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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조선시대의 학자인 한강 정구와 낙재 서사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강학소. 이락서당(伊洛書堂)은 조선시대 정조 때 대구, 달성, 칠곡 등 인근 9문중의 선현들이 금호강(琴湖江)과 낙동강(洛東江)의 합수지인 강창(江倉)을 택하여 삼가헌(三可軒) 박성수(朴聖洙)가 1765년(영조 6) 9월에 착공하여 1766년 봄에 준공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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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에 있는 밀양박씨 대곡동 입향조 박세기를 기리는 재실. 경림재(景林齋)는 밀양박씨 대곡동 입향조 임은(林隱) 박세기(朴世箕)[?~?]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齋室)이다. 박세기는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살다가 37세 때 임진왜란을 피하여 성주목 대곡촌[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으로 이주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였을 때 3년간 시묘살이를 하는 등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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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안에 보존된 조선 후기 비석 스물아홉 기 . 경상도관찰사 및 대구판관 선정비는 경상감영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는 선정비 스물아홉 기를 일컫는데, 선정비는 조선 후기에 재직하였던 경상도관찰사, 대구부사 등의 관리들과 그들의 업적·송덕을 기록하고 있다. 비석 각각의 건립 시기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모두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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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우재악을 추모하는 재실. 경인재(景仁齋)는 우재악(禹載岳)[1734~1814]을 기리기 위하여 단양우씨(丹陽禹氏) 월곡 종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우재악의 자는 탁중(卓中)이고, 호는 인촌(仁村)이다. 1795년(정조 19) 경상감영에서 고래의 명언명구를 모은 『오경백선(五經百選)』을 교정한 공로로 『시경(詩經)』·『맹자(孟子)』·『주서백선(朱書百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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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아산장씨 덕봉공파 문중 재실. 계술재(繼述齋)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아산장씨(牙山蔣氏) 덕봉공파(德峰公派) 문중 재실이다. 대구 지역의 아산장씨는 대구 고산[현 가천동] 입향조 장흥부(蔣興膚)의 증손자인 덕봉(德峰) 장자원(蔣自元) 대에 이르러 유력 문중으로 성장하였다. 후손인 장주한(蔣柱漢)[1605~1669]이 만년에 가천동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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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개항기 대구군수 이범선의 공적을 기록한 불망비.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郡守 李侯範善 永世不忘碑)는 개항기인 1898년 큰 홍수가 났을 때 대구 지역의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이범선(李範善)[1835~1905]의 공적을 기리고자 1899년(고종 36) 에 세운 불망비이다. 이범선은 자가 치원(穉元), 호는 수서(水西)이며, 호조정랑과 한성부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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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에 있는 개항기의 정려각. 권하규 효사각(權廈圭孝思閣)은 효자 권하규의 효행을 표창하고자 1892년(고종 29) 조정에서 내린 정려각이다. 권하규는 어머니를 간병할 때 정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디선가 한 마리의 신마(神馬)가 나타나 권하규를 태우고 가서 약을 구하여 왔고 위독하던 어머니가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에 조정에서 권하규에게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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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돌에 새긴 글자들 혹은 새긴 글의 총칭.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금석문에는 주로 신도비, 유허비, 사적비, 묘석, 선정비, 송덕비, 하마비, 표석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신도비는 죽은 사람의 평생사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운 비이다. 유허비는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사적비는 어떤 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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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문기를 기리는 비각. 김문기 태충각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기리고자 김노연(金路淵)과 김서연(金書淵)이 1900년에 건립한 비각이다. 김문기는 1439년(세종 21) 경상도아사(慶尙道亞使)로 대구에 부임하면서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재임 중에는 금호강 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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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개항기의 정려각. 김해김씨 효부각(金海金氏 孝婦閣)은 순천김씨 김종도(金種道)의 아내인 김해김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효부 김씨는 열일곱 살에 출가하여 시아버지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만호(萬戶) 김준상(金俊常)의 병환을 10년 동안 변함없이 정성껏 간호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의원이 시아버지의 병을 고치려면 구렁이 알을 구하여 먹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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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시원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노원재는 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1627~1689]을 추모하기 위하여 함안조씨(咸安趙氏)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재실의 솟을대문에는 ‘척창문(惕愴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척창’은 선조를 떠올리니 삼가고 두렵고 슬프다는 뜻이다. 노원재 뒤편에 조시원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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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는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의 사당. 단군성전(檀君聖殿)은 단군을 모시고 있는 곳인데, 달성공원에 있던 것을 1966년 수성구의 수성못 유원지 근처 법니산으로 옮겼다. ‘국조단군성전’, ‘천진전’이라고도 한다. 우리 민족의 연원인 국조 단군은 환인의 서자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다. 단군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조선[고조선]이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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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이자 서당. 