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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534
한자
영어의미역 Pagoda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집필자 이창호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여러 층으로 또는 높고 뾰족하게 세운 건축물.

[개설]

탑은 높이가 나비나 길이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높은 건조물을 말한다. 주로 감시나 방어 등의 군사적 목적, 천상(天上)세계에 대한 희구를 나타내는 종교적 목적, 권력이나 위엄의 상징, 기념·전망·관측·통신, 종탑이나 시계탑 등을 목적으로 축조되었으며 나무·돌·벽돌·콘크리트·철강 등 다양한 재료가 축조에 사용되어 왔다. 탑의 형식·기능·의미 등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중세 유럽의 고딕양식이나 근대도시의 탑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수직 형상의 상징성은 변하지 않고 있다.

동양에서는 종교적 의미를 벗어난 근대적인 탑이 건립되기까지 대부분 불탑으로 건립되었다. 불교에서의 탑파(塔婆), 즉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건조물에서 비롯된 것으로 불교 발상지인 고대 인도어로는 스투파(stupa)라 한다. 불탑은 석가 입멸 후 석가의 사리를 여덟 곳에 나누어 탑을 세운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산치탑으로 대표되는 초기 양식은 반구형(半球形)의 원분형(圓墳形)으로 기단 위에 원분형이 놓이고 그 위에 사각형의 평두(平頭)와 반개(盤蓋)가 놓이는 것으로 분묘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뒤에는 차차 높은 기단을 만들어 탑신을 받치는 형태로 되고 상륜(相輪)의 수도 증가하였으며 주위에 돌난간을 둘러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놓았다.

종류도 매우 다양해져서 재료에 따라 목탑·석탑·전탑(塼塔)·토탑(土塔)·옥탑(玉塔)·금탑(金塔) 등으로, 제작기법에 따라 화탑(畵塔)·인탑(印塔)·각탑(刻塔)·조탑(彫塔) 등으로, 그리고 형태에 따라 주탑(柱塔)·상륜탑(相輪塔)·삼층탑·칠층탑·오륜탑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불탑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목탑을 중심으로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나 빈번한 외침으로 인해 많이 소실되어 남아있는 목탑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원불변의 의미를 가진 바위에 대한 경배심이 탑의 형태에 영향을 끼쳐 석탑의 등장을 가져왔다. 초기의 석탑은 목탑이나 전탑(塼塔)의 형태를 본 따 만들어졌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나라 석탑만의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충청남도 공주는 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불교가 많이 성행했던 지역이었다. 이는 삼국시대 당시 공주가 백제의 수도로서 불교문화의 중심지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백제시대 공주 지역에는 흥륜사, 대통사, 수원사, 옹산사 등이 창건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불교문화의 전승과 함께 전통 사찰들이 중건되거나 새로운 사찰들이 창건됨과 더불어 불탑들도 많이 축조되어 그 흔적들이 현재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삼국시대]

1. 공주 수원사지 탑지와 석탑재

공주 수원사지 석탑재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석탑의 일부로 공주시 옥룡동월성산 북측 계곡 수원골에 자리하고 있는 공주 수원사지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경작지로 개간하면서 석재가 노출되자 1967년에 탑지(塔址)를 조사하여 그 존재 위치를 확인하였다. 당시의 조사 내용에 의하면 탑재석들이 지하 40㎝ 지점에 매몰되어 있었으며 발견된 유구는 지대석과 기단 중석의 일부였다.

구체적으로는 동면에 지대석 2매·하기단석 3매·하기단 중석 2매, 서면에 지대석 3매·하기단석 3매·하기단 중석 2매, 남면에 지대석 2매·하기단석 1매가 남아 있었다. 이를 통해 탑은 방형으로 한 변이 3.06m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재 탑지 주변은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2. 공주 주미사지 탑지와 석탑재

공주 주미사지는 현 공주시 주미동 주미산의 서향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주 주미사지 사역 내에는 탑지와 석탑 관련 석재가 상당량 남아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단부로 추정되는 자연암석에 남겨진 가공 흔적 1지점, 탑신석 2매, 가공하다만 옥개석 1매 등이 남아 있다. 탑 기단부는 자연암석상에 약 20㎝ 너비로 홈을 내어 가공한 흔적을 보이고 있으며 그 위에 탑을 가구하여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탑신석 2매는 모두 우주를 조각한 형태이다.

3. 천진보탑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계룡산 수정봉 아래에 위치한 절터에 있는 천진보탑은 문화재자료 제 68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석탑이 아니며 암자의 뒤편에 있는 거대한 자연석 바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 왕 아소카가 쿠시나가라(석가가 입적한 곳)에 있는 사리탑에서 석가의 진신사리 8곡(斛) 4두(斗)를 발견하고 이를 84방향에 봉안하도록 하였는데 북쪽을 담당한 다문천이 신통력으로 이 자연석 바위에 넣었다고 한다.

