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952
한자 張萬榮
영어공식명칭 Jang Manyeong
이칭/별칭 초애(草涯)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장만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2년 5월 - 장만영 『동광』에 투고 시 「봄 노래」가 추천되어 등단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장만영 첫 시집 『양(羊)』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66년 - 장만영 한국시인협회 회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장만영 신시 60년 기념사업회 부회장 취임
몰년 시기/일시 1975년연표보기 - 장만영 사망
출생지 황해도 연백 - 황해도 연백군
활동지 육군종군작가단 - 대구광역시
성격 시인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한국시인협회 회장

[정의]

6·25전쟁 시기 대구에서 결성된 육군종군작가단에서 활동한 시인.

[개설]

장만영(張萬榮)[1914~1975]은 1914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초애(草涯)이다. 1932년 5월 『동광』에 투고한 시 「봄 노래」가 김억에 의하여 추천됨으로써 등단하였다. 6·25전쟁 때 대구에서 결성된 육군종군작가단에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장만영은 광복 후에는 『서울신문』 출판국장과 196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8년 신시 60년 기념사업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7년에 발간한 첫 시집 『양(羊)』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출판사를 경영하며 1969년 김광균의 『황혼가』 등의 시집을 발행하였다. 학생 문예지인 『신문예』와 출판사 산호장(珊瑚莊)과 춘조사 등을 경영하였다.

장만영은 1975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장만영은 일제강점기에 『양』[자가본, 1937], 『축제』[인문사, 1939]를 간행하였다. 그리고 『유년송』[산호장, 1948], 『밤의 서정』[정양사, 1956], 『저녁 종소리』[정양사, 1957』, 『그리운 날에』[한일출판사, 1962], 『장만영 시 선집』[성문각, 1964], 『저녁놀 스러지듯』[규문각, 1973] 등의 작품을 남겼다. 평론집 『현대시 감상』[산호장, 1953]을 비롯하여 『소월시 감상』[박영사, 1958], 『이정표』[신흥출판사, 1958], 『소월 시 감상』[박영사, 1959], 『현대시 이해와 감상』[신흥출판사, 1961] 등이 있다.

장만영의 대표 시 「달·포도·잎사귀」는 가을밤 뜰에서 느끼는 정취를 시각적·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신선하게 그려내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순이(順伊) 벌레 우는 고풍(古風)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의의와 평가]

장만영은 신석정과 김광균의 특징을 두루 갖춘 시인으로 평가된다. 전원을 노래하는 점에서는 신석정을 닮았으며, 이미지를 강조하는 점에서는 김광균을 닮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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