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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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音樂 |
영어음역 | Eumak |
영어의미역 | Music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집필자 | 이재성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소리를 소재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개설]
우리나라의 음악은 시조창, 기악, 민요, 잡가, 농악, 무악(巫樂)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국악은 그 뿌리가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싹이 트고 발전한 음악의 한 영역이다. 국악을 크게 민속 음악과 아악(雅樂) 등으로 구분하는데 민속 음악은 민중 속에서 전해 내려왔고 아악은 궁중 음악으로 전해 내려왔다. 근현대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양악(洋樂)은 한말 개화기 이후에 들어왔으나 당시는 학교 음악으로 존재하였다.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음악 유학을 다녀오는 유학생들로 인해 기악을 중심으로 현대 음악이 일부 전해졌으나 이렇다 할 음악 활동은 두드러진 것이 없었고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는 가곡이 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빛을 보지 못하였다. 농악은 농경 사회 시대부터 농민들에게 생활의 리듬을 제공하여 체질화되고 지금도 세시 풍속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김천 지방은 삼한 시대로부터 전래된 빗내농악의 발상지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김천은 빗내농악의 발상지답게 예부터 풍물이 발달했는데 풍물을 제외한 여타 음악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하는 바가 드물다. 다만 조선 후기 유학자인 여이명(呂以鳴)이 집필한 『금릉지(金陵誌)』[1718]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관기는 예부터 뛰어난 미색이 많고 가무를 잘하여 금릉을 속칭 노래의 고장이라 함은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근래에 천향, 벽란, 옥헌, 봉기 등 기녀가 있어 모두 명창이었다. 그 가운데 벽란과 천향이 두드러졌는데 벽란의 노래는 가히 요량(繞梁)이라 할 만하고 천향의 미색은 가히 절세라 할만하다.”
김천에서는 일제 시대 이선중이 창으로 유명했는데 그는 용두동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모아 기생 수업을 위한 노래와 춤을 가르쳤고 박동진은 김천에 있는 명월관이란 요정에서 몇 달을 머물면서 동기(童妓)들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김천 지역에서 일제 시대에 있었던 첫 음악 행사는 남량 음악 대회이다. 1928년 7월에 동경 유학파 모임인 김천학우회 주최로 당시 성악으로 이름을 날렸던 권태호, 최명신 등이 주축이 되어 김천시 모암동 ‘조선관’에서 열렸는데 거리에까지 넘친 청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4년에는 『동아일보』 김천지국 주최로 국내 선진 음악가 5인을 초청하여 김천좌극장에서 성악 연주회가 열렸고, 1948년 10월 정용문의 작곡 발표회와 임상길 등 남성 4중창단 발표회가 김천시 성내동 김천극장에서 열렸다.
[농악 단체]
김천 지역의 농악 단체로는 빗내농악대, 김천농공고등학교 풍물반, 김천모암초등학교 농악대, 풍악 광대놀이단, 김천문화원 여성풍물단, 개령초등학교 풍물단, 직지초등학교 풍물단 등이 있다.
1. 빗내농악대
예부터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빗내마을]에 전승되어 온 빗내농악이 1984년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고 빗내농악의 특징인 ‘빗신’과 전쟁에서 유래한 ‘진굿’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빗내농악대는 전주 대사습 놀이 농악 부문 장원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린 농악 경연 대회에서 수상하였다. 빗내농악의 상쇠 전승은 1대 정재진, 2대 이군선, 3대 윤상만, 4대 우윤조, 5대 이남문, 6대 김흥엽, 7대 한기식, 8대 손영만으로 이어져 왔다.
2. 김천농공고등학교 풍물반
1970년 6월 10일 빗내농악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목적으로 김천농림고등학교 시절 풍물반[38명]을 창설한 이래 수많은 경연 대회에서 수상하여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전국 규모 대회 수상을 들면 전국 민속 예술 경연[1971, 1990] 문공부장관상, 전국 농악 경연, 초중고 농악 경연, 전국 고교 풍물놀이 겨루기, 전국 청소년 민속 예술 경연 등에서 상을 받았다.
