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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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廷芝[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Bae Jeong Ji |
이칭/별칭 | 서한(瑞漢),금헌(琴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출생 시기/일시 | 1259년 - 배정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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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269년 - 배정지 금위 도지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270년 - 배정지 대정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291년 - 배정지 중랑장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05년 - 배정지 충청도 찰방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06년 - 배정지 전라도 찰방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09년 - 배정지 홍신군호군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09년 - 배정지 응양군 상호군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18년 - 배정지 존무사로 탐라도 반란 진압 후 밀직부사 상호군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18년 - 배정지 밀직부사 상호군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21년 - 배정지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322년 5월 27일 - 배정지 사망 |
사당|배향지 | 초동사 -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문동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달성 |
대표 관직 | 밀직부사 상호군 |
[정의]
고려 후기 달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서한(瑞漢), 호는 금헌(琴軒). 증조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으로 추증된 배손적(裵孫迪)이며, 할아버지는 응양군 상호군(鷹揚軍上護軍)으로 추증된 배인검(裵仁儉)이다. 아버지는 민부전서(民部典書)에 추증된 배영(裵瑩)이고, 어머니는 우계군부인 이씨(羽溪郡夫人李氏)로 내시 양온령동정(內侍良醞令同正)을 지낸 이신송(李臣松)의 딸이다. 낭장(郎將) 정승백(鄭承伯)의 딸과 혼인하여 3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신호위 낭장(神虎衛郎將) 배성경(裵成慶), 동경윤(東京尹) 배천경(裵天慶), 검교산원(檢校散員) 배함경(裵咸慶)이며, 큰딸은 낭장(郎將) 오인경(吳仁景)에게, 둘째 딸은 전천수사 효진전직(前天水寺孝眞殿直) 이홍택(李洪澤)에게 출가했다.
[활동 사항]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배정지(裵廷芝)[1259~1322]는 10세에 금위(禁衛)에 들어가 도지(都知)가 되었다[묘지명에는 7세 때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1270년(원종 11)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때 11세 나이로 왕을 호종하여 그 공으로 대정(隊正)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별장(別將)으로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따라 충청도 연기군에서 합단적(哈丹賊)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중랑장(中郎將)에 임명되었다. 이후 인후를 따라 원에 들어가 원의 황제로부터 패도아(覇都兒)[‘용감하고 힘센 장사’라는 뜻]라는 칭호를 받고 백은(白銀) 50냥을 하사받았다. 1305년(충렬왕 31) 충청도 찰방사, 1306년(충렬왕 32)에는 전라도 찰방사가 되었다.
충선왕 즉위 후 홍신군 호군(弘信軍護軍)으로 발탁되고 곧이어 응양군 호군(鷹揚軍護軍)으로 승차하였다. 몇 년 후 비순위 대호군 감문 좌우위 상호군(備巡衛大護軍 監問左右衛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충선왕이 전농사(典農司)와 유비창(有備倉)을 세우자 그 일을 주관하였다. 나아가 지민부사(知民部事)와 중문사(中門使)를 겸하면서 내부시(內府寺)·도진시(都津寺)·사복시(司僕寺)·선공시(繕工寺)의 판사(判事)와 풍저창(豊儲倉)·광흥창(廣興倉)·의성창(義成倉)·덕천창(德泉倉)·요물고(料物庫)·연경궁(延慶宮)·영안궁(永安宮)의 제거사(提擧司) 및 간판내시원사(幹辦內侍院事)까지 맡았다. 1318년(충숙왕 5) 탐라도에서 김성(金成)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존무사(存撫使)가 되어 토벌하였고, 돌아와 밀직부사 상호군(密直副使上護軍)에 임명되었다.
1321년(충숙왕 8) 충선왕이 토번(吐藩)으로 유배를 가자 충숙왕이 권한공(權漢功), 채홍철(蔡洪哲) 등을 순군옥에 가두는 당옥(黨獄)이 일어났을 때 배정지도 죽림방호(竹林防護)로 유배되었다. 아들인 배천경이 대속하겠다고 요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다시 개경으로 돌아왔으나 병을 구실로 거문고와 바둑으로 소일하다 1322년(충숙왕 9) 5월 27일 병으로 죽었다.
[상훈과 추모]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문동리에 있는 초동사(草洞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