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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A010201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구

계립령(鷄立嶺), 겨릅산, 대원령(大院嶺), 한훤령(寒喧嶺) 등으로 불리는 하늘재는 영남과 기호를 연결하는 최초의 교통로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에 의하면 제8대 아달라(阿達羅)이사금 3년(156)에 개통시킨 교통로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통로인 죽령(竹嶺)보다 2년 앞서 개통된 길이다. 이 길을 발판으로 한강 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고구려의 남하도 이를 통해 저지할 수 있었다. “계립현과 죽령 서쪽을 탈환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하며 출정한 고구려 장수 온달에 관한 전설도 나타나고 있듯이 고구려와 신라의 대립이 정점을 이루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망국의 한을 품은 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누이동생 덕주공주 손을 잡고 넘은 길도 이 길이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봉화 청량산으로 갈 때에도 이 고개를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계립령은 삼국시대 세력 확장 과정 중에서 그 중심점이었고 이후 넓은 세상, 풍요로운 땅, 세력 확장에서도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이와 관련된 흔적들이 미륵리, 충주 지역에 산재되어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서 계립령 대신 ‘대원령’이라 불렸고 이것이 한글로 표기되는 ‘하늘재’가 되었으며 이를 다시 한자로 표기하여 ‘한훤령’이라 바뀌기도 하였다. 하늘재는 1414년(태종 14)에 현재의 문경새재가 개통되면서 서서히 잊혀진 뒤안길이 되고 말았다.

산성의 흔적도 볼 수 있다. ‘한훤령성’은 정상 부근 오솔길을 걷다보면 옆에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성의 높이는 1m 남짓으로 많이 파괴된 모습이다. 정성들여 쌓은 성은 아닌 듯하다. 또한 이 부근의 성인 덕주산성이나 흔히 문경새재로 일컫는 조령 관문을 보더라도 대개 남쪽의 침략자를 막기 위한 구조인데 한훤령성은 문경 관음리 쪽이 아닌 하늘재 정상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초승달 형태로 축성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는 북쪽의 침략자를 겨냥하여 축성한 성이 아닐까 한다. 이와 유사한 성격과 구조를 지닌 성이 하나 더 있다. 즉 지릅재에서 문경 3관문 옆 동화원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야문’이라 불리는 성이 있다. 이곳 역시 공을 들여 쌓은 성은 아닌 듯 하고 성의 구조가 지릅재 방향으로 수축되어 있어 같은 방향을 두고 있다. 두 성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연구·조사가 요망된다.

잊혀진 뒤안길인 하늘재는 오히려 그 덕분에 요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옛길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숲이 안겨주는 상그러움이 꽉 찬 옛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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