3. 풍악 광대놀이단
1990년 3월 사물놀이 동호인으로 조직된 풍악 광대놀이단은 창설된 이래 김천농공고등학교 학생들의 취미 활동을 지원해 왔고 김천, 구미 등지에서 풍악 광대놀이를 공연하고 대한민국 국악제에도 참가하였다.
[국악 단체]
김천의 국악 단체로는 한국국악협회 김천지부, 대한시우회 김천지회, 김천예술고등학교 국악부, 정산국악원(靜山國樂院) 등이 있다.
1. 한국국악협회 김천지부
1989년 6월 12일에 농악, 시조, 고전 무용의 주도자들이 한국국악협회 김천지부를 조직함으로써 예총 지부 창립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농악 분야는 경상북도 지정 무형 문화재와 김천농공고등학교 풍물반 등을 통한 활발한 활동으로 크게 발전했고 시조부는 1993년부터 매년 김천에서 전국 시조 경창 대회를 열고 있으며, 고전 무용은 1993년부터 정기 공연과 국악 경연 대회를 여는 한편 해외 공연도 여러 차례 실시하였다.
2. 대한시우회 김천지회
대한시우회 김천지회는 1990년 11월 20일 김천시조회로 발족하여 남산공원 노인정에 간판을 걸고 취미로 시조창을 해오다가 1993년 2월에 상주, 구미, 성주, 고령, 영동, 보은, 옥천, 대구 등의 인근 지역 시조인들을 초청하여 매년 전국 남녀 시조 경창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회원 중 이상하, 최덕수가 시조 명인을 획득하였다.
3. 김천예술고등학교 국악부
한일여자고등학교는 일찍부터 국악 교육에 힘을 기울여 1974년 국악단을 조직하여 전국 경연 대회에 출전하여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리고 1979년에는 일본 순회공연도 가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1986년 한일교육재단이 경상북도 유일의 음악 전문 학교인 김천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고 현대 음악 외에 국악부를 설치하여 전공과목으로 가야금, 거문고, 해금을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4. 정산국악원
김천예술고등학교는 전통 음악 전승 보급을 통한 문화 예술 창달과 시민 생활의 윤택을 주기 위한 사회 교육의 일환으로 1998년 7월 정산국악원을 개원하였다. 교내 건물을 신축하고 필요한 국악 시설을 갖추어 일반인과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전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순수 음악 단체]
김천의 순수 음악 단체로는 김천어린이합창단, 아버지노래회·어머니노래회, 향음회, 김천새마을어머니합창단, 김천여성합창단, 김천시 여성합창단, 김천시립합창단, 김천YWCA소년소녀합창단, 김천YWCA여성합창단, 김천시 합창단, 김천음악협회, 한국음악협회 김천지부 등이 설립되었다.
1968년 초등학교 교사 김성묵이 김천어린이합창단을 조직하고 그의 지휘로 1976년까지 9회에 걸쳐 정기 발표회를 가졌으며 대구 KBS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69년 이진우가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장으로 부임하고 음악 취미와 재능을 살려 ‘아버지노래회’와 ‘어머니노래회’를 조직하여 음악 애호인들을 모아 노래 지도를 했는데 직장을 따라 떠나자 해산되었다.
1969년부터 방학 때마다 김천 출신 음악 대학 학생들이 모여 각자 기량을 발휘하고 토론회와 좌담회를 갖는 향음회가 조직되어 20여 년간 계속되었다. 1974년 9월 16일 새마을 부녀회원을 주축으로 김천새마을어머니합창단이 조직되고 김천시의 후원으로 운영되다가 1977년 김천여성합창단으로 개편되었다. 1977년 김천새마을어머니합창단의 개편으로 조직된 김천여성합창단이 유명무실해지자 1987년 11월 11일 생활 음악 보급과 여성의 사회 활동 활성화를 내걸고 김천시 여성합창단을 조직하였다. 1989년 제1회 발표회를 가진 이래 매년 발표회를 가져왔다.
