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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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新里古墳群 |
영어음역 | Daesin-ri Gobungun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of Daesin-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 885-45 일원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배성혁 |
발굴 조사 | 2003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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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 2003년 7월 |
조성 | 6~7세기 |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 885-45 일원 |
성격 | 고분군 |
양식 | 앞트기식 돌덧널무덤[橫口式 石槨墓]|돌뚜껑널무덤[石蓋 土壙墓]|널무덤[土壙墓] |
크기(높이, 지름) | 제2호 석곽: 2.7m[길이]|1.02m[너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위치]
대신리 고분군은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 일원의 해발 340m인 봉화재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작은 능선의 말단부에 조성되어 있다. 고분군의 전방에 해당하는 북쪽으로는 감천 변의 너른 충적 평야지가 형성되어 있고, 강 건너편에는 고대 감문국의 중심지로 비정되고 있는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양천리 일대가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신리 고분군의 조성 시기는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대로 삼국 시대 후기에 해당한다. 고속국도 1호선[경부 간]의 선형 개량과 확장을 위하여 2003년 5월부터 7월까지 중앙문화재연구원에 의해 고분군 중 제1지구와 제2지구의 1만 4200㎡가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제2지구에서 돌덧널무덤[石槨墓] 5기와 널무덤[土壙墓] 93기가 조사되었는데, 이중 삼국 시대의 것으로 확실시 되는 것은 돌덧널무덤 3기와 널무덤 6기이다. 그밖에도 돌덧널무덤 1기와 널무덤 8기가 삼국 시대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규모는 모두 소형이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시대 분묘에 해당한다.
[형태]
발굴 조사된 고분의 입지는 구릉 정부와 사면이며, 등고선을 기준한 장축 방향은 돌덧널무덤이 모두 평행하는 데 비해 널무덤은 평행하는 것과 직교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석곽묘는 지상식의 앞트기식[橫口式] 구조로 판단되는데, 하단부만 남아 있으며 내부 바닥은 전면 부석되었다.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제2호 석곽의 규모는 길이 2.7m, 너비 1.02m 정도로, 이러한 평면 형태는 너비로 보아 최소형의 앞트기식 석실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이 분명하지 않은 제4호 석곽은 유일한 반지하식 판석조이며 바닥 면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이 맨바닥을 활용하였다. 다른 석곽들은 거의 유실되었으며 너비가 좁은 형태이다.
널무덤은 매우 작고 협소한 형태이며 두 가지 구조로 구분된다. 하나는 일반적인 움무덤이며, 다른 하나는 토광의 상부에 개석을 덮은 이른바 돌뚜껑널무덤[石蓋土壙墓]이다. 두 가지 형태의 널무덤에도 바닥 면을 부석한 것과 맨바닥을 사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모든 널무덤에는 내부에 목관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토 유물]
돌덧널무덤과 널무덤에서는 짧은[短脚] 뚜껑 갖춤 굽다리접시[有蓋高杯], 병형토기(甁形土器), 뚜껑[蓋], 목 짧은 항아리[臺付直口壺], 사발[盌] 등의 토기류와 방추 및 쇠도끼[鐵斧], 유리구슬이 출토되었다. 고분의 기수에 비해 부장 유물이 매우 빈약하여 박장(薄葬)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토기류의 기형도 모두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대의 것이므로 시기적으로도 신라 지역 고분의 부장 양상이 박장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현황]
전체 고분군의 범위 가운데 발굴 조사된 고분들과 조선 시대 분묘들은 경부고속도로 확장 구간에 포함되어 있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대신리 고분군의 피장자들은 삼국 시대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 일대에서 감천 남안의 충적 평야지를 생활 터전으로 살았던 사람들로 추정된다. 대신리 고분군은 김천 지역 하위 단위 고분군 중의 하나로, 김천 지역은 물론 신라 권역의 지역 단위 고분 문화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