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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879
한자 社會運動
영어의미역 Social Movement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기영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사회의 변혁과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일체의 행동.

[개설]

현재 충주는 충청북도 북부 지역의 교육 전문직 및 상업 관련 자영업, 사무직, 서비스업, 그리고 농업 등의 종사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제조업 종사자는 미약한 상태에 있다.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주 지역 사회 운동의 흐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체계적인 자료는 없지만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지역 운동의 맥락에서 전개되어 왔다.

[정부 수립 이전의 사회 운동]

충주 지역의 사회 운동의 역사는 깊다. 1950년대 이전까지 사회 운동의 발전에는 1890년대 동학 농민 혁명 운동과 3·1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조건이 구조적으로 작용하였다. 충청북도 북부의 중심지이며 조선시대 중부권의 중심지인 충주 지역에도 조선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모순이 심화되어 있었다. 대농 지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력한 상층 계급과 소작이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는 하층 계급이 공존하고 있었고, 전통 사회의 신분 질서와 지위가 여전한 사회 관계에서 조선 사회의 모순은 점차 심화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은 조선 후기 1894년 갑오년의 동학 농민 혁명 운동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당시 충주 지역에는 수만 명의 농민군이 집결하였으며, 이들을 이끌던 대접주는 신재연(辛在蓮)과 서장옥(徐璋玉) 등이었다. 이들은 관군과 가흥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병참군과 전투를 종종 벌였다. 또한 농민군 상당수는 1895년 을미의병에 참여하여 충주성을 함락하고 충청도관찰사 김규식을 체포·처형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독립 운동도 일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충주 지역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3월 11일 충주 달천에서는 천도교인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으며, 3월 12일에도 충주읍내에 수천 명이 참석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또한 4월 1일에는 충주 용원장 터에서 2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광주 학생 운동이 발생한 1929년 11월 직후인 1930년 2월에는 충주 지역 대소원장 터에서 대소원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45년 광복 직후 격동기에 충주 지역에서도 일제 잔재 청산과 자립적인 민족 국가 건립을 위한 다양한 사회 운동도 있었으나 체계적인 자료의 발굴과 새로운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반독재 운동과 민주화 운동]

1948년 이후 충주 지역에서도 각 시기의 성격에 다양한 사회 운동이 전개되었다.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에 항거한 4월 혁명 과정에서 학생 운동이 발생하였다. 1960년 3월 10일 충주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은 시내 중심가에서 ‘민주주의 만세’ ‘학원의 자유를 달라’‘학원을 정치도구로 삼지 말라’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이승만 하야 직후인 4월 27일에는 충주고등학교 학생 중심으로 선무반을 조직하여 시국 수습을 위해 노력하였다.

1970년 후반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의 절차적 정당성이 취약한 상황에서 전개된 민주화 운동 시기에 충주에서는 농민 중심의 구조적 개혁 노력이 부분적으로 진행되었다. 1977년 7월에 창립된 한국가톨릭농민회 충북지구연합회 충주지회를 중심으로 쌀 생산비 조사 활동 및 추곡 수매 보상 운동을 전개하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전개되던 6월 28일 충주 시내 일원에서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및 민주 헌법 쟁취를 위한 충주 시민 시위가 있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1987년 8월 15일 충주중원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창립되었으며, 그 직후 야당 인사와 함께 충주중원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여 충주 지역의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87년 당시 충주 지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충주 출신 중심의 중원민우회를 결성하여 활동한 것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충주 지역 민주화 운동의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충주 지역의 민주화 운동 각 부문의 연합 형태인 민주주의민족통일 충주중원연합(1992)을 결성하여 민주적 과제의 전국적 이슈와 지역적 과제를 공동으로 대응하였으며, 2000년 초에는 충주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하여 정치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건국대학교 학생회와 충주대학교 학생회가 구성되면서 충주 지역 민주화 운동과 사회 운동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농민 운동]

1987년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충주 지역에서도 농민 운동, 교육 민주화 운동, 환경 운동, 여성 운동 등 각 부문 운동 단체가 생겨났으며, 다양한 사회 운동도 전개되었다. 그 중 가장 주도적이고 지속적인 역할을 한 사회 운동은 농민 운동이었다. 1987년 7월에는 자발적인 농민 운동 단체인 중원농민회(1995년 도농 통합과 함께 충주시 농민회로 변경)가 창립되어 농·축산물 수입 개방 반대 운동, 고추 피해 보상 운동, 쌀 생산비 보상 운동, 의료보험 통합 운동, 신자유주의 반대 및 한미FTA 저지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2008년 최근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고시 철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육 민주화 운동]