1988년 3월 12일 경상북도에서는 처음으로 김천시립합창단이 발족하였다. 1991년 창단한 김천YWCA소년소녀합창단은 정기 연주회를 세 번 열었다. 1992년 7월 2일 창단한 김천YWCA여성합창단은 1993년 김천문화회관에서 제1회 발표회를 가진 이래 매년 발표회를 개최해 왔으며 경북 음악제 참가, 고속철 지하화 기도 연주회 등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1993년 8월 23일 창립한 김천시 합창단은 창단 이래 김천문화회관, 유원관[김천예술고등학교], 김천아카데미극장 등지에서 정기 연주회를 열었으며, 1998년에는 열 번째 정기 연주회를 갖고 경북 합창제에도 출전하였다.
[대중음악]
1. 단체
김천에서 대중음악 단체로 활동한 곳은 1946년 음악 애호가들로 조직된 김천향토경음악단이다. 김천향토경음악단은 단원이 교체되는 가운데 여러 차례 김천극장에서 화려한 공연을 하는 한편, 각 기관과 각 면부를 돌면서 공연을 가졌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수도육군병원이 김천도립병원으로 옮겼을 때에는 밤마다 위문 공연을 했고, 피난하면서도 일부 단원들은 유엔군을 위시한 위문공연을 계속하였다. 6·25 전쟁이 끝나고 김천향토경음악단은 흩어졌으나 1956년에 김천문화원과 김용수, 강희수 등이 협의하여 ‘김천경음악단’으로 재조직되었다.
2. 인물
김천 출신으로 가요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는 정건수(鄭建洙)와 조기남(曺奇男)이 있었다. 정건수는 일제 시대 서울 가요 콩쿠르에서 1등을 했고, 조기남은 함흥에서 가수로 활약하면서 1940년에 「몽고에 지는 꿈」을 레코드 취입하였다. 광복 후에는 일제 시대의 한 맺힌 애절하고 어두운 노래가 사라지면서, 6·25 전쟁을 맞자 군가조의 노래가 유행하다가 서구풍의 노래가 물밀 듯 들어왔다.
김천 출신으로 중앙 무대에서 작사, 작곡 부분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는 고려성·나화랑(羅花郞) 형제와 문호월(文湖月)이 있었다. 일제 시대 ‘금릉인’, ‘고려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조경환은 「타향살이」, 「나그네 설움」, 「사막의 한」, 「아시나요」를 비롯하여 수많은 가요곡을 작사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조광환(曺曠煥)은 조경환의 아우로 처음에는 순수 음악을 작곡하다가 6·25 전쟁 이후 가요 작곡계로 투신하여 나화랑이란 예명으로 「삼각산 손님」, 「찾아온 산장」 등 수많은 가요곡을 작곡하고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1986년에 세상을 떠났다. 문호월은 어린 시절을 김천에서 보낸 민요조 가요 작곡가로, 본명은 문윤옥이다. 김천에서 자라 오케이레코드에 들어가 작곡과 지휘를 맡으면서 1933년에 「봄맞이」, 1934년에 「노들강변」 등을 작곡하였다.
[한국음악협회 김천지부]
김천에서 현대적인 음악 단체가 생긴 것은 1975년 5월 26일 작곡가 이안삼이 주동해서 만든 김천음악협회가 처음이다. 이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천지부 창설을 전제한 산하 단체의 하나로 1989년 2월 18일 한국음악협회 김천지부가 창설되고 중앙 인준은 1989년 6월 12일에 받아 음악 전문 단체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음악협회 김천지부는 2007년 청소년 음악회와 학생 음악 경연 대회, 2008년 제16회 김천 예술제 음악 경연 대회, 2009년 제4회 예술 문화 장터 김천 음악제, 2010년 제18회 학생 음악 경연 대회와 예술 장터 한여름 밤의 선율을 개최하였다. 2021년 11월 현재 지부장 김병재, 부지부장 이경은, 사무국장 장민구가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천은 음악 중에서도 빗내농악을 중심으로 한 농악과 대중가요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농악은 빗내농악전수관과 빗내농악보존회를 중심으로 전국의 관련 대회에 출전해 매년 수상권에 들면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조광환, 조경환, 문호월 등은 우리나라 대중음악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로 평가받고 있다. 한일교육재단은 김천예술고등학교에 국악부를 설치함으로써 김천 지방 음악 중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