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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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源-淸陰-水北三先生眞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47-5[중앙탑길 112-2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유봉희 |
성격 | 간찰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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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김광현 |
저자 | 김상용|김상헌|김광현 |
간행자 | 김도순(金道淳) |
간행연도/일시 | 조선 중기 |
책수 | 1책 |
사용활자 | 없음 |
가로 | 27㎝ |
세로 | 35.5㎝ |
표제 | 신원, 청음, 수북 진적유묵(仙源, 淸陰, 水北 眞蹟遺墨) |
소장처 | 충주박물관[안동김씨 김윤동 기탁유물] |
소장처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47-5[중앙탑길 112-28]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 안동김씨 3인 사이에 오간 시문을 모은 시첩.
[개설]
조선 중기에 안동김씨 선원 김상용(金尙容), 청음 김상헌(金尙憲), 수북 김광현(金光炫) 사이에 오간 시문을 모은 것이다. 1634년(인조 12)에 부제학 김광현이 사친추숭(私親追崇)을 하려는 인조에게 옳다고 한 대사간 유백증을 탄핵하다가 함경도 삼수(三水)로 유배를 가게 되자, 80세의 아버지인 김상용이 유배 가는 아들에게 시를 써서 위로하였다. 아우인 김상헌도 애석히 여겨 시를 적어 보냈고, 유배를 간 김광현도 답으로 2편의 시를 적어 보냈다. 이들 사이에 오간 시문을 모은 시첩이다.
김광현[1584~1647]은 영의정 김상용의 아들로, 서예에 조예가 깊어 명필로 이름이 났으며 인조 때 문과에 합격한 후 1632년(인조 10) 부제학을 지냈다. 그 후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며 1647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으로는 『수북유고(水北遺稿)』가 있으며, 남겨진 글씨로는 「민기신도비(閔箕神道碑)」, 「영상이탁묘비(領相李鐸墓碑)」등이 있다.
[편찬/발간경위]
『선원, 청음, 수북 삼선생 진적』은 원래 안동김가에서 소장하고 있었으나 집안이 혼란할 때 잃어버렸다. 김도순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집에서 우연히 이 시첩을 발견하여 구해온 연유로, 차후 분실하지 않고 대대로 가보로 삼고자 제작되었다.
[형태]
선원, 청음, 수북 세 사람 사이에 오간 시문(詩文)을 모은 첩으로, 6행으로 나누어 썼다. 시는 각 면마다 한지에 쓴 시를 오려 붙여놓았고, 수북 김광현이 쓴 2편의 시는 행 구분 계선(界線)이 있는 간찰지에 쓴 것을 붙여놓았다. 글씨는 행서체에 가깝고, 재질은 한지(漢紙)이며, 첩 말미의 근서(謹書)도 계선(界線) 없이 쓰여 있다.
[구성/내용]
청음 김상헌이 지은 시에는 ‘청음(淸陰)’ 낙관이 찍혀 있으며, 시 내용의 일부 구절을 살펴보면 ‘성사응허조환귀(聖思應許早還歸)’라는 내용이 있어 하루빨리 유배에서 벗어나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첫 시는 ‘숭정갑술국추일일(崇禎甲戌菊秋一日)’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34년 김상용이 아들에게 쓴 시문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안동김씨 문중 한 가정의 부자간, 형제간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이 시첩이 나오게 된 정치적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