달암재(達巖齋)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정착한 참봉(參奉) 최성희(崔聖禧), 임천군수(林川郡守) 조득도(趙得道), 참봉(參奉) 이언상(李彦祥) 등이 조선 후기인 1830년(순조 30)에 건립한 건물이다. 건립 당시에는 후손들의 훈육을 위한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전하며, 현재는 이언상, 조득도, 최성희 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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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거정이 대구광역시 동구의 자연환경을 찬미한 시 「대구십영(大丘十詠)」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읊은 칠언절구 10수이다.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대구십영」은 다른 명칭으로 「대구십경(大丘十景)」, 「달성십영(達城十詠)」, 「달성십경(達城十景)」 등으로 말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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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대구십영」과 대구팔경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을 찬미한 글들. 「대구십영(大邱十詠)」과 대구팔경(大邱八景)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을 묘사하려면, 먼저 대구광역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에 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금호강은 대구광역시 동구를 비롯하여 북구와 서구, 달서구 권역에 걸쳐 흐르는 강이다. 금호강은 낙동강의 지류이지만, 대구시내를 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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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금호강을 찬미한 글들. 우리 선인들은 자신이 생활하고 유람하는 곳의 승경을 한 두 수의 시로 노래하기도 하지만, 강을 거슬러 가거나 답사하면서 여러 곳의 경점을 정하여 시문으로,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러 곳 경관을 묘사한 시 중에 유독 팔경(八景) 시들이 많다. 이는 아마도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식을 취하여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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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덕산서원(德山書院)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서섭은 달성서씨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派組)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하였다. 문종을 거쳐 단종 때에 이르러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까지 지냈다. 1924년 서섭이 살던 집 천장에서 발견된 집필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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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렬각. 덕산 이씨 창렬각(德山李氏彰烈閣)은 일제강점기 열녀였던 덕산 이씨의 효행과 정절을 후손들이 잊지 않고자 건립된 창렬각이다. 이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재엽(李載燁)의 아내로서, 시집을 가기 전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는 등 모든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시집을 가서 남편에게 도리를 다하였다. 1921년 1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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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장자원을 추모하는 재실. 덕산재(德山齋)는 장자원(蔣自元)[?~?]이 부모의 묘소 옆에 임시로 집을 짓고 사모하는 정을 나타내던 곳이다. 장자원의 본관은 아산(牙山)이며, 자는 성인(性仁), 호(號)는 덕봉(德峰)이다. 감찰 장간(蔣芉)의 아들이며, 성종 때 생원시에 합격하여 한성부참군을 지냈다. 일찍이 덕행과 효행으로 사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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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경주김씨 참의공파조 김수남 추모 재실. 덕암재(德巖齋)는 경주김씨(慶州金氏) 참의공파(參議公派) 파조인 우재(愚齋) 김수남(金守南)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7년 후손들이 묘소 앞에 건립하였다. 김수남은 인조(仁祖) 때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 때에도 큰 공을 세워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인 김대길(金大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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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개항기 학자 우동규의 강학당. 덕양재(德陽齋)는 개항기의 학자 우동규(禹東珪)[1847~1933]가 강학당으로 건립하였다. 우동규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윤집(允執), 호는 몽암(夢巖)이다. 양호당(養浩堂) 우현보(禹玄寶)의 후손이며,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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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 있는 박민호를 추모하는 재실. 도원재(桃源齋)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대구 도원동 입향조인 박민호(朴敏豪)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밀양박씨 종친회 건물로도 사용되고 있다. 박민호는 만력 연간(萬曆年間)[1573~1619]에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가족들을 데리고 도원동에 들어와 살았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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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하시찬을 배향한 달성하씨 문중 재실. 돈목재(敦睦齋)는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배향하고 있는 달성하씨(達城夏氏) 문중 재실이다. 달성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대도독을 지낸 하흠(夏欽)이다. 하흠은 인종(仁宗) 때 고려에 귀화하여 달성(達成)[현 대구광역시]에 정착하였고, 하흠의 아들 하용(夏溶)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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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두한필을 기리는 정려각. 두한필(杜漢協)은 순조 23년(1823)에 태어나 고종 30년(1893)에 세상을 떠났다. 두한필의 자는 영여(永汝), 호는 소남(小植), 본관은 두릉(杜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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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두사충을 추모하는 재실. 모명재(慕明齋)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杜師忠)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두씨(杜陵杜氏) 문중에서 묘소 앞에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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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김응수를 추모하는 재실. 