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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136
한자 中岳壇山神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in Jungakdan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집필자 구중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산신제|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음력 3월 16일을 전후한 토·일요일
의례장소 중악단 지도보기
신당/신체 중악단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중악단에서 음력 3월 중순경 국행제를 복원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는 고대 삼국시대부터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가 행해져왔다. 명산대천의 의미는 신앙적인면 뿐만 아니라 군사적 목적도 중요하게 작용하여 왕조가 달라질때마다 제사처도 변해왔다.

계룡산은 백제의 웅진천도 이후부터 국가적 제사처로 지목된 듯 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악(西岳)이라 하여 국가적으로 신성시 되었으며, 조선 건국 이후에도 나라를 수호하는 명산이라 하여 소사(小祀)로 정해지고 매년 봄, 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하였다. 제사를 지낸 위치가 어디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주목되는 것은 『동국여지승람』의 ‘계룡산사(鷄龍山祀)’라는 항목이다. 계룡산사는 공주 남쪽 40리 지점이라 하였는데, 신원사 중악단 즉, 현재의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계룡산신당을 국가적 품격에 맞게 격상시켜 ‘중악단’이라 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상악이 묘향산, 중악이 계룡산, 하악이 지리산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는 고종명성황후에 의해 신원사 중악단(中嶽壇)이 중건되었고, 대한제국의 사전(祀典)으로,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경내의 상악단(上嶽壇), 지리산의 하악단(下嶽壇)과 함께 삼악단(三嶽壇)으로 일컬어졌다. 계룡산 신원사 경내에 있는 중악단은 보물 1293호(1999. 3. 2.)로 지정되어 있다. 중악단은 국가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끊어졌다가 1998년부터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복원된 중악단 산신제는 향교에서 대한제국의 사전에 의하여 고마나루 수신제와 함께 올리고 있다. 산신제는 소사(小祀) 의례로 계룡산 중악단 옆 옛 계룡단 터에서, 수신제는 고마나루에서 중사(中祀) 의례로 지낸다. 고려시대에는 산신제가 중사로 수신제가 소사로 모여졌다. 이와 곁들여 신원사에서 불교식 산신제를, 계룡산 산신제보존회에서 무속식 산신제를 각각 주관하여 올린다. 제의 날짜는 음력 3월 16일을 전후한 토·일요일을 넣어서 잡는다.

[신당/신체의 형태]

계룡산연천봉(連天峰) 줄기에 자리 잡은 중악단이다. 중악단 주위에는 계룡산 굿당의 효시로 알려지는 밤나무집굿당을 비롯한 많은 굿당들이 포진되어 있다. 굿당이 이렇게 많은 것은 연천봉의 ‘도맥(道脈)’ 때문이라고 믿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절차]

유교식 산신제의 제관과 진설은 다음과 같다. 제향일이 임박하면, 먼저 산신제에 헌관할 제관부터 각 3명씩 선정하여 통첩하고 집사자와 사원도 같이 안내장을 발송하여 사전에 알린다. 다음으로 제수 준비에 들어가는데 제수는 화식이 아니고 서원제와 같이 생식이다.

내용은 보 2개, 궤 2개로 쌀·좁쌀·율무·수수 등 네 가지를 각각 담는다. 두 8개, 변 8개를 쓰되 두 8개는 우쪽, 갓줄 위에서부터 조기, 미나리, 소의 허파 등을 쓰고, 다음 줄에는 고사리·소고기·졸 등을 쓰고, 세 번째 줄은 닭·무 등을 쓴다. 왼쪽으로는 갓줄 위에서부터 육포·은행·민어포 등을 쓰고, 다음 줄에는 땅콩·밤·소금 등을 쓰며, 세 번째 줄에는 호도와 대추를 쓴다.

중앙에 생(牲)이라고 해서 돼지 머리를 쓰고, 생 앞에 폐백을 놓는다. 양쪽에 촛대를 놓고 제일 앞줄에 삼헌할 잔대를 놓는다. 다음 제상 밑으로 향상을 놓고, 향상 위에 향로와 향합을 놓고 그 옆에 축판을 놓는다. 제주(祭酒)는 수신제와 달리 청주 한 가지만 쓴다. 청주는 수신제의 세 가지 술과 같이 정성들여 빚은 가양주(家釀酒)로 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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