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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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樂全堂集 |
영어공식명칭 | Nakjeondangjip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태정 |
간행 시기/일시 | 1654년 - 『낙전당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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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간행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 60-1]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신익성 |
편자 | 이민구 |
간행자 | 이민구 |
권책 | 15권 7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30×18㎝ |
어미 | 상화문어미 |
권수제 | 낙전선생집(樂全先生集) |
[정의]
경기도 가평군 관련 시를 남긴 조선시대 문신 신익성의 시문집.
[저자]
신익성(申翊聖)[1588~1644]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군석(君奭), 호는 낙전당(樂全堂)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 어머니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의 딸이다. 선조의 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혼인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김상헌(金尙憲) 등과 함께 청(淸)과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다.
신익성의 누나는 1618년(광해군 10) 춘천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 가다가 가평에서 객사 하였는데, 신익성이 누나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가평에 가면서 지은 시가 남아 있다. 신익성은 이후 잠곡(潛谷) 김육(金堉)[1580~1658]과 사돈지간이 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신익성의 아들은 신익성 생전에 시 1,700여 편과 글 400여 편을 모았는데, 1654년(효종 5)에 이민구(李敏求)가 이를 다시 편집해 간행한 것이 『낙전당집』이다.
[형태/서지]
『낙전당집』은 15권 7책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에 전체 크기는 세로 30㎝, 가로 18㎝이다. 10행 20자이고, 상화문어미(上花紋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낙전당집』 권1부터 권4까지 시 501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5·권6에는 서(序) 50편이, 권7에는 기 12편이, 권8에는 서후(書後) 14편, 소차(疏箚) 9편, 잡저 5편, 발 3편, 전(傳) 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9에는 서(書) 2편, 척독(尺牘) 20편이, 권10에는 묘지명 18편이, 권11에는 묘표 6편이, 권12에는 묘갈명 9편, 묘비명 6편이, 권13·권14에는 행장 8편이, 권15에는 제문 25편, 뇌(誄)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낙전당집』 권2에는 신익성이 누나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가평에 가면서 지은 시가 실려 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
과잠곡(過潛谷)[잠곡을 지나가다]
우수가평로(又首加平路)[또 가평으로 길을 향하니]
편상차일심(偏傷此日心)[오늘 이 마음 더욱 아파라]
유혼초미득(游魂招未得)[떠도는 넋을 부르지도 못했기에]
누식환첨(哀淚拭還沾)[애절한 눈물 닦아도 흘러내리네]
고옥의모동(故屋欹茅棟)[옛 집은 초가 기둥이 기울었고]
소리애극림(疏籬碍棘林)[성긴 울은 가시덤불로 뒤덮였네]
춘음고부제(春陰苦不霽)[봄 구름은 괴롭게도 걷히지 않고]
산조조비음(山鳥助悲吟)[산새들은 슬픈 노래를 도와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