모암재(慕巖齋)는 김응수(金應守)[1577~?]를 기리기 위하여 김녕김씨(金寧金氏) 대구 대신 종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김응수의 자는 광극(光極)이고, 호(號)는 개암(開巖)이다. 아버지는 김영호(金榮豪)이며,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현손이다. 임진왜란 때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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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밀양 박씨 창렬각은 조선 후기 순조(純祖) 때의 열부였던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정절과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각이다. 박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용섭(李龍燮)의 아내로서 중년에 남편을 여의고 낳은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자신의 손으로 초상을 치르며 장례를 직접 보살피었다. 5촌 조카를 후사(後嗣)로 세워 초상을 맡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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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의병장. 박수춘(朴壽春)[1572~165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 또는 숭정처사(崇禎處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언계(朴彦桂)이고, 할아버지는 박대성(朴大成)이다. 아버지는 동몽교관 박신(朴愼)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형은 박장춘(朴長春)이고, 동생은 박득춘(朴得春)이다. 부인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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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 있는 고령김씨 문중 재실. 방해재(放海齋)는 고령김씨(高靈金氏) 도원 종중의 김용하(金用夏)[?~?]가 1943년에 젊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서당으로 지었으나 현재는 문중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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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귀화하여 대구 지역에 정착한 수성빈씨의 시조. 빈우광(賓于光)[?~?]의 본관은 수성(壽城)이며, 자는 대용(大用), 호는 송헌(松軒)이다. 중국 노나라 때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빈모가(賓牟賈)의 후손이며, 부인은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실(李實)의 딸 진보이씨(眞寶李氏)이다. 아들은 빈규창(賓珪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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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서감원(徐坎元)[?~?]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침(徐忱)이고, 할아버지는 광흥창부승(廣興倉副承) 서문한(徐文翰)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서섭(徐燮)이고, 어머니는 채윤(蔡崙)의 딸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형은 서진원(徐震元)이고, 동생은 서간원(徐艮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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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서명보 효자 정려각(徐明普 孝子 旌閭閣)은 숙종 때 효자인 서명보[1704~1778]의 효행을 기리고자 1802년(순조2)에 건립된 정려각이다. ‘서명보 효자각’이라고도 일컫는다. 서명보는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극(華極)이고 호는 북곽(北郭)이다. 서명보는 아버지 서익지(徐翊祉)의 병이 깊어 24년간 간병하였는데,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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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신. 서섭(徐涉)[?~?]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남은(南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서균형(徐均衡)이고, 할아버지는 서침(徐忱)이다. 아버지는 광흥창부승(廣興倉副承) 서문한(徐文翰)이다. 부인은 예조참의 채윤(蔡崙)의 딸 인천채씨(仁川蔡氏)이고, 아들은 서진원(徐震元)·서감원(徐坎元)·서간원(徐艮元)이다. 형은 서제(徐濟)·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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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서희순(徐憙淳)[1793~1857]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치회(穉晦), 호는 우란(友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신수(徐信修)이고,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서유녕(徐有寧)이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서응보(徐應輔)이고, 어머니는 김현주(金顯柱)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심능식(沈能植)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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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채선수를 추모하는 재실. 성산재(城山齋)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채선수(蔡先修)[1568~1633]를 기리기 위하여 인천채씨(利川蔡氏) 문중에서 건립한 묘소 재실이다. ‘성산재’란 고산토성 아래에 지은 집이란 의미로 붙인 당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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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비. 성주 배씨 정려비(星州裵氏旌閭碑)는 1764년(영조 40)에 태어나 1788년(정조 12)에 세상을 떠난 효부 배씨의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비이다. 배씨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박후성(朴厚成)의 아내이다. 배씨의 시집살이는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자 백방으로 약과 의원을 구하였으나 남편의 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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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박해를 추모하는 재실. 솔일재(率一齋)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대사헌공파 파조인 박해(朴咳)[1347~?]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민묘 수호 재실이다. 박해의 호는 귀림(歸林)이며, 1347년(충목왕 3) 밀직부원군(密直府院君) 박중미(朴中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국사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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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는 조선후기 숭정처사 대암 최동집[1586~1661] 선생의 유허비. 최동집[1586~1661]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진중(鎭仲), 호는 대암(臺巖)이다. 