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C03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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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호 |
종부 한옥자 씨를 만난 것은 농장에서였다. 첫날 낯선 방문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부부의 친절함에 넉넉한 인심이 배어 있었다. 취재를 위한 상황을 설명하고 종부로서의 삶과 부녀회장으로서의 어려움을 이야기 해달라는 부탁을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안하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말주변이 없어 안했으면 좋겠단다. 인터뷰를 약속한 그날도 굳이 카메라에 서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취재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까닭이요 스스로 나서지 않겠다는 소박함 때문이리라. 손녀를 안고서야 이야기보따리를 풀 수 있었다.
그는 가금면 용전리에서 4남 4녀의 다복한 가정에서 둘째로 태어났다고 한다. 혼기가 되어 중매로 이상하 씨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만나 볼수록 진실하여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가라 해도 물려받은 유산 같은 것도 없고 가정형편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집안 모두가 결혼을 반대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약주까지 많이 하는 시집 사정을 보고 더욱 반대를 하였다고 한다. 친정아버님을 비롯한 친정 어른들은 약주를 전혀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약주하는 가정의 경험도 없으면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겠느냐며 동네사람들까지도 결혼을 반대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신랑 재목의 꾸임이 없고 성실한 점만을 보아 스스로 그와의 결혼을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을 때 어렵게 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이상하 씨와의 결혼에 전혀 후회는 없었다고 말한다. 역시 천생연분을 만나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었구나함을 절로 느끼게 한다.
종부로서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을 뿐’ 어려움으로 생각한 적도 없고 생각하지도 않는 듯하였다.
더구나 큰 규모의 가정 살림에 부녀회장까지 맡고 있어서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농촌 부녀회의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실정을 말해주었다. 이제 부녀회도 50대가 젊은 세대가 될 만큼 농촌의 고령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녀회장도 이제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번기 등 바쁜 상황에 부녀회의가 열릴 경우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 한다. 특히 부락대표의 자격으로 회의나 행사에 참여하야 하는데 가정사와 맞물려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때 가장 어려운 일이며, 조기청소 등 시간적 제약이 있는 경우에는 가정 살림을 담당해야 하는 주부이기 때문에 힘든 일이라 한다.
2남 1녀의 3남매를 돌봐주는 이 없이 혼자의 힘으로 기르며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출가시켜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리라.
어머니로서의 후덕함과 강인함에 억척스런 삶의 지혜가 더해졌기에 4만여 평의 많은 농지와 50여두의 소를 관리하는 대농장의 큰살림을 무난하게 관리하며 부녀회도 이끌 수 있는 저력이 되었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그의 모습은 행복함이 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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