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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계와 마을총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D030304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지영

[동네계와 총회는 다르다]

중장 1리의 7개반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마을 총회는 매년 12월경에 개최된다. 다른 동네에서는 ‘동계’나 ‘대동계’라 하기도 하는데 중장 1리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마을마다 각각 독립적인 마을계가 있다. 1950년대 초 행정적으로 ‘중장 1리’가 편성된 후에야 마을 총회라는게 생겼다. 마을계는 연반계의 성격이 강하고, 총회는 마을의 전반적인 운영과 관련이 있다. 즉 누가 상을 당하거나 결혼을 할 때에 함께하는 계모임이 마을계인 것이다. 상여와 혼례용 의복을 마을계에서 관리하며 계원들이 이용하였다. 위친계, 연반계, 친목계 모두 마을 단위로 활성화 되어있었으나, 이제 모두 사라졌고, 마을계와 총회만이 남아있다.

총회의 회원은 중장1리 주민 전체이고, 마을에 이사를 오면 자동적으로 회원이 된다. 예전에는 신입례 비용으로 쌀이나 현금 얼마씩을 내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 회장은 이장이 당연직으로 맡게 되어 중장1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잡무를 해결하고 동네 재산을 관리하며 총회를 열어 예산과 결산 결과를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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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

[마을사람들의 공동 공간 - 회관]

요즘에는 어느 마을에 가나 마을회관 하나씩 없는 곳이 없다. 좀 큰 동네에서는 주민 편의를 위해 두군데에 회관을 두기도 하고, 할머니회관과 할아버지회관을 세우기도 한다. 동네마다 이런 공간이 생긴 것은 1990년대 들어서 부터였다. 중장1리는 1995년에 처음으로 회관을 건립하였다.

당시에 시의 보조금은 있었지만 마땅한 터가 없어서 고민할때 삼거리에 땅과 집을 가지고 있던 동래정씨네[하대리 종가의 후손]와 협의를 해서 길가에 있던 빈집을 헐고 회관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도 회관이 서 있는 대지는 정씨네 땅이다. 건물은 당시 일반적으로 짓는 슬라브집 모양으로 만들어, 회관 옆집과 겉 모습이 똑같다.

이전에는 동계유사의 집에서 모여야 했기 때문에 불편이 많았는데, 회관 준공 후에는 마을의 동물(洞物)은 모두 회관 창고에 넣고, 각종 모임과 총회를 회관에서 개최한다. 보통때에는 노인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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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1리 마을회관

[삼거리 동계의 역할]

동계의 중요한 임무는 두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동네 재산을 모으고, 그것을 어려운 주민에게 빌려주었다가 이자를 받아 재산을 늘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당산제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계문서는 주민들 개개인에게 얼만큼의 곡식을 빌려주었으며, 그들에게 어떻게 이자와 원금을 받았는지를 증명하는 차용증서를 대신했고, 신입 계원의 이름과 신입비를 밝혔으며 매년 새로 뽑히는 유사의 이름과 유사가 해야할 일, 유사가 인수인계 받는 마을 물목들을 상세하게 적었다. 특히 당산제를 위해 반드시 얼만큼의 예산을 덜어 유사에게 맡기도록 하였다.

그런데 어떤 해에는 쌀을 빌리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해에는 몇 명에 불과하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에 농사결과가 매년 달랐기 때문인듯 하다. 이자는 대체로 5할 장리로 정해졌다. 즉 한말을 빌리면 5되가 이자라는 뜻이니 엄청난 고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동계에서 차용하는 것은 그만큼 살기 힘들고, 빌릴 곳도 마땅치 않았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그걸 먹겠수’ 라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1950년대에는 이사 오는 주민도 많았던지 신입례 비용을 받은 기록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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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동계 문서

[1952년과 1965~1974년의 삼거리 동계]

