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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숙천동 오산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484
한자 大邱 淑泉洞 烏山齋
영어공식명칭 Osanjae House of Sukcheon-dong, Daegu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 2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대구 숙천동 오산재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2009년 - 대구 숙천동 오산재 훼철
원소재지 대구 숙천동 오산재 - 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 24 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홑처마 팔작기와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성주배씨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에 있던 1919년 건립된 성주배씨 문중의 재실.

[개설]

대구 숙천동 오산재는 안동 금척암(金拓庵)의 문인이었던 성주배씨(星州裵氏) 미헌(米軒) 배봉상(裵鳳祥)이 고종 황제가 승하했을 때 배일정신을 드높이며 슬피운 뜻을 기려 그 후손이 1919년에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미헌 배봉상[1862~1935]은 괴암공(槐庵公) 배상조(尙藻)의 9세손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에 거주했다. 1918년 고종인산에 거주지의 뒷산에 망곡단을 쌓고 매월 초하루 보름 예를 올리고 삼년상을 치렀다고 한다.

[위치]

대구 숙천동 오산재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 24번지에 있었으나 2009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혁신도시 건설부지에 포함되어 없어졌다.

[변천]

원래는 미헌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15년 건립한 미헌정사에서 출발하였지만, 수차례 개축하여 1919년 ‘오산재’로 명명하고 재실의 기능을 하였다. 함께 있는 영정각은 1935년 후학과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대구 숙천동 오산재와 영정각은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혁신도시 건설부지에 포함되어 없어졌다.

[형태]

대구 숙천동 오산재는 1칸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방형의 대지에 동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기와 집으로, 평면은 중앙에 단칸의 대청을 두고 좌우에 각 1칸의 온돌방을 꾸민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영정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 1칸 규모로 출입시의 편의성을 위해 전면에만 툇마루를 시설하였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좌우 양끝에 풍판을 달았다.

[현황]

대구 숙천동 오산재는 2009년 모두 없어졌다.

[의의와 평가]

대구 숙천동 오산재는 현재 사라지고 없지만 소략한 관련자료가 남아 있어 대구광역시 재실 연구에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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