와 제작자는 알 수 없다. 능성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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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 사족들의 명부. 공주향교에 보관된 『향안』은 불에 탄 것을 배접하여 장첩(粧帖)한 것이다. 책의 크기는 46.5×32㎝이고, 반곽은 32.6×21㎝, 주사란(朱絲欄), 유계(有界), 7행, 철장 저지로 되어 있다. 표지의 제첨은 ‘향안(鄕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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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안임씨 임완수의 처 안동김씨의 열녀비. 조선은 유학을 정치·제도의 기본 이념으로 채택하며 유교 윤리의 확립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건국 초기부터 충효가 두드러진 인물을 매년 예조에 보고해 정려(旌閭), 복호(復戶), 상직(賞職) 등을 한 것은 도덕 규범을 확립해 사회를 교화시키고자 함이었다. 절부(節婦)도 논상 대상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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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이자 한의. 『하양허씨세보(河陽許氏世譜)』에 의하면 허임은 하양허씨 문경공파 21세손으로 허락(許珞)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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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화산(華山) 정규한의 영당. 공주에서 논산 방향 국도 23호선을 통해 계룡면소재지를 지나 4㎞ 정도 가면 화헌우체국이 나온다. 화산영당은 화헌우체국에서 뒤편으로 70~80m 올라간 산기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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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정려 정면에는 장수황씨 가문의 효부·열부 비인 효부벽진이씨지비(孝婦碧珍李氏之碑), 운촌장수황공의명지배효부열녀경주이씨기행비(雲村長水黃公義明之配孝婦烈女慶州李氏紀行碑) 두 기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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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부 오몽렬의 처 창녕성씨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오른쪽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논산 방면으로 300m 정도 더 간 뒤, 도로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다시 300m 정도 들어가면 신기동에 이른다. 효부성씨비은 이 마을의 오른쪽 구릉지에 북향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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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김영성의 정려. 공주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예산 방면으로 20㎞ 정도 가면 신풍면소재지에 약간 못 미쳐 청양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청양 방면으로 3㎞ 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에 대룡초등학교가 있다. 효자 김영성 정려는 대룡초등학교에서 대룡2리로 들어가는 마을 길을 따라 300m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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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박주은의 정려. 효자 박주은 정려는 ‘소라실 박씨 효자 정문’이라고도 한다. 소라실 마을에 세워진 정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박주은의 본관은 함양이고, 자는 성노(聖老), 호는 학촌(鶴村)이다. 박이순과 승의랑 최홍야(崔弘倻)의 딸 전주최씨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함양박씨 일가는 16세기 중엽 전라도 김제에서 소라실[송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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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수혁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계룡면 소정마을에 이르게 된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이 마을의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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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구상의 효자 정려. 이구상(李玖相)[1784~1840]의 본관은 여주이고, 자는 경도(景道), 호는 구화(九華)이다. 여주이씨 공주 입향조인 이지화의 7세손이다. 1784년(정조 8) 이세두(李世斗)와 연안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이구상은 성품이 온화하고 항상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랐다고 한다. 특히 부모가 병이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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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정이재의 정려. 정이재(鄭以載)[1654~1689]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의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모친이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병석을 지키며 간호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병환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그 피를 드리며 모친을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정이재의 이러한 효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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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성의 정려비. 공주에서 천안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로부터 약 21.83㎞ 거리에 정안면소재지가 있다. 면소재지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산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 있는 대산교를 건너 작은 길을 따라 700m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왼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