삼거리마을 의 동계와 관련하여 1952년, 1965년에 기록하여 가철로 묶은 문서가 남아있고, 그후에도 최근까지 삼거리동계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장부가 있다. 표지에는 단기4298년 10월 30일 이라는 연대 및 날짜와 “계룡면중장리삼거리동계문(鷄龍面中壯里三巨里洞稧文)” 이라 쓰여있는데, ‘기이(其二)’라는 표시로 보아 전에 쓴 자료가 한권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장에는 거두어 받은 쌀 수봉미(收捧米)가 백미 22두 2승으로 당시 백미 1두는 320원이라 하였으니 물가로 따져 어느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날 모임을 위해 들어간 비용도 꼼꼼히 적어서, 술과 두부, 백지의 사용 내역을 썼고, 이어지는 차용증서(借用證書)는 쌀을 빌려간 사람들의 목록과 지장이 찍혀있다. 또한 다음해인 1966년 병오년에 쓸 당산제 비용을 유사에게 지급하는 내용이 보인다. 당산제 비용은 쌀과 현금을 함께 주었는데 대개 쌀 2두와 현금 20원 정도였다. 1967년에는 새로 마을로 이사해 온 유금례(柳金禮)에게 신입미로 백미 1두를 받았다.

쌀을 빌려간 사람들에게 이자도 받았는데 1968년 차용증서에는 이자는 연 5할로 규정하고 있다. 보통 1년 안에 갚도록 하였고 만약 갚지 못하면 보증인이 대신 갚아야했다. 매번 동계의 새 유사가 회의록을 작성하고 보관하였는데 유사가 바뀔 때 새 유사의 업무를 위해 번번히 마을의 공동물품을 조사하여 적었다. 그리고 백미 5두를 새 유사하게 맡기되 2두는 당산제용으로 쓰게 하고 3두는 이자를 합해 다음 해에 쓰도록 하였다. 매년 한두장씩의 기록이 계속 이어져 경술년 1974까지 10년간의 기록이 남아있다.

[삼거리 동계의 변화]

삼거리마을중장1리에서는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동계 재산’이란 없다. 1960년대를 살았던 어른들이 동계 재산인 쌀 몇가마를 가지고 재산을 조금 불려보려고 애썼지만, 언제부터인지 점점 줄어들어 아예 없어졌다. 1970년대에는 청년들이 나서 계룡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서 동계 재산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계원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줄 만큼은 되지 못해 삼거리동계는 재물이 필요할때마다 번번이 계원들로부터 추렴을 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도 당산제만은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다.

동계가 한참 잘 될 때에는 동계 유사와 당산제 유사를 각각 선출했다. 동계유사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맡았으나 당산제 유사는 그 해에 생기복덕이 맞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삼거리 동민이 많았으므로 유사 일이란 평생 한두번 맡으면 되었다. 동네 마을회관이 1995년에 건립되기 전까지 동곗날은 유사댁에서 모였고, 각종 동물(洞物)은 마을 창고에 보관했다.

[동네재산]

삼거리 동계문서에 기록된 마을의 공동물품으로는 대풍구, 팔랑개비, 깽매미[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가래, 농약통, 저울, 면도, 기계, 가위, 말 등이 있었다. 역시 풍장이 중요한 동네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대풍구, 팔랑개비, 가래 등 동민이 함께 쓰는 농기구도 수년간 전수되었다.

당시에 쓰던 풍물은 지금도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데, 지금은 당산제 지내는 날 새벽에 징을 두드릴때 빼고는 풍물 칠 일이 없다. 하긴, 일이 없어서 못한다기 보다도 옛 어른들은 곧잘 풍물을 치곤 했는데, 그걸 배우지 못해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동네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 중에는 상여와 가마 등이 있었다. 상여집은 통미산 아래에 윗장 가는 길목에 있어서 그 길을 ‘행성집거리’[상여집 → 행여집 → 행성집]라 하였다. 상여집 바로 옆에 중장천이 흘러 물 피해를 입자 당산나무 안쪽 고랑으로 옮겼는데, 큰 비가 내리던 날 쓸려가면서 다시 갑사 근처로 옮겼다. 상여는 삼거리, 갑산수, 윗장 마을이 함께 사용했으니 중장1리 사람들의 공동재산이었다. 상여 뿐만 아니라 요여와 나팔도 있었다. 새색시가 타는 가마인데 가죽 휘장이 늘어져 능청능청했다. 가마와 나팔을 동네 헛간에 두었다가 갑작스러운 화재로 모두 잃어버린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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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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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1리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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