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남매와 고모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129
한자 將軍 男妹- 顧母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장군 남매와 고모령」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 「장군 남매와 고모령」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관련 지명 고모령 -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남매|홀어머니|승려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담|오누이 힘내기 설화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고모역 부근에 있는 고모령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장군 남매와 고모령」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산동 고모역 부근에 있는 고모령(顧母嶺)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 유래담이자 오누이 힘내기 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장군 남매와 고모령」은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산동 고모역 부근의 고모령(顧母嶺)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에 힘센 장군 남매가 살았다. 누이동생도 오빠와 힘이 맞먹을 정도여서 주위 사람들은 오빠보다 동생을 더 칭찬하였다. 하루는 심술이 난 오빠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동생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서 산 쌓기 시합을 하자고 하였다. 남매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산을 쌓기로 하였는데, 오빠는 옷섶으로 돌을 날라다 쌓았고, 누이동생은 치마폭에다 돌을 담아 옮겨서 쌓았다. 해가 저물 때가 되자 누이동생의 산이 더 높았다. 화가 난 오빠는 큰 바위로 누이동생이 쌓은 산의 허리를 무너뜨려서 자신이 쌓은 산의 높이가 누이동생이 쌓은 산의 높이보다 조금 더 높아지게 하였다.

남매가 싸우는 것을 알게 된 홀어머니가 슬픔에 잠겨 탄식하며 집을 나와서 한참 걷다가 고개 정상 부근에서 집을 향하여 고개를 돌려보았다고 한다. 여기서 돌아볼 ‘고(顧)’, 어머니 ‘모(母)’, 고개 ‘령(嶺)’을 합쳐서 ‘고모령’이라는 고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남매가 쌓은 산은 형제봉(兄弟峰) 또는 남매봉(男妹峰)이라고 부른다.

일설에는 옛날 고모령에 홀어머니가 어린 남매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지나가던 승려가 “지금 가난한 것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아서다”라고 하였다.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하여 산을 쌓았는데, 지금의 모봉(母峰), 형봉(兄峰), 제봉(弟峰)이 그 산봉우리이다. 그런데 남매가 서로 높이 쌓으려고 시샘하자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며 집을 나와 버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슬픔에 잠겨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 길이고, 고개 정상에서 집을 돌아보았다고 하여서 ‘고모령(顧母嶺)’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 징병으로 끌려가는 장병들을 태운 열차가 고모령을 넘을 때,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하여 모인 어머니들로 고모령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장군 남매와 고모령」은 지명 유래담과 오누이 힘내기 설화를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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