아버지는 현령 최계(崔誡)이며 한강(寒岡)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6년(광해군 8)에 병진 증광시(增廣試)에 진사 3등 51위로 합격하고, 참봉에 제수되어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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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 고려시대 신숭겸을 기리는 유허비. 신숭겸영각유허비는 ‘고려 태사 장절 신공 영각 유허비(高麗太師壯節申公 影閣遺墟碑)’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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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학산공 양해일과 우산공 양헌방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개항기에 건립한 정려각. 학산공 양해일(楊海一)[1797~1873]과 우산공 양헌방(楊憲邦)[1826~1878]의 효행은 다음과 같다. 양해일은 호가 학산(鶴山), 자는 진원(進源)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올바랐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극진히 섬겼으며, 아버지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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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대구도호부 부사인 금유가 경상감영의 금학루에서 읊은 한시. 「영각서풍청(鈴閣暑風淸)」은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의 부사인 금유(琴柔)[1379~1444]가 경상감영(慶尙監營)의 누각인 금학루(琴鶴樓)에서 읊은 한시이다. 「금학루시(琴鶴樓詩)」라고도 불린다. 금유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봉화(奉化), 호는 청원정(淸遠亭)이다. 아버지는 금극해(琴克諧), 아들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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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양달화를 추모하는 재실. 영모재(永慕齋)[중화양씨]는 조선 영조(英祖) 때의 학자인 양달화(楊達和)[1694~1756]를 추모하기 위하여 1913년에 건립되었다. ‘영모재’는 길이 흠모하는 집이라는 의미이며, 영모재에서 북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양달화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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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배석봉·배영을 추모하는 재실. 영사재(永思齋)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배석봉(裵錫鳳)과 배영(裵泳)[1810~1852]을 기리기 위하여 성산배씨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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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영양 남씨 정렬각(英陽南氏旌烈閣)은 조선 후기 영조(英祖) 때 효부이자 열녀였던 영양 남씨의 극진한 효행과 정절을 기리고자 1797년(정조 2)에 건립한 정려각이다. 남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만섭(李萬燮)의 아내로서 아름다운 덕성과 도량이 남달라 평소의 행실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시부모를 섬기면서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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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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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월곡 우배선의 강학소. 월곡정사(月谷精舍)는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우배선(禹拜善)[1569~1621]의 생전 강학소이다. 우배선은 임진왜란 때의 공훈으로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르고, 합천·금산·낙안 군수로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겸사복장(兼司僕將)을 끝으로 고향인 월곡으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을 위하여 1607년에 월곡정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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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월성최씨 효열각(月城崔氏孝烈閣)은 조선 후기 철종(哲宗) 때 효부이자 열녀였던 월성최씨의 지극한 효행과 정절을 기리고자 개항기인 1864년(고종 1) 11월에 세운 정려각이다. 최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익상(李翼祥)의 아내로서 시어머니가 병상에 있을 때 젖을 짜서 먹여 주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약으로 먹임으로써 시어머니의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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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단양우씨 판서공파의 서당으로 마을 학동들을 가르치고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종당. 월평재(月坪齋)는 상인동에 세거하고 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문중 서당으로, 학동들을 교육하고 문중과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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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판관 이서의 치적을 기리고자 세운 송덕비. 이공제비(李公隄碑)는 정조 때 대구판관이었던 이서(李溆)[1728~1794]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頌德碑)이다. 현재 이공제비는 1899년(고종 36)에 세운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와 나란히 서 있으며,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와 함께 1988년 5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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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이유겸(李有謙)[1586~1663]의 본관은 우봉(牛峯)이며.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의 이심(李諶)이고,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지신(李之信)이다. 아버지는 이할(李劼)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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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재실. 인산정사(仁山精舍)는 조선조 철종 때 8군의 군수(郡守)를 지낸 경도재(景陶齋) 우성규(禹成圭)[1830~1905]를 기리기 위하여 후학 사림이 1905년 덕동서원(德洞書院)의 옛 자리에 건립한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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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에 있는 최효열을 배향한 재실과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 저존재(著存齋)는 경주최씨(慶州崔氏) 대곡 입향조인 매영헌(梅永軒) 최효열(崔孝烈)[1563~1622)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저존’이라는 명칭은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제의(祭義)」 편의 “사랑을 지극히 하면 혼령이 보존되고, 정성을 다하면 혼령이 드러난다”라는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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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정동범의 정려각. 