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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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愼行 |
영어공식명칭 | Do Sinhaeng |
이칭/별칭 | 과회(寡悔),명애(明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도성탁 |
출생 시기/일시 | 1609년 - 도신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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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도신행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파방 |
몰년 시기/일시 | 1677년 - 도신행 사망 |
출생지 | 다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수학|강학지 | 한이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
묘소|단소 | 도신행 묘소 -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
사당|배향지 | 경현당 - 대구광역시 동구 효동로2길 50[효목동 1108]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성주(星州)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가계]
도신행(都愼行)[1609~1677]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과회(寡悔), 호는 명애(明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흠조(都欽祖)이고, 할아버지는 도원결(都元結)이다. 아버지는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이우겸(李友謙)의 딸 여주이씨(驪州李氏)이다. 형은 도신수(都愼修)·도신여(都愼與)이고, 동생은 도신징(都愼徵)·도신복(都愼福)이다.
[활동 사항]
도신행은 1609년(광해군 원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서 태어났다. 1623년(인조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파방(罷榜)[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하던 일]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1637년 인조(仁祖)가 삼전도(三田渡)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국치를 당하자 유림 동지 13현과 더불어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팔공산의 한이곡(罕耳谷)[현 동구 도동 단산지 인근]에 은거하였다, 은둔지인 ‘한이’가 청나라 오랑캐 군주를 뜻하는 한이(汗夷)와 음이 같아 ‘명동(明洞)’으로 고쳤으며, 명(明) 자 운으로 시를 짓고 호를 지어 뜻을 같이하였다. 1677년(숙종 3) 사망하였다.
[묘소]
도신행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
도신행과 동지들은 후대에 대명 14현으로 칭송되었고, 숙종(肅宗)이 「대명동(大明洞)」이라는 친필 글씨를 하사하였다. 동구 도평동에 14현 대명동유적비(十四賢大明洞遺跡碑)가 있으며, 1882년 동구 효동로2길 50[효목동 1108]에 대명 14현을 기리는 경현당(景賢堂)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