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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843
한자 趙聖復
영어음역 Jo Seongbok
영어의미역 Jo Seongbok
이칭/별칭 사극(士克),퇴수재(退修齋),충간(忠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의정부시
성별
생년 1681년연표보기
몰년 1723년연표보기
본관 풍양(豊壤)
대표관직 집의(執義)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극(士克), 호는 퇴수재(退修齋)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을 지낸 조시채(趙始采)이다.

[활동사항]

1702년(숙종 2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과 정언을 지냈다. 1716년(숙종 42) 지평으로 있으면서 윤선거(尹宣擧)의 선정(先正) 칭호를 금할 것을 청하였다. 이후 장령과 헌납을 지냈다. 1721년(경종 1) 집의로 양역(良役)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해에 경종에게 세제(世弟, 영조)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려 노론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뜻이 이루어졌으나, 소론 측이 무군부도(無君不道)의 죄로 몰아 의금부에서 국문을 받았다.

1722년(경종 2) 정의(旌義)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이 귀양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되었다. 세제의 대리청정 문제는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원인이 되었다. 1723년(경종 3) 다시 잡혀 올라와 옥중에서 독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독은 조성복의 형인 조성집이 의금부 예속(隷屬)에게 뇌물을 써서 전한 것이다. 조성복은 신임사화 때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에 공자(孔子)와 주자(朱子),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한 문회당(文會堂)이 있었는데, 문회당기에 의하면 뛰어난 인재였다고 한다.

[묘소]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영조 즉위 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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