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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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鍾應[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Choi Jongeung |
이칭/별칭 | 최근응,성문,금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 시기/일시 | 1871년 8월 21일 - 최종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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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8월 - 최종응 대한민국 임시 정부 경상북도 선정사로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2월 - 최종응 경상북도 칠곡군에 사는 부호 윤병돈에게 300원을 받아 이태훈에게 전달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2월 - 최종응 일본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3월 30일 - 최종응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1월 24일 - 최종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최종응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최종응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최종응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3-2[둔산동 372] |
거주|이주지 | 최종응 거주지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3-2[둔산동 37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경상북도 선정사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문(聲聞), 호는 금전(琴田). 최근응(崔謹應)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최흥원(崔興遠)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남교(崔南敎)이다.
[활동 사항]
최종응(崔鍾應)[1871~1944]은 1871년 8월 21일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72번지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경상북도 선정사(宣政使)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치게 된다. 1920년 9월 고일정(高一政)·윤철(尹哲)·이태훈(李泰勳) 등과 경상도·충청도·전라도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친일 자산가 및 부호들의 자산 명부를 작성하고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면 오계리조석환, 영천군 청경면 상리동손호창에게 각 군자금 1,000원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였다. 두 명으로부터 받은 2,000원 중 800원을 고일정에게 주었다. 1921년 2월 경상북도 칠곡군에 사는 윤병돈(尹炳敦) 등을 비롯한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부호 십여 명에게 각 2,000원 내지 5,000원을 요구하는 군자금 납입 명령서(軍資金納入命令書)를 송부하였다. 대구부 정차장 앞에서 윤병돈에게 300원을 받아 이태훈(李泰勳)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2월경 이러한 일련의 군자금 모집 활동으로 인해 최종응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2년 3월 30일 공갈 및 제령 제7호 위반으로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최종응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