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노동운동가. 김광서(金光瑞)[1878~?]는 대구노동회 회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29년 원산총파업 때 어용노조 활동을 하였고, 대구노동회의 자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교육운동가. 김찬수(金燦洙)[1881~1952]는 188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15년 해성학교(海星學校)를 인수하여 교육계에 뛰어든 후 교육운동과 사회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는 석년(石年)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신사회 건설과 수양의 최고 기관을 표방하며 창립한 청년운동 단체. 대구청년회(大邱靑年會)는 1920년 1월 신학문을 수학한 신흥 청년 지식인층과 신흥 경제인 및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대구 최초의 청년운동 단체이다. 1920년대 전반에는 문화 운동의 최고 기관을 표방하였고, 1920년대 후반에는 청년운동의 전 조선적 운동으로의 전환을 표방하였다....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소재의 조양회관 건축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치가. 서상일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역동적인 삶의 궤적을 보여준 특징적인 인물이었다. 서상일의 삶의 궤적은 근현대 한국사회의 주객관적 조건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었고, 한국 근현대사의 변동과 상호연관성을 맺고 있었다....
대구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 최원택(崔元澤)[1895~1973]은 1895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구청년회 활동을 시작으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및 조선노농총동맹 조사부 담당 상무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중국 만주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 남조선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석초(石樵)·서상필(徐相弼)·김성덕(金聲德)이라는 이름으로도...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최윤동(崔允東)은 1897년 7월 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최명조(崔明祚)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중국과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최진(崔震)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 최춘택(崔春澤)[1905~?]은 1905년 5월 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1월 남선 개발과 사회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문화 운동의 실행 기관을 목표로 결성된 대구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구청년회는 1920년 5월 문사극(文士劇)를 개최하고 다수의 기부금을 조성하였다. 이후 최춘택은 1924년 5월 무...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사회운동가. 한규석(韓圭錫)[1888-1936]은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구청년회 가입을 시작으로 청년운동·노동운동·교육운동·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는 백허(白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