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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161
한자 婚禮服
영어의미역 Wedding Clothes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어경선

[정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전통 혼례 때 신랑과 신부가 입는 옷.

[개설]

조선시대부터 관직이 없는 계층에게도 일생에 한 번 혼례 때 관복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 여자들의 경우도 일반 서민들이 혼례 때 공주의 예복인 활옷이나 원삼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다.

[신랑 혼례복]

신랑은 친영(親迎)을 위해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착용하였다. 사모관대는 관복(官服) 일습(一襲)인데 관직이 없는 계층에게도 평생 한 번 혼례 때 관복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다. 평민과 양반의 구별 없이 사모(紗帽)·단령(團領)·각대(角帶)·목화(木靴)를 착용하였다. 사모는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엮어 2층으로 모체를 턱이 지게 만들고, 흑칠을 한 후 위에 가는 비단실로 짠 흑사포(黑紗布)를 발랐다. 뒤에 붙은 양쪽 날개에는 구름 무늬를 넣었다.

단령은 관원이 평상복으로 입던 옷으로, 혼례 때 입던 단령은 주로 청색 계통이었다. 단령에는 흉배(胸背)를 다는데, 보통 두 마리의 학(鶴)과 구름 등의 모양으로 수를 놓았다. 단령을 입은 뒤에는 각대를 착용하였다. 목화는 문무백관이 평상복과 함께 신던 신발인데, 혼례 때에는 서민들이 신었다.

[신부 혼례복]

신부는 원삼이나 활옷을 입고 화관이나 족두리를 썼다. 원삼(圓衫)은 일반인이 활옷 대신 입었던 결혼 예복으로, 원삼도 활옷과 같이 조선조 여인의 일반 예복이었다. 원삼은 각기 그 색에 따라 깃도 같은 색이었으며, 소매에는 다홍과 황색의 양색 색동이 달렸고, 소맷부리에는 한삼이 달려 있었다. 궁중의 원삼은 금박이나 금직이 있는 것이었지만, 서민이 입는 원삼은 녹색 원삼에 색동 길이 5개 정도 달린 금박이 없는 것이었다.

족두리는 원래 몽고에서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쓰던 일종의 모자였으나, 고려 말기에 들어온 뒤로 모양이 왜소해져 머리 장식품으로 변하였다. 영조 때의 가발 금지령에 따라 왕비나 세자빈이 칠보 족두리를 쓰면서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는데, 궁중이나 양반 집에서 의식용으로 소례복에 족두리를 썼다.

앞댕기는 쪽진 비녀에 감아 드리움으로써 족두리나 화관에서 어깨를 거쳐 웃옷까지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꽃무늬를 금박으로 중앙과 양끝에 찍고 그 끝에는 진주 또는 산호주 등의 장식을 하였다. 뒷댕기는 도투락댕기라고도 하는 데 활옷이나 원삼을 입을 때에 족두리에 맞춰 머리 뒤로 늘어뜨리는 큰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자수와 칠보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만들었다. 치마는 스란치마와 대란치마가 있는데, 금박 무늬가 찍힌 천을 덧댄 스란단을 한 층 붙인 스란치마는 소례복이고, 두 층 붙인 대란치마는 대례복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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