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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암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536
한자 竹菴集
영어의미역 Posthumous Works of Jukam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임공열(任公烈)[1869~1933]
저자 김광호(金光鎬)[1890~1963]
편자 김연뢰(金淵雷)|백중현(白中鉉)
간행자 김연뢰
저술연도/일시 1963년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986년
간행연도/일시 1986년연표보기
권수 4권
책수 1책
사용활자 필사 선장본
가로 19.8㎝
세로 28㎝
표제 竹菴集全
소장처 충남대학교 도서관

[정의]

1986년에 간행된 문인 김광호의 문집.

[개설]

김광호(金光鎬)[1890~1963]는 일제강점기 말인 1944년(54세)에 출생지인 천안을 떠나 공주에 이거하였다. 공주 유구의 옥산(玉山) 아래에 이사하여 후학을 양성하는데 전념하였으며, 대체로 천안과 공주 지역의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문하 연원의 문사들과 교류하였다. 「옥산강회(玉山講會)」, 「옥산우거(玉山寓居)」, 「등계룡산연천봉(登鷄龍山連天峰)」, 「등계룡산(登鷄龍山)」 등은 공주 생활의 면면을 읊고 있는 작품들이다.

[편찬/발간경위]

『죽암집』은 김광호 사후에 아들과 문생들이 유고를 수습 정리하고, 정규환(鄭珪煥)의 서문을 받아, 1986년 9월에 간행하였다.

[형태]

필사 선장본으로서 4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제 및 판심제는 『죽암집(竹菴集)』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28㎝이고 가로 19.8㎝이다. 반곽 크기는 세로 21㎝이고, 가로 15.3㎝이다. 행수는 11행, 한 행의 자수는 24자이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정규환(鄭珪煥)의 서가 있고, 이어 저자의 사진[竹菴先生 眞像]이 실려 있으며 『죽암집』 목록(目錄)이 이어진다. 권1은 시로서 총 54제(題) 62수(首)이다. 권2는 서(書) 14편, 잡저 46편, 서(序) 1편, 기(記) 3편, 제문 2편, 행장 2편으로 구성되었다. 권3은 부록으로서 가장, 행장, 묘갈 각각 1편이며, 권4는 부록으로 만사 16편이 실려 있다. 발은 저자의 아들 김연뢰(金淵雷)가 지어 붙였다.

1944년 유구 옥산 아래에 이사하여 후학을 양성할 때에 문생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을 읊은 시 「낙독서성(樂讀書聲)」에서는, “어느 집에서 글 읽는 소리 높게 들리는가/ 진실로 이로써 그 집안의 앞날이 밝으리라./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익혀야 하니/ 누군들 천성이 심성으로 변화되지 않으리(誰家高出讀書聲 固有斯間門戶明 生子必能朝暮習 孰無天性化心成).” 라고 하였다.

한편 일제 침략을 받아 빼앗긴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가슴 아파 하는 심정을 표현한 시 「시사(時事)」에서는, “우리나라 삼천리 해동국은/ 새 까마귀 세상이 되어 어지럽게 짖어댄다./ 원컨대 하늘의 위엄으로 쓸어 밝은 빛 찾아서/ 진실로 큰 지도자가 백성을 잘 기르도록 했으면(我國三千里海東 禽烏變作亂哄同 願言天威消淸日 誠見大人化育功).”이라 읊었다.

[의의와 평가]

『죽암집』은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걸쳐 생존하며 전통 학문의 전수에 노력했던 김광호의 문집으로서, 경학(성리학)에 관한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스승인 흠재(欽齋) 임공렬(任公烈)[1869~1933]과 나눈 문답을 기록한 「사문강설록(師門講說錄)」은 당시 유림 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와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로서 주목할 만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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