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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17
한자 李明均
영어음역 Yi Myeonggyun
이칭/별칭 이명균(李銘均),일괴(一槐)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863년 1월 14일연표보기
활동 1919년연표보기
활동 1919년연표보기
활동 1920년 3월연표보기
활동 1922년 11월연표보기
몰년 1923년 5월 2일연표보기
추모 1963년연표보기
추모 1968년연표보기
추모 1970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지도보기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순국기념비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자산공원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참여|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 결성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명균(李明均)[또는 李銘均]은 1863년 1월 14일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조선 성종 대의 청백리로 유명한 충간공 이숭원의 14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일괴(一槐)이다. 가학(家學)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일제 식민지 시기 절치부심하던 이명균은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애사(愛史) 편강렬(片康烈)과 함께 해인사를 방문할 예정인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해인사 방문을 취소하면서 계획이 실패하자 편강렬을 40여 일 동안 숨겨 준 후 여비를 주어 만주로 망명시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명균은 경상북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조직적으로 시위운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동지들이 이른바 ‘만명 탄원서’를 제출하여 석방되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는 가운데 영남 지역의 곽종석·김창숙 등과 호서 지역의 김복한 계열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보내고자 하는 파리 장서 사건이 일어났다. 이명균은 ‘파리장서’에 서명하고 유림단 대표로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출옥 후인 1920년 3월 이명균은 문경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장 신태식·김찬규·이응수 등 20여 명과 함께 나곡산재(羅谷山齋)에서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을 결성하였다.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은 3·1운동 이후 성립된 상해임시정부 등 해외 독립 운동 단체에 대한 후원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로서, 이명균은 군량총장으로서 재정 관리 및 군자금 조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명균은 군자금 모금이 부진하자 자신의 재산을 매각하여 5회에 걸쳐 10여 만 원을 상해임시정부로 보냈는데, 이에 상해임시정부는 감사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이명균을 후원의용단장과 재무총장에 임명하였다.

이후 이명균김찬규·이응수 등과 협의하여 만주에 있는 서로군정서에 연락하여 서로군정서 명의로 발행된 군자금 모금 위임장과 사형 선고장, 상해임시정부 명의의 독립 선전에 관한 경고문 및 『독립신문』을 들여왔다. 또 서로군정서 소속의 김응섭으로부터 권총 1정과 탄환 14발을 받기도 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은 1922년부터 경산·청송·안동·영일·군위·영덕 등지의 부호들에게 군자금 37만 원을 요구하는 ‘군자금 모금서’와 이에 불응할 때에는 사형에 처한다는 ‘사형 선고서’를 보내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지들에게 자금을 징수하도록 하였다.

1922년 11월 이명균은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해 가던 일본 경찰에 의해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고, 군자금으로 모금한 8만 3000원도 몰수당하였다, 1923년 3월 대구지방법원 예심 중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탈골과 자상, 화상 등의 병을 얻어 심각한 상황에 빠지자 당시 대구복심법원 판서였던 이우익이 병보석을 주선하여 3월 6일 출감하였다. 그러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그 해 5월 2일 순국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나실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1970년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 있는 자산공원에 순국기념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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