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371
한자 關內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오기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995년연표보기 - 관내도 설치
폐지 시기/일시 1106년 - 양광충청주도 설치
관할 지역 관내도 금주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지도보기|신대방동지도보기|상도동지도보기
관할 지역 관내도 과주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지도보기|본동지도보기|흑석동지도보기|동작동지도보기|사당동지도보기

[정의]

995년(성종 14)에 설치되었던 10도 중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을 포함하는 지방행정구역.

[개설]

관내도는 고려 성종 대에 획정된 지방 체제이다. 성종은 지방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995년(성종 14) 당제(唐制)를 본받아 기존의 12목(牧)을 12주 절도사(節度使)로 개편하고 영내를 10도(道)로 개편하였다. 이 중 관내도의 영역은 양주(楊州)·광주(廣州)·황주(黃州)·해주(海州) 일대를 묶는 형태로 설정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성종이 통치 수단으로서 중국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지방 제도의 명칭에도 중국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전국을 10도로 구획한 것은 당 태종(太宗)이 영내를 10도로 나누었던 것을 가져온 것인데, 10도의 세부적인 명칭은 중국과 다소 달랐다. 그 중 관내도는 중국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수도 개경 및 그 주변 적기현(赤畿縣)의 영역을 남북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설치하여 수도 인근 지방을 통제하는 데 활용하려 하였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지리1, 지리 서문, 『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고려사』 권58, 지12, 지리3, 서해도,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성종 14년 7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6, 경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1, 황해도에 관내도 관련 기록이 나타난다.

[내용]

관내도의 관할 영역은 『고려사』 지리지 등에 따르면 양주·광주·황주·해주 일대의 29주(州) 82현(縣)으로 구성되지만 현재 그 전체의 목록은 전해지지 않아 일부만이 확인 가능하다. 관내도의 영역은 대략 현재의 황해도와 서울특별시 및 개성과 그 인근을 제외한 경기도 일대에 해당되는데, 구획된 영역이 상대적으로 넓고 그 영역이 적기현의 관할구역에 의해 분단된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관계로 곧 동도(東道)와 서도(西道)로 나누어 운영되었다. 현재의 동작구 영역은 관내동도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변천]

관내도는 관내동도와 관내서도로 나누어 운영되다가 관내서도 지역이 먼저 서해도(西海道)로 편제되어 관내도에서 분리되었다. 분리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는데, 대략 현종대 초기, 혹은 문종대 후기로 추측된다. 이후 고려가 5도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1106년(예종 1) 관내도의 남은 영역과 중원도(中原道)·하남도(河南道)를 통합하여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를 설치하게 되면서 관내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995년(성종 14) 10도의 설치는 처음으로 지방관제로서 도제가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성종 대의 10도는 해당 지역 내의 군현을 총괄하는 행정체계상의 상위기구가 아니라, 지방에 대한 순찰이나 감찰을 위한 구획을 설정하는 영역 구분의 수준에서 활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관내도 역시 현재의 동작구 영역을 포함한 서울특별시 및 경기도, 황해도 일대를 같은 목적으로 묶어 구획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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