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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502
한자 公州九龍寺址
영어의미역 Guryongsaji Temple Site in Gongju
이칭/별칭 상신리사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389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이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2년 12월 31일연표보기 - 공주구룡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3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공주구룡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절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통일신라시대
지정면적 4,334㎡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389 지도보기
소유자 국유
관리자 공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 터.

[개설]

구룡사, 혹은 상신리 사지에 대한 기록은 각종 지리지 등의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대체로 조선시대에 찬술된 지리지는 각 지역의 사찰이나 구전으로 전하는 사찰에 대한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 사역 범위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공주구룡사지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록의 부재는 기록 당시 공주 구룡사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거나, 적어도 조선시대 지리지 찬술 이전에 존재하였다가 폐찰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위치]

공주구룡사지계룡산 지맥의 북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수정봉의 북동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즉 수정봉신선봉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 하단부에 있는데, 분지상의 넓은 평탄면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금강과 인접하였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공주구룡사지에 대한 조사는 1990년 공주 지역을 비롯한 백제문화권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유적의 발굴과 정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당시 계룡산 내의 불적(佛跡)으로 갑사, 동학사, 신원사와 더불어 구룡사가 주목되었는데, 공주구룡사지는 유일하게 현재 사찰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발굴 조사에 따라 공주구룡사지에서는 정연하게 배치된 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들 전체가 하나의 별원(別院)을 이루고 있다.

조사된 사찰의 건물은 모두 5동의 건물이 금당 터를 축으로 좌우 대칭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금당 터로 추정되는 건물 터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금당 터의 기단보다 한 단 낮게 동서 좌우에 각각 1동씩 배치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또한 금당 터 앞 좌우에 대칭의 형태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 있다. 이들 5동의 건물 터와 별도로 동남 구역에 측면 2칸, 정면 8칸의 대형 건물이 1동 있는데, 이는 법당이라기보다 요사, 혹은 승방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사된 유구가 공주 지역불교 유적의 중심부에 해당하는가인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사된 가람의 형태는 남북을 축으로 금당, 좌우로 동서 법당, 그리고 뒷면에 승방지를 갖추고 있는데, 조사된 별원 내에서 석탑 등의 부재가 산포되어 있지만 탑지 등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황은 발굴 조사된 지역이 전체 사역의 중심부가 아니라는 추정도 가능하게 한다.

[현황]

3회에 걸친 조사로 사찰의 대체적 윤곽은 확인되었지만, 전체를 조사한 것은 아니며, 특히 구룡사지 사역(寺域)의 대부분은 이미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상당 부분의 면적이 사유지라 각종 개발과 개간, 건축이 이루어져 구체적인 사역의 범위와 구조에 대한 파악은 불가능하다. 현재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전체 사역의 범위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구의 분포가 추정되는 전체 지역을 포함하는 정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계룡산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인접해 있는 금강이라는 수원과 공주구룡사지가 있는 지역의 입지적 조건 등으로 미루어보아 불교가 번창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때 계룡산 지역의 불교 문화의 중심이었던 사찰로 추정된다. 198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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