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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분남, 엄기숙 할머니가 들려준 직물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C040201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내수

조분남(81) 할머니는 올해 81세로 청양에서 원골로 시집을 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집와서 시댁에 손으로 옷감을 짜는 수직기 기계가 2대 있었고, 직접 수직기를 이용하여 직조일을 하셨다고 한다. 당시 직조일을 많이 했던 집에서는 직조기계를 여러대 설치하고 공녀를 고용하여 옷감을 짰다고 한다. 기계가 많았던 집은 5대 이상 되는 집도 있었다고 한다.

엄기숙 할머니는 올해 71세로 영월 엄씨라고 한다. 신풍면 용수리에서 원골 풍양조씨 가문으로 시집을 오셨다고 하는데, 시집을 온 1956년경부터 시댁에서 기계 4대, 공녀 5명 두고 직조일을 하였다. 공녀는 서산과 정산 등지에서 왔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공녀들은 한방을 같이 사용하면서, 먹고, 자고 하였다. 1필당 품삯으로 노동비를 주었다. 조돈상 할아버지, 할머니가 직접 직조일은 하지 않고 공녀들의 밥을 해주는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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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숙 할머니 부부사진

21세 시집와서 40세 넘을 무렵까지 직조일을 하였다. 1970년대 중반 경까지 하였는데, 마을 부녀자들 상당수가 옷감 짜는 일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략 마을 가구의 40~50% 정도가 집에 수직기를 두고 직조일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계 2대 정도까지는 직접 직조일을 하였던 것으로, 기계가 3대 이상인 경우에는 공녀를 두면서 집안의 여성이 직접 하는 경우도 있었고, 전체를 공녀를 고용하여 옷감을 짜기도 하였다.

직조 기계를 적게 두고 운영하는 가구는 옷감이 짜여지는 대로 바로 장에 내어 팔았고, 기계를 여러 대를 두고 운영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구에서는 직조된 옷감을 바로 장에 내다 팔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가격이 비쌀 시기에 매매하여 많은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특히 원골에서의 옷감 짜는 일은 가계수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여 이로 인한 수익금으로 생활비는 물론 목돈을 만들어 논과 밭을 장만하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였던 것으로 마을 할머니들이 전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본격적인 전지동력의 직조기계가 유구읍을 중심으로 대량의 직조공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원골마을의 직조일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이전에 수익금으로 장만한 논과 밭을 중심으로 원골마을은 본격적인 농사일에 주력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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