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C020402 |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호 |
제내리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의 집성촌으로 번성을 이루어 왔다. 이덕량의 부친인 이식(李軾)을 시조로 방호파를 이룬 것이다. 이처럼 전주이씨가 대종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의 공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마을에 존재했던 대동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동계의 역할을 종회가 중심이 되어 풀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성동마을의 경우에는 타성의 유입이 많아지자 친목을 전제로 한 공동의 이익과 마을의 번영을 위한 목적으로 1985년부터 성동 대동계를 조직하여 60여 명의 계원을 확보하고 운영되고 있다.
풍덕마을의 경우에는 100년 전 마을입구에 숲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된 방풍림계가 동계의 역할을 하며 지금까지 발전하여 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 방풍림계도 그 운영의 중심은 이씨들임을 보면 씨족마을의 끈끈한 연결이 쉽게 변화할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내리에 타성이 언제부터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성동마을에는 전체 52가구 중 25가구가 다른 성씨이고 풍덕마을의 경우에는 53가구 중 19가구가 다른 성씨이다. 풍덕마을이 집성촌으로서의 모습을 더 잘 간직하고 있다. 그동안 풍덕마을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살아온 사람들의 씨족별 분포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이 표를 보면 그동안 풍덕마을 주민의 절대다수를 전주이씨가 차지하고 있어 동족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타성의 경우에는 변동사항이 아주 컸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타성으로는 평창이씨, 경주이씨와 강릉, 안동을 본으로 하는 김씨, 곡산연씨, 양주조씨 등 소수에 불과하고 기타의 성씨들은 오랫동안 살지 못하고 수년 내로 떠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집성촌 이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1980년대에는 충주댐의 담수로 수몰지역 이주민들이 이사해 오면서 타성의 비율이 늘어났고, 현재 역시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 현상과 함께 마을 전체 호수가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타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