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E010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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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기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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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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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마을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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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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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용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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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대 용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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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배기
용대동은 사정1리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다. 오늘날 용대동은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으나, 용대동이라 부르는 마을이 생기기 전에 이미 마을이 있었는데 바로 퉁뱅이이다. 따라서 용대동은 이 퉁뱅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퉁뱅이란 퉁쇠로 농기구 등을 만드는 곳으로 천민 취급을 받던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전해지는 까닭에, 마을 사람들은 퉁뱅이란 마을 이름을 천하다 하여 1960년대부터 퉁뱅이를 용대동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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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쇠
용대동은 행정구역으로는 사정1리에 속한 마을로 13가구 중 11가구가 경주이씨로,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경주이씨가 용대동에 살기 시작한 이후 약 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인 신라말 고려시대까지도 올라감을 볼 수 있다. 옛 지리류(地理類)를 기록한 문헌자료인 『여지도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향·소·부곡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부곡이란 소와 함께 수공업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신라말 고려시대부터 존재해 있던 제도이다. 당시에 사정리 부근 지역에 금촌부곡(金村部曲)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하여 마을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즉 이 지역에서 쇠를 다루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 금촌부곡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이 용대동 마을로 올라오는 입구에 있는 서낭당 남쪽으로 앞산 밑의 약간 넓은 계곡을 마을 사람들은 ‘금소박이’, ‘금소배기’라 부르는 것도 쇠를 다루었던 곳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지역에서도 주물쇠의 쇠똥이 많이 수습되고 있어 예전에 쇠를 이용한 작업이 이루어졌었음을 보여준다.
용대동 마을로 부르기 전의 마을이름 퉁뱅이. 퉁뱅이 마을은 어떻게 이루어진 마을일까.
퉁뱅이란 퉁쇠를 다루어 그릇과 농기구를 만드는 마을이라 하여 퉁뱅이라 하였다고 전하여진다. 퉁쇠라는 것은 주물유기를 일컫는 말로서 일명 주물용 쇠로서 주석 외에 잡쇠 즉 아연, 니켈, 납 등을 혼합한 물질을 말하며, 쉽게 말해서 놋쇠의 일종이다. 놋쇠 그릇을 만들 때 두들기고 늘이고 다듬어 만드는 방짜놋쇠는 ‘양반쇠’라 하고, 만드는 곳을 ‘놋점’이라 하는 데 비하여, 주물놋쇠를 ‘퉁쇠’, 주물유기 만드는 곳을 ‘통점’이라고 하였다. 같은 놋쇠그릇인 유기를 만드는 사람끼리도 방짜유기를 만드는 사람은 양반에 속하고, 주물유기인 퉁쇠로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천대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퉁뱅이 마을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그곳은 현재 용대동 마을이 아니라, 마을 뒤쪽의 부용산 쪽으로 오르다 보면 넓고 평평한 계곡이 있는데 그곳이 퉁뱅이 마을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그 지역에서는 쇠똥, 쇠가 녹은 용암 같은 것이 많이 수습되고 있어 예전에 그곳에 마을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용대동은 퉁쇠 치는 소리로 시작된 마을 퉁뱅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퉁쇠로 살아왔던 마을이 바로 퉁뱅이다.
용대동 마을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 마을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