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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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子䃘 |
영어음역 | Kim Jagae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지(金輊)이고 어머니는 전공총랑을 역임한 고첨(高瞻)의 딸이다.
[생애]
1411년(태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14년에 문과에 올라 예문관·춘추관에 기용되었다. 1421년(세종 3)에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로 있다가 춘추관의 관직을 겸대(兼帶)하고 1422년에 사헌부감찰이 되어 겨울에 내간(內艱)을 당하였다. 1425년에 다시 감찰에 제수되었다가 예조좌랑으로 전임되어 함경도도사를 겸하였다. 1426년에 이조좌랑이 되었고 1427년 정미에 교서관교리(校書館校理)를 겸하고 이어 헌납·지제교를 거쳐 겨울에 하정서장관으로 연경에 갔었다. 1429년에 성균관직강·사헌부지평과 호조·병조의 정랑을 지내고 부모의 노환을 이유로 외직을 청하여 정선군수로 나갔다. 1436년 다시 병조정랑이 되었다가 1437년에 외간(外艱)을 만나 복제(服制)를 마치고 병조정랑에 제수되었다. 1440년에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으로 승진하고 이어 직보문각, 평안도경력, 한성부와 봉상시의 소윤,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직예문관(直藝文館)을 두루 거쳐 1445년에 선산부사로 나가 학교를 수리하였다. 1452년에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직수문전(直修文殿)을 역임하고 사간원좌사간에 전직하여 지제교 겸 춘추관편수관으로 재직하다가 좌천되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로 옮기었다. 1453년(단종 1) 10월에 계유정난 후 형조참의에 제수되더니 12월에 첨지중추원사로 옮기었다. 1460년(세조 6)에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양주 풍양으로 물러났다.
[묘소]
경기도 남양주 진건면 배양1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