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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540
한자 晴蓑遺稿
영어의미역 Posthumous Works of Cheongs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심광세(沈光世)[1577~1624]
저자 심상교(沈相喬)[1837~1918]
편자 심재찬(沈載瓚)[1886~1949]|심재극(沈載克)
간행자 심재극(沈載克)
저술연도/일시 1918년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949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967년연표보기
권수 6권
책수 3책
사용활자 필사석판
가로 19.5㎝
세로 27.5㎝
표제 晴蓑遺稿
간행처 손자 심재극 가
소장처 충남대 도서관
소장처 주소 대전직할시 유성구 궁동

[정의]

1967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 문인 심상교의 문집.

[개설]

심상교(沈相喬)[1837~1918]는 공주 율정(현재 의당면 율정리)에서 태어났다. 심상교는 독서를 좋아하고 경사(經史)에 밝아 일찍이 과업을 닦으며 주위의 촉망을 받았으나, 1862년에 일어났던 진주민란 사건에 무고로 연루되어 1869년 부친과 숙부가 체포되어 옥사당하고, 자신도 옥에 갇히는 고초를 겪게 되었다. 이후로는 부친이 비명에 세상을 뜬 것에 원통해 하며 현세에 뜻을 접고, 산수자연을 주유하며 비분강개한 마음을 시문으로써 달래었다.

특히 일제의 침략 야욕에 대하여 단호히 대처하여 이를 추숭하는 선비들이 의병의 지도자로 추대코자 한 바 있고, 1905년(69세)에는 을사조약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910년 국치를 당한 이후에도 일제의 회유를 끝까지 거절하여 배일의지를 꺾지 않았고, 일관되게 일제를 배척하였다.

[편찬/발간경위]

저자 사후 손자인 심재찬(沈載瓚), 심재극(沈載克) 등이 유고를 수습하여 1949년 안동인(安東人) 김영한(金甯漢)의 서문을 받았으며, 1967년 경주인(慶州人) 이규헌(李圭憲)의 발문을 붙여 심재극이 간행하였다.

[형태]

6권 3책이며 석인본이다. 권수제는 『청사유고(晴蓑遺稿)』이며 판심제 역시 같은 이름이다. 계선형태는 이어진 계선이며 선장본, 어미는 상화문어미, 광곽은 사주쌍변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27.5㎝이고 가로 19.5㎝이다. 반곽 크기는 세로 22.2㎝이고 가로 16.5㎝이며, 반엽 13행 29자이다.

[구성]

『청사유고』의 책 머리에는 김영한(金甯漢)의 서문이 있고, 유고 총목이 이어진다. 권1~2를 첫째 책[天]으로, 권 3~4를 둘째 책[地]으로, 권 5~6을 셋째 책[人] 등으로 묶었다. 부록은 손자 심재극이 쓴 가장 1편과 송상도(宋相燾)가 쓴 추만(追挽) 4수이다. 권말에 이규헌과 심재극의 발문을 붙였다.

[내용]

권1은 근체시와 고시, 가사 등 630수(首)를, 권2는 7언 율시 652수를 담았다. 권3은 7언 율시 588수를 실었고, 권4는 7언 율시 546수와 추록(追錄) 72수를 올렸다. 권5는 소(疏) 1편, 서(書) 21편, 서(序) 7편, 기(記) 4편, 발(跋) 2편, 명(銘) 3편, 찬(贊) 2편, 혼서(婚書) 2편, 상량문 2편, 제문 9편, 장지(壯誌) 3편을 실었다. 권6은 잡저와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잡저는 부(賦) 1편, 설(說) 2편, 논(論) 4편, 가(歌) 2편, 문(問) 1편, 록(錄) 1편, 기타 2편 등 모두 13편을 이루어져 있다.

심상교는 일제의 침략 야욕에 단호히 대처하고 배척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청사유고』에 실려 있는 시문들은 낙척불우한 가운데서도 세속에 구애받지 않는 호방한 성격에서 비롯된 문예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단호히 맞서며, 나라가 처한 현실에 비분강개하며 울분을 토로하는 작품이 공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사유고』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초기에 항일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선비의 삶의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일제침략기 불우한 삶을 시문으로 승화시킨 저자의 수준 있는 한문학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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