정동범 정충각은 조선 후기인 1728년(영조 4)에 발생한 ‘이인좌(李麟佐)의난’에 공을 세운 노암(蘆庵) 정동범(鄭東範)[1710~1793]의 충의를 기리고자 1892년(고종 29)에 건립되었다. 정동범은 이인좌의 난 때 열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큰 공훈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후에는 상훈을 모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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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에 있는 정려비. 정절부 김씨 정려비(貞節婦金氏旌閭碑)는 본관이 김녕(金寧)이며 김성연(金性淵)의 딸인 김씨[1867~1947]를 기리고자 세운 정려비이다.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김씨가 죽은 1947년 직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성리학자 기헌(寄軒) 조병선(曺秉善)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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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지언의 정려각. 정지언 정효각(鄭之彦 旌孝閣)은 조선 후기 효자인 면암(勉庵) 정지언(鄭之彦)[1740~1814]의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각이다. 1892년(고종 29)에 사림(士林)에서 정지언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아뢰어 조정으로부터 효자의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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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긍재 이병운을 추모하는 재실. 채국정(採菊亭)은 1947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건립된 긍재(兢齋) 이병운(李炳運)[1858~1937]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병운은 자가 덕칠(德七)이고, 호는 긍재 또는 창계(蒼溪)이며, 본관은 인천이다. 1888년(고종 25)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연재 송병선·심석재 송병순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만년에 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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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손극룡·손경방을 추모하는 재실. 첨모재(瞻慕齋)는 손극룡(孫克龍)과 아들인 손경방(孫敬邦)[1645~?]을 추모하기 위하여 밀양손씨(密陽孫氏)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손경방은 1678년(숙종 4)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부호군을 지냈다. 첨모재 부근에 인재(仁齋) 손경규(孫敬奎)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사효당(思孝堂)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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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우여도를 추모하는 재실. 추모재(追慕齋)[달서구]는 조선 후기의 무관인 우여도(禹汝度)[1625~1681]를 기리기 위하여 단양우씨 월곡문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우여도의 자는 도숙(度叔), 호는 만회(晩悔)이다. 아버지는 우달해(禹達海)이다. 1651년(효종 2)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사낭관·선전관·도사를 역임하였고, 제주 정의현감(旌義縣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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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 있는 정동범·정지언을 추모하는 재실. 충효재는 노암(蘆庵) 정동범(鄭東範)[1710~1793]과 아들인 면암(勉庵) 정지언(鄭之彦)[1740~1814]의 충절과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청주정씨(淸州鄭氏) 노변 문중에서 1996년 건립한 재실이다. 정동범은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성주목사 이보혁(李普赫)과 함께 합천에서 싸워 전공을 세웠으며, 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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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에 있는 조선후기 숙종대에 건립된 하마비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는 1693년(숙종 19)경 숙종이 현응대사에게 부탁하여 왕자[후일의 영조]를 얻는 데 대한 보답이다.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는 궁궐과 지체 높은 이의 사당, 향교, 관아, 왕릉, 귀족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파계사에 대소인개하마비가 세워진 유래는 경내에 제왕과 왕실의 안녕을 비는 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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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하시찬(夏時贊)[1750~182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경양(景襄), 호는 열암(悅菴)이다. 아버지는 하문징(夏文徵)이며, 대도독 하흠(夏欽)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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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양달화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건물. 학산재(鶴山齋)는 지촌(池村)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정자이다. 양달화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문장과 덕행으로 향리에서 명망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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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한준겸(韓浚謙)[1557~1627]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이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선군수 한승원(韓承元)이며, 할아버지는 중추원경력 한여필(韓汝弼)이다. 아버지는 경성판관 한효윤(韓孝胤)이고, 어머니는 예빈시정 신건(申健)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부인은 황성(黃珹)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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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황씨 재실. 황씨 동원각(黃氏同源閣)은 전국의 황씨 선조 15명의 위패를 모신 재실이다. 황씨 동원각은 1968년 중수하였으며, 건물은 ㄱ자 형태의 재사이다. 황씨 동원각의 동원(洞源)은 근원이 같다는 뜻으로, 전국의 모든 황씨가 한 뿌리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조상을 받들고 씨족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려고 건립한 공간이다. 뒤쪽에 ‘상덕사(尙德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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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효자 하잠동의 효성을 기리어 세운 비석. 효자 하잠동지려비(孝子河潛同之閭碑)는 조선 전기 인물인 하잠동[?~?]의 효행을 기린 정려비이다. 하잠동의 생애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하잠동의 효행만이 전하여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