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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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次兪克己韻 贈玄悅上人兪好仁 |
이칭/별칭 | 「유호인의 시에 차운하여 승려 현열에게 지어 준 시」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39년 -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 저자 양희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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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477년 -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04년 -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 저자 양희지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87년 - 『대봉집』에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 수록하여 간행 |
배경 지역 | 오천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양희지 |
[정의]
대구 지역 오천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양희지가 유호인의 시에 차운하여 승려 현열에게 지어 준 한시.
[개설]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次兪克己韻 贈玄悅上人兪好仁)」의 저자 양희지(楊熙止)[1439~1504]의 본관은 중화(中和)이고, 자는 가행(可行)·정보(楨父)이며, 호는 대봉(大峰)이다. 아버지는 양맹순(楊孟淳)이고,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 정시교(鄭是僑)의 딸이다. 1474년 문과 급제한 이후로, 이조좌랑, 사헌부감찰, 예조좌랑, 형조판서, 충청감사, 도승지, 대사헌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 김굉필(金宏弼)[1454~1504] 등 조선 전기 명신들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대봉집(大峯集)』이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의 오천서원(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극기(克己)이고, 호는 임계(林溪)·뇌계(㵢溪)이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1474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거창현감, 의성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유호인은 시재(詩才)가 출중하여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저서로 『뇌계집(㵢溪集)』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남계서원(藍溪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유호인의 「유송도록(遊松都錄)」에 1476년 가을에 임금이 문신을 뽑아 휴가를 주어 산방에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양희지와 함께 장의사(藏義寺)에서 공부를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유송도록」에 현열(玄悅)이 등장하는데, 장의사에 소속된 승려이다. 1477년 4월에 유호인은 현열과 더불어 돈의문(敦義門)을 나가서 사현(沙峴)을 넘어 가론천(嘉論川)에 이르렀다는 내용으로 보아 양희지도 함께 동행하면서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 작품을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의 이칭은 「유호인의 시에 차운하여 승려 현열에게 지어 준 시」이다.
[구성]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는 당시(唐詩)와 송시(宋詩) 풍을 겸하고 있다. 선경후정(先景後情)과 자신의 감정을 바로 표현하는 형식을 겸하고 있다.
[내용]
돈의문전상마지(敦義門前上馬遲)[돈의문 앞으로 말타고 어슬렁어슬렁]
가론천반렵어시(佳論川畔獵魚時)[시냇가에서 고기 잡는 이야기가 좋아]
풍류거거송경로(風流去去松京路)[풍류객들은 송경으로 가고 또 가고]
소탕삼인일운사(疏宕三人一韻師)[소탕한 세 사람 한 수씩 지어 스님께]
[특징]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는 ‘지(支)’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의의와 평가]
「차유극기운 증현열상인유호인」의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에서는 공간적 배경을 회화적으로 드러내고, 양희지 자신을 공간 안의 풍경에 담아 노래하고 있다. 선경(先景)의 형식을 기구와 승구에 담았다. 이어지는 전구(轉句)에서는 시선을 이동시켜 송경으로 가는 풍류객들을 조명하며 즐겁고 여유로운 정서를 드러내었다. 결구(結句에서는 함께 모인 사람들의 수더분하고 털털한 성격을 바로 표출하고, 시를 주고받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당시와 송시의 체제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