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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왕궁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668
한자 公山城王宮址
영어의미역 Palace Site of Gong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왕궁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삼국시대
지정면적 6,800㎡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지도보기
관리자 충청남도 공주시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왕궁 터.

[개설]

공산성 왕궁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산성동금성동에 있는 공산성(사적 12호) 안에 있다. 공산성은 북쪽에 금강과 접해 있어 군사적 방어지점으로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위치]

공산성내 서쪽의 해발 85m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종래 쌍수정 광장으로 불려 왔던 추정 왕궁 터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임류각(臨流閣)은 궁의 동쪽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80년에 조사된 임류각 터에서 서쪽으로 왕궁이 입지할 수 있는 위치는 이곳밖에 없다는 논거로 조사되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공산성 왕궁지 발굴 조사는 충청남도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공산성 연차 발굴 중에서 추정 왕궁 터의 유적 조사를 지칭한다. 조사는 1985년의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하여, 동년 1차 전면 조사, 1986년 2차 전면 조사가 이루어졌다.

[현황]

조사 결과 건물지를 비롯하여 용수를 저장할 수 있는 연못과 목곽고 및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구나 출토된 유물들이 백제시대로 편년되어 왕궁 터의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확인된 건물지로는 반지하식 건물지와 굴건식(掘建式) 주공(柱孔) 건물 터, 적심석(積心石)을 사용한 건물지 2개소와 연지, 저장혈, 목곽고 등이었다. 굴건식 건물지까지는 백제가 웅진으로 남천하기 이전의 유적으로, 적심석을 사용한 건물지는 남천 후, 즉 왕궁지의 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가운데 적심석 건물지는 각각 24칸, 10칸 규모였다.

수습된 유물은 대체로 기와류이다. 막새기와는 백제의 8엽, 10엽 연화문을 비롯하여 파상문 막새기와이며, 10엽 연화문 숫막새 기와는 연꽃의 끝부분 반전이 심하게 이루어진 백제 초기의 것으로 공주 공산성에서 주로 출토되는 전형적인 형식이다. 이외의 평기와 중에는 ‘웅천(熊川)’ 혹은 ‘궁(宮)’자의 명문이 찍힌 것을 비롯한 각종 도장문이 나왔다.

토기는 등잔을 비롯하여 개물(蓋物)이나 삼족 토기 등 백제 토기가 출토되었다. 특수 유물로 봉황형 금동향로가 수습되었는데, 이는 부식이 심하고 출토 위치가 불분명하지만 조사된 건물지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공산성 왕궁지의 발굴 조사 결과 백제의 웅진 도읍기 왕궁 시설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건물지 그리고 조선시대의 사창지와 같은 건물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백제의 웅진 도읍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산성이 성으로서 기능하면서 건물이 조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백제의 웅진 도읍기 왕궁 시설의 실체를 밝히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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