이후 백제의 구이신왕(久爾辛王) 때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이 바위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찾아가 사리를 발견한 다음 이 자연석 바위를 천진보탑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갑사를 창건(420년)하였다고 전한다.

[통일신라시대]

1. 공주 남혈사지 탑지와 석탑지대석

공주 남혈사지공주시 금학동에 있으며 사역 내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석탑지에는 현재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탑의 지대석이 남아 있다. 2m 길이 4매가 탑지의 남동쪽에 남아 있어 방형의 기단을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 탑지는 탑의 크기가 사지의 영역보다 비교적 크고 약간 측면에 치우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쌍 탑이었을 가능성도 추정되고 있다.

2. 공주 서혈사지 탑지와 석탑지대석

공주시 웅진동 쉬엇골에 있는 공주 서혈사지의 석탑지대석은 공주 서혈사지의 금당지 전면 15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탑지에는 기단 적심석, 적심석 위에 떨어져 있는 옥개석 1매, 그리고 주변에 수매의 탑재석 등이 남아 있었다.

탑의 기단 적심석은 한 변이 6m인 정방형으로 잡석과 흙을 섞어서 높이 1m 정도 되게 하였는데 이 적심석 위에 탑의 기단부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옥개석은 낙수면의 처리가 약간 굴곡을 둔 채 유연하게 전각시킨 것으로 상면 탑신 받침도 1단을 조출시켰고 4단의 옥개 받침을 두고 있다. 이 탑은 형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탑지도 동일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1. 공주 가척리 석탑(가척리 청림사지 석탑)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에 있는 공주 가척리 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기단부와 3층의 탑신만을 남기고 있다. 높이 2.15m에 기단부는 각기 1매의 화강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대석으로 보이는 하단부의 석재는 방형의 화강암으로 한 변의 길이가 124㎝이며 높이는 30㎝이다. 사면에는 각기 안상을 조각하고 있으며 상면에는 면석괴임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본래 오층탑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신원사 오층석탑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있는 신원사계룡산 중악단 정면에 위치한 신원사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2층의 기단 위에 4층의 탑신부만 남아있는 일반형 석탑으로 높이는 310㎝이다. 신원사 오층석탑은 신라시대 일반형 석탑 양식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규모가 작아지고 세부의 표현도 생략되어 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현재 오층석탑의 탑신부와 그 이상의 상륜부는 결실되어 있다. 1975년 12월 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1층 탑신의 사리공에서 사리구를 비롯하여 개원통보 등의 화폐와 녹색 유리제 긴 사리병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탑 부근에서는 사리 장엄구로 보이는 사리기 파편과 금동제 오상, 이왕상 등도 발견되었다.

3. 청량사지 칠층석탑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청량사지 칠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남북에 자리 잡고 있는 2기의 석탑 중 북쪽에 세워진 석탑을 말한다. 백제 멸망 후 어떤 남매가 이곳에서 수신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남쪽에 세워진 오층석탑과 더불어 계룡산 남매탑(오늬탑)으로도 불리고 있다. 백제 양식을 따르고 있는 오층석탑과는 달리 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신은 1개의 돌이며 우주를 새기지는 않았다. 옥개석도 1개의 돌이며 낙수면 하부의 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어 둔중하다. 1층 옥개석 밑에는 다른 돌로 1단의 받침으로 괴었다. 기단이 낮은 단층기단으로 기단갑석의 폭이 탑신의 폭보다 좁으며 초층 탑신부가 유난히 긴 점과 처마 밑의 층단 받침이 굵은 단을 내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이 석탑은 고려시대 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청량사지 오층석탑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청량사지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남북에 자리 잡고 있는 2기의 석탑 중 남쪽에 세워진 석탑을 말한다. 백제 멸망 후 어떤 남매가 이곳에서 수신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북쪽에 세워진 칠층석탑과 더불어 계룡산 남매탑(오늬탑)으로도 불리고 있다. 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는 칠층석탑과는 달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백제 미륵사지 석탑의 각부를 모방하고 있어 백제계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탑은 낮은 단층기단에 5층의 탑신을 올렸던 것이나 현재는 4층까지만 남아 있다.

5. 동학사 삼층석탑

동학사 삼층석탑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동학사 대웅전 앞에 위치한 높이 185㎝의 조그마한 탑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8호이다. 서로 다른 시기의 탑재석을 사용하여 계속적으로 교체하면서 꾸민 것으로 전각골의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높이 1.76m로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3층의 탑신은 없어진 상태이다. 남아 있는 석재의 표현 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기단이 약화되고 처마의 곡선에 반전이 깊은 점 등을 들어 고려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6. 동혈사지 석탑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동혈사지 석탑은 전체 높이 255㎝에 탑신 높이 180㎝ 규모이다. 8각 기둥 위에 석불상 좌대를 얹어 기단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 평면 사각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세장한 느낌이 들며 치석수법은 거칠고 석질은 화강석이다. 탑이 위치하였던 곳은 지금의 대웅전 뒤편 벼랑으로 자연암반에 탑의 기단이 남아 있다.

