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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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直洞 |
영어음역 | Jik-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춘자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마을이 곧은 골짜기로 되어 있어 곧은골 또는 직곡이라 하였는 데, 1914년 구운리(九雲里)와 발티[發峙]를 병합하여 직동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60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으로 동명이 나타나며, 당시에는 충원현의 남변면에 속했다. 1895년 충주군 설치로 충주군 남변면에 속하였고,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충주군 남변면의 31리 중의 하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변면의 구운리와 발티를 병합하여 직동이라 이름하여 충주군 읍내면으로 편입되었다. 1917년 읍내면을 충주면으로 개칭할 때 충주면 소속의 리가 되었고, 1931년 4월 1일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어 충주읍 소속이 되었다. 1956년 충주읍을 충주시로 승격함에 따라 충주시 직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충주시 동남쪽에 길게 위치하며, 동쪽은 대향산에서 남산으로 가는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서쪽은 대림산[489.3m]이 높이 솟아 있고, 남쪽은 대향산이 있고 북쪽은 남산[636m]이 막고 있어 동남에서 서북으로 이어진 골짜기에 띄엄띄엄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남산 정상에는 충주산성(일명 남산성)이 있는데 충주 동쪽의 계명산 영액과 서쪽의 대림산성, 북쪽의 충주 탄금대 토성지와 함께 충주를 사방에서 방어하기 위하여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남산은 죽림이 울창하여 봉황이 서식했다 하여 금봉산이라 하였는 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남산으로 바뀌어 현재 본래 이름을 되찾으려 많은 이들이 애쓰고 있다. 호암동 외곽의 우회도로 주변에 조성한 범바위 쉼 터에서 직동 쪽으로 개천을 따라 쭉 곧게 이어진 도로가 확장되었으며. 최근에는 석종사 입구까지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현황]
2008년 7월 24일 현재 면적은 8.16㎢이며, 총 97세대에 266명(남자 138, 여자 128)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쪽과 동쪽으로는 살미면, 북쪽과 서쪽으로는 호암동과 접하고 있다. 남산 남쪽 자락에는 유서 깊은 창룡사와 대가람으로 복원한 석종사 등 종교 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석종사는 원래 폐사지였으나 최근 우람하게 복원하였는 데 주말이면 전국에서 찾아오는 신도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수 십대에 이른다. 창룡사는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절로 신라 문무왕 당시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앞으로 재오개와 충주호를 연결하는 관정을 통해 맑은 물이 용솟음쳐 오르면 충주천에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게 되고, 이 물을 이용하여 조성되는 자연 생태 공원은 충주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과, 복숭아, 고추를 주로 재배하고 있으며, 깨끗한 물과 신록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 조성된 무공해 과수원들을 통해 생산되는 당도 높은 복숭아와 사과의 맛은 충주시는 물론 수도권에서도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