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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읍지』 「현풍현읍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446
한자 慶尙道邑誌 玄風縣 邑誌
영어공식명칭 Hyeon Pung Hyeon Eup-Ji in Gyeong Sangdo Eup-Ji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경상도읍지』「현풍현 읍지」편찬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간행처 경상 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성격 고도서|읍지
저자 현풍현
편자 경상 감영
권책 불분권 1책[현풍·산청·단성·군위·의흥·신령 합본]
행자 10행 20자
규격 35㎝[세로]|22.6㎝[가로]
어미 무어미
권수제 현풍현 읍지(玄風縣邑誌)

[정의]

1832년 경상 감영에서 편찬한 현풍현 읍지.

[개설]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는 경상도 71개 군현의 읍지를 합편(合編)한 지도책으로서 편찬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호구·전부(田賦)·환적(宦蹟)조를 통해 볼 때 1832년(순조 32) 무렵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의 도지(道誌)로는 『경상도 읍지』가 유일하다. 『경상도 읍지』는 통일된 체제로 갖추어진 최초의 경상도 도지로서 이후의 도지들의 본이 되었으며, 경제 관계 부분도 편찬 당시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저자]

경상도 관찰사의 명에 따라 현풍현에서 저술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경상도 관찰사의 명에 따라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를 경상 감영에서 수취하여 1832년 무렵 책으로 꾸며 만든 읍지이다.

[형태/서지]

필사본으로 불분권 1책이다. 채색 지도가 첫 장에 그려져 있다. 『경상도읍지』「현풍현 읍지」에는 현풍 외에도 산청, 단성, 군위, 의흥, 신령 등의 읍지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계선(界線)이 있으며 어미는 없다. 크기는 세로 35㎝, 가로 22.6㎝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註)는 쌍행이다. 표제는 '읍지(邑誌)'이며, 권수제는 '현풍현 읍지(玄風縣邑誌)'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경상도 71개 읍지 가운데 제8책을 제외하고 모두 체제가 통일되어 있다. 즉 채색 지도(彩色地圖)‚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軍器)‚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學校)‚ 단묘(壇廟)‚ 총묘(塚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시장(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제영(題詠)‚ 비판(碑板)‚ 책판(冊板) 순이다.

현풍현은 임수, 관방, 진보, 도서, 목장 등은 해당 사항이 없기에 각 조항에 무(無)라고 표기하고 있다. 호구조와 전부조는 신묘식(辛卯式)[1831]을 쓰고 있으며, 환적조는 성명 외에도 특기할 만한 파직 사유‚ 선정비(善政碑)의 존재를 아울러 기록하는 경우‚ 또는 부임(赴任)·이임(移) 연도‚ 전직(前職)‚ 이직(移職) 사유를 아울러 기재하고 있다. 과거 조는 신설 항목인데 등과한 연도와 역임한 최고 관직을 기재하고 있다. 인물조에는 고려와 본조(本朝)로 나누어서 적고 있다. 다른 읍지와 비교하여 충신‚ 효자‚ 효부‚ 열녀‚ 의사(義士) 등이 빠졌다. 비판은 김굉필(金宏弼)·곽월(郭越)·곽준(郭䞭)·곽재우(郭再祐) 등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적고 있으며, 책판은 도동 서원에 있는 『경현록(景賢錄)』 책판과 예연 서원에 있는 『충열공 실기(忠烈公實記)』·『충익공 원집(忠翼公元集)』·『창의록(倡義錄)』 책판, 송담사(松潭祠)에 있는 『대암집(大庵集)』 책판이 기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힙리적 항목 구성과 풍부하고 자세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특히 환적조와 과거조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으며, 경제 관계 부분은 편찬 당시인 19세기 초반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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