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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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大徽 |
영어공식명칭 | Kang Daehwi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
[활동 사항]
강대휘(姜大徽)[1918∼?]는 1918년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위천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 평양 기성 의학 강습소(箕城醫學講習所)에서 3년을 수료한 후, 1942년 조선 총독부 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대구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하였다. 6·25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2년 군대에 입대하여 약 8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전역한 후에 대구에서 행촌 의원(杏村醫院)을 운영하면서 4·19 혁명을 맞았다.
1960년 5월 혁명 정치 노선에 공명하면서 사회 대중당 경북도당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여 징계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12월 사회당 경북도당 준비 위원회[이하 사회당 경북도당] 재정 위원장이 된 뒤, 7·29 총선거를 진행하였다. 1961년 5월 7일에 사회당 경북도당 부위원장 겸 기획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남북 학생 회담 촉진을 위한 시민 대회 개최를 계획하고, 필요 경비 6만 환을 당무 위원장 김병권(金秉權)에게 제공하였다. 1961년 5월 10일 만경관 남측 광장에서 사회당 경북도당 주최로 대구 시민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 학생 회담 촉진 시민 궐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5·16 군사 정변 직후인 1961년 5월 22일 포고령 제6조에 의해 사회 대중당이 해산되면서 정치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이후 군사 혁명 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