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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196
한자 寺谷面同族村
영어의미역 Sagok-Myeon Single-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집성촌
총인구(남, 여) 3,863명[2003년 기준]
가구수 1,510명[2003년 기준]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에 있는 집성촌.

[개설]

사곡면에서는 거주 분포나 유적 등을 통해 볼 때 진주정씨가 가장 두드러진 행적을 보이며, 300년 이상 된 성씨는 가교리 경주김씨·김해김씨·안동김씨·남원윤씨·양성이씨·평산신씨 등이 있다.

[형성 및 변천]

호계리의 진주정씨의 입향조는 정윤침(鄭潤琛)으로 전해지나 실제 입향조는 모친인 여산송씨이다. 단종 때 충신 정분의 손자 며느리였던 송씨 부인은 홀로 정윤침과 함께 화를 피하여 안성에서 고로리 강당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진주정씨의 뿌리가 되었다. 이후 진주정씨는 번창하여 해월리, 신영리, 신영 안양골과 고당리 등으로 분파하였다.

안동김씨는 약 1600년경 계실리에 자리를 잡은 성씨로, 이곳에는 안동김씨와 관련된 전설과 유적들이 남아 있다. 안동김씨는 김성적을 입향조로 여기고 있는데, 김성적이 어떤 이유로 이곳에 묘를 쓰게 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후손들에 따르면 전에는 충청북도 수안보 일대에 선조들이 세거하였으나 김성적의 묘를 쓰면서 이곳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처가인 안동권씨의 인연으로 들어온 화월리 양성이씨가 있다. 양성이씨는 13대조인 이익의 처가가 안동권씨인 것을 인연으로 공주시 계룡면 화월리로 세거하였다고 한다. 양성이씨들은 지금도 안동권씨를 ‘진외가집’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후손이 없는 안동권씨의 묘를 벌초하고 있다.

해월리에 정착한 의성김씨는 공주 우성면 방축리에 살다가 김경홍(金慶弘) 때에 해월리로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의성김씨는 왕신을 모시다가 동티가 나서 한밤중에 도망치듯이 사곡면 해월리 장축골로 이주해 왔다고 전한다. 본래 거주하였던 우성면 장축리에는 조상들의 묘만 남아 있을 뿐 후손들은 남아 있지 않다.

가교리에 처음 들어온 경주김씨의 입향조는 김강희(金剛熙)이다. 김강희는 원래 경기도 일대에서 거주하였으나 약 300여 년 전 가교리 일대로 이거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김강희가 어떠한 이유로 이주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은 피난골로 유명했던 마을의 특징 등을 고려하여 피난처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운암리의 평산신씨 또한 약 300년 전쯤 입향한 성씨로 신응덕의 후손 신동수의 11대손이 입향하였다. 신동수는 원래 경기도 연천과 가평 일대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유룡리남원윤씨도 약 300~400여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입향조인 윤형선이 남원에 거주하다가 생활고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약 150여 년 전에 입향한 성씨로 전의이씨가 있는데, 입향조는 이희(李熺)이다. 이희는 본래 경기도 양주에 살았으나 마곡사로 절 구경을 왔다가 한시랑의 풍수에 푹 빠져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또한 창녕조씨, 함양박씨, 덕수이씨, 부안임씨, 인동장씨, 남양홍씨 등 많은 성씨들이 있지만 그 내력이 자세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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