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41
한자 朴昇煥
영어공식명칭 Park Seung-hwan
이칭/별칭 성환(性煥),구여(九如),운파(雲坡)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은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 9월 7일연표보기 - 박승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896년 9월 - 박승환 무관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897년 3월 - 박승환 육군 보병 참위 임관
활동 시기/일시 1904년 2월 - 박승환 육군 참령 진급
몰년 시기/일시 1907년 8월 1일연표보기 - 박승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박승환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73년 10월 31일 - 박승환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 안장
출생지 박승환 출생지 -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지도보기
성격 군인
성별
대표 경력 대대장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개항기 군인.

[개설]

박승환(朴昇煥)[1869~1907]은 대한제국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 대대장으로서 1907년 8월 일제의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에 자결로서 항거했던 인물이다.

[가계]

박승환은 아버지 박주표(朴周杓)와 어머니 남양(南陽) 홍씨 사이의 3남매 중 장남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활동 사항]

박승환은 1869년 9월 7일 한성(漢城)에서 태어났다. 1887년 무과 급제 후 1896년 9월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신식군대 장교훈련을 받고 1897년 3월 졸업해 육군 보병 참위(參尉)로 임관했다. 1897년 3월 시위대(侍衛隊)를 개편하면서 시위 제1연대 제1대대 장교로 선발 배치되었다. 1899년 11월 육군 부위(副尉)로 진급되어 시위 제1연대 제2대대 소대장에, 1900년 7월 육군 정위(正尉)로 승진 후 8월 시위 제1연대 제1대대 중대장을 맡았다. 1904년 2월 육군 참령(參領)으로 진급하여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 대대장이 되었다.

을사늑약의 무효와 일제 침탈의 불법성을 알리고자 고종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자, 일제는 이를 구실로 1907년 7월 19일 고종황제를 강제로 양위케했다. 양위식 날인 7월 20일, 휘하 장병을 이끌고 궁중으로 들어가 일본군을 내쫓고 고종황제의 복위를 계획했으나 황제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하여 실행을 중단했다.

1907년 7월 31일 순종황제에게 「군대해산조칙」 재가를 받아낸 한국주차군 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는 다음날인 8월 1일 아침 7시 대대장 이상 장교를 관저에 긴급 소집했다. 병을 핑계로 중대장 김재흡(金在洽)을 대리 참석시킨 박승환은 군부대신의 「군대해산조칙」 낭독과 10시 군대해산식을 전해듣고 비통함에 대성통곡했다. 이어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니 만번 죽어 아깝지 않다[軍人不能守國 臣不盡忠 萬死無惜]”라는 유서를 쓰고 권총으로 자결했다.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 대대장이었던 박승환의 자결 순국에 시위 제1연대 제1대대 장병들은 해산을 거부하고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을 들고 봉기했다. 시위대 제2연대 제1대대 병사들도 견습 참위 남상덕(南相悳)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시가전을 전개했다. 박승환의 자결순국을 계기로 대한제국 장병들은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며 교전을 벌였고 이후 상당수가 의병부대에 합류했다.

[묘소]

1973년 10월 31일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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