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7년 1월 대구에서 발생하여 국내외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경제 주권 운동.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廣文社) 내에 경상북도 각 군의 유지들로 구성되어 있던 문회(文會)는 특별회를 열고 대구광문사의 문회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변경하였다. 이날 열린 특별회에서 광문사 부장 서상돈(徐相敦)이 국채 1300만 환을 갚아 일제로부터 국권을 보전하자고 제안하...
-
1876년 개항에서 1945년 광복까지 대구의 역사. 대구는 개항 이후 전통적 조선 사회에서 시민사회에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여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대구 사회는 개항 이후 서구 근대가 파급되는 과정에서 전통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이냐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김광제(金光濟)[1866~1920]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병순(金炳淳)[?~?]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석빈(金錫斌)[?~?]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1907년 1월 대구에서 발생하여 국내외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경제 주권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가 대구광문사 내 문회(文會)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꾸는 특별회에서 대구광문사 부사장 서상돈의 제안과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의 즉각 실행이 제의되면서 시작되었다. 대구광문사는 「국채 보상 취지서」를 만들어 주요 도시...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달명의숙은 1906년 10월 경북 관찰부 관할인 낙육재(樂育齋)와 연계재(蓮桂齋) 소속의 전토를 합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었다. 달명의숙의 설립은 1906년 3월 새로 부임한 경북 관찰사 신태휴(申泰休)의 학교 설립에 대한 적극적 지원 정책의 결과였다. 신태휴는 경북 관찰사로 부임하자마자 대구사범학교, 측량강습소 등을 설치한 바 있다....
-
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설립한 객주 조직. 대구상무소(大邱商務所)는 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조선인 자본가의 이익을 구현하는 동시에 대구일본거류민단과 일본인상업회의소에 대응할 목적으로 설립한 객주 조직이었다....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여성 계몽운동 단체. 대구애국부인회(大邱愛國婦人會)는 대구에서 여성 계몽운동을 표방하며 1908년 12월 결성된 여성단체이다....
-
근대 계몽운동 시기의 교육도시 대구. 근대 계몽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 바로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운동이었다. 근대 계몽운동 시기는 ‘학교 설립의 시대’로 불렸다. 대구에서도 계몽운동 시기에는 근대 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계몽운동 시기를 전후하여 교육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 이를테면 ‘서당’에서 ‘학교’로 변화되었다. 계몽운동 시기에 대구의 근대 교육기...
-
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대구광학회에서 자치 조직으로 설치한 기구. 대구시의소(大邱市議所)는 1906년 대구광학회가 대구부민의 지식을 개발하고, 민권(民權)을 부식하기 위하여 결성한 자치 기구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된 유사 자치 기구. 대한제국기 대구시청(大韓帝國期大邱市聽)은 윤영섭 등이 민의의 자치 기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도성호(都性浩)[?~?]는 1902년부터 1906년 사이 경상북도관찰부 관할인 낙육재(樂育齋)에서 공부한 유생 출신이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도정호(都正浩)[?~?]는 대한제국의 외획 제도로 운영된 경남봉쇄원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 지역 최초의 계몽운동 단체.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 등 개화파 지식인들은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이어 1896년 7월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독립문 건립과 독립공원 조성을 창립 사업으로 하여 발족한 독립협회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외세의 배격, 내정 개혁을 주장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건립하였으며, 1898년 서...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이자 서예가. 박기돈(朴基墩)[1873~1947]은 18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서예가이자 경제인으로서 활동하며 교육운동·사회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박민동(朴民東)[1874~?]은 1874년에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였으며, 1894년(고종 3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승동(朴承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정동(朴晶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기하(徐基夏)[?~?]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병규(徐炳奎)[?~?]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봉기(徐鳳綺)[1847~?]는 18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한협회 대구지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대구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서흥균(徐興均)[?~?]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수창학교는 설립 취지서를 통하여 신학(新學)의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구학(舊學)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였다. 수창학교는 신구학문을 융합하여 근대 교육을 실현하려 하였다. 구체적으로 인성과 덕육에 대해서는 전통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목표를 갖고 있었다....
-
개항기 대구의 상인 자본가들이 설립한 상회사. 수창사(壽昌社)는 1898년 대구에서 설립되어 1935년 무렵까지 영업 활동을 펼쳤다. 수창사는 낙동강 뱃길을 이용하여 어염미두(漁鹽米豆) 무역을 펼치던 대구의 상인 자본가층이 결성한 근대 초기 형태의 상회사(商會社)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사무소로도 기능하였다. 수창사의 사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1,000냥 이상의 투자금을 낼...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구광역시 역사. 대구는 지형적으로 영남의 중심부이며, 지리적으로 경상도 상변에서 뻗쳐 나온 소백산맥에 연이어 팔공연령이 병립하고 남쪽에는 구조곡이 나란히 발달한 가운데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면서 낙동강 중류에 합류하는 금호강과 금호강 지류인 신천이 퍼져 흐르는 분지에 속한다. 대구시 가로의 주요부는 대구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신천의 범람원으로 형성되...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유상보(柳尙輔)[?~?]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금연상채회(禁烟償債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윤영섭(尹瑛燮)[?~?]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병두(李柄斗)[?~?]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장우(李章雨)[1871~1944]는 1871년 9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하서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이후 대구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친일반민족행위를 이어 갔다. 창씨명은 이와무라 쇼우[岩村章雨]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이현주(李玄澍)[?~?]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고,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광문사의 자치 조직으로 결성된 계몽운동 단체. 대구광문사가 주도하여 결성한 인민대의소(人民代議所)는 민지개발(民智開發)과 민권을 부식(扶植)하기 위한 추진 기관이었다. 또한 대구광문사가 지향하는 바와 동일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치 조직이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장상철(張相轍)[1870~1930]은 1870년 10월 17일 대구부 덕산정 131번지[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금연상채회와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으나 이후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적을 이어 갔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정해진(鄭海鎭)[?~?]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대림(崔大林)[?~?]은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에서 활동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시교(崔時敎)는 1908년 대구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에 가입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최종륜(崔鍾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추교정(秋敎廷)[?~?]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흥화학교는 1899년 12월에 흥화학교 지교로 설립되었다. 흥화학교 지교는 1909년 9월 6일 흥화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10년 10월까지는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