기단은 지름 81㎝의 원형으로 높이 2㎝ 가량 되게 조출시켰는데 기단면은 경사진 암반에 역으로 기울여 놓았다. 이는 벼랑 밑으로 탑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 옮겨 세워진 탑신의 전체 형태 또한 중심축으로부터 기울어져 있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7. 마곡사 오층석탑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마곡사 오층석탑마곡사 대광보전의 정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다보탑이라고도 하며 보물 799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의 높이는 870㎝에 오층의 탑신을 갖추고 있으며 탑재는 대부분 청석을 사용하였다. 높은 이중의 기단을 안정된 형태로 만들고 그 위에 세장된 탑신을 올렸다. 이층으로 구성된 기단은 지대석을 250~240㎝의 범위에 걸쳐 설치하고 그 위에 기단의 하대부를 구성하고 있다. 기단은 상대가 하대보다 높게 이루어져 있다.

각 면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는데 원형 기둥 2개가 1조가 되어 조성되었고 탱주는 사각으로 구성하였다. 상대갑석은 5매로 조성하였는데 옥신받침을 2단으로 조성하고 있으며 이 받침은 별석으로 처리한 것이다. 초층 옥신은 2중의 우주를 양각하고 있으며 전면의 옥신면 중앙에는 문비시설이 양각되어 있다. 이층의 옥신에는 우주가 조각되어 가운데에 아미타여래가 사방에 양각되어 있다. 더불어 각 여래는 두광과 신광을 조각하면서 두광의 좌우에 운문이 2개 표현된 것과 두면과 연기 및 연꽃을 표현한 두면으로 구분된다.

이층 탑신 이상의 옥신에는 우주를 양각하는 점 이외의 특별한 조각은 확인되지 않는다. 상륜부는 청동제로 된 풍마동이 상륜을 장식하고 있다. 이 풍마동의 형식은 원나라 대의 라마교 양식과 유사한 것으로 이 탑의 조성 시기에 대한 대략적인 연대 추정의 단서가 되고 있다. 1972년 이 탑을 해체·복원할 때 라마식 보탑에서 형자 1개, 쇠로 만든 향로 2개, 문고리 3개, 그리고 만자가 새겨진 금포 1장이 나왔다.

8. 공주 동원리 석탑

공주 동원리 석탑공주시 신풍면 동원리동원리 사지에 위치하는 높이 370㎝의 삼층석탑으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의 구조는 2층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가구된 것으로 현재 3층 탑신 및 옥개석,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기단은 2층으로 하단의 기대석은 6매의 화강암 찬석을 짜 맞추어 놓은 후 그 위에 하대면석을 놓았는데 우주·탱주의 조각이 선명하다. 모습은 체감률이 급히 떨어져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1962년 해체 수리당시 석탑 내에 사리공이 있어 사리함이 장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미 분실된 상태로 유리구슬 1점만 발견되었다.

[조선시대]

1. 금성동 정지사지 석탑

금성동 정지사지공주시 금성동 정지산에 있으며 정지산무령왕릉이 자리한 구릉이 북향하여 금강에 잇대어져 있는 곳이다. 현재 금강에 연한 경사면에 소건물지가 위치하고 있고 부근에서 소탑 1기가 발견되어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이치 되어 있다.

2. 갑사 중사자암지 삼층석탑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갑사 중사자암지 삼층석탑갑사 대웅전의 우측 곁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는 갑사의 부속 암자인 사자암에 있었던 것으로 갑사 대적전 뒤편에 이치 했으나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문화재자료 제5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190㎝에 하층기단은 결실된 기반부와 3층의 탑신부로 구성되어 있다. 상륜부는 본래의 것이 제거되었으나 석질이 다른 새로운 것으로 연봉형태가 올려 져 있다.

3. 갑사 공우탑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갑사 공우탑은 본래 갑사의 부속 암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전해진다. 높이 293㎝에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탑신의 초층에는 탑의 건립 내용이, 2·3층의 옥신에는 탑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2층에는 우탑이란 명과 3층 옥신에는 공이란 명문이 각기 음각되어 있다. 옥개는 4단의 층급받침이 있는 것으로 전각의 반전이 완만하게 이루어져 있다. 탑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 시에 큰 공을 세운 소에 대한 기념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공주 공산성 영은사 탑재

영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공주시 금성동공주 공산성 북단 계곡 내에 위치한다. 금강을 향한 좁은 계곡에 있는 사찰로 공주시내에 유존된 유일한 고찰로 경내에는 탑 옥개석 1매와 토석 등의 탑재가 남아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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