교육 민주화 운동은 1988년 6월 민주 교육을 위한 충주교사협의회 결성과 1989년 6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충주지회 결성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교육 민주화 운동 초기에는 전교조 결성과 함께 해직된 교사들의 권익 보호와 전교조 합법화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전교조 합법화 운동은 충주 지역에서도 전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해직된 교사들을 보고 참교육 실천을 위한 중·고등학생 모임 ‘사람사랑’이 결성된 것은 교육 민주화 운동의 충주 지역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9월 7일에는 충주고등학교 학생 심광보가 참교육을 외치며 분신·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교조 합법화 운동은 1999년 1월 ‘교원노조법’이 제정되고 해직된 교사들이 복직되면서 새로운 전환을 하였다. 2008년 현재 전교조 충주지회를 중심으로 한 교육 민주화 운동은 교육과정 개편 운동, 교원 평가 저지 운동, 학원 자율화 반대 운동, FTA 및 교육 개방 반대 운동 등 교육 정책에 대한 대안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환경 운동]

충주 지역의 환경 운동은 1994년 12월 19일 충주환경운동연합 창립을 계기로 본격화하였다. 충주환경운동연합은 그동안 생태 조사 및 자료집 발간, 문장대·용화온천 개발 저지 운동, 각종 선거 출마자 환경 정책 다짐 운동, 달천댐 건설 반대 운동, ‘가금~칠금 국가지원 도로 확·포장 공사 도로 구역 결정 처분 등의 무효 확인 소송 등 충주 지역의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 및 정책 대안 운동을 추진하였다. 2008년 현재 충주 지역의 환경운동은 17대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경부운하 건설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충주 지역 환경 운동의 또 다른 형태는 생명 존중의 세계관에 따라 생산물 직거래와 다양한 협동 생활을 통해 농업과 자연 생태계를 살리고 더불어 사는 생명 운동이다. 2004년 4월 창립된 한살림충주제천생활협동조합은 생산자와 소비자간 농산물 직거래를 위해 매장을 운영함은 물론 농업 회생 촉구 운동, 한미 FTA 반대 운동, 생명 평화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 운동]

충주 지역의 문화 운동은 1971년 7월 10일 창립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와 1997년 5월 10일 창립된 한국민족예술인연합회 충주지부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는 충주 지역 예술문화인의 상호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옹호하며 향토 예술의 창달로 충주 지역 사회의 예술 문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에는 한국국악협회 충주지부, 한국무용협회 충주지부,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 한국미술협회 충주지부, 한국연극협회 충주지부, 한국연예인협회 충주지부, 한국음악협회 충주지부, 한국영화인협회 충주지부, 한국건축가협회 충주지부, 한국사진작가협회 충주지부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창립초기부터 매년 우륵문화제를 개최하여 2008년 7월 현재 총 37회 실시하였다.

한국민족예술인연합회 충주지부는 1980년대 중반 문화 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던 문화패 ‘웃다리’를 시작으로 놀이패 몰개, 풍물굿패 몰개 등을 중심으로 민족 예술을 지향하는 예술인들의 상호 연대와 공동 실천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 통일 그리고 민중의 복리 증진에 기여함은 물론 민족 문화의 발전에 헌신함을 목적으로 1994년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1997년 5월 창립되었다.

한국민족예술인연합회 충주지부 창립 이후 시민과 함께 하는 정월대보름 행사, 충주민족예술제, 단오맞이 대동굿 등을 매년 추진하고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연합회 충주지부에는 풍물굿패 몰개 중심의 풍물위원회, 소리마을 중심의 음악위원회, 민족문학작가회의 중심의 문학위원회, 극단 연극시인 중심의 연극위원회, 미술위원회 그리고 택견원형보존회 중심의 무예위원회 등 6개 분과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여성 운동]

충주 지역의 여성 운동은 1995년 2월 23일 설립된 충주시 여성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건전 가정 육성을 위한 여성 교양 사업, 여성 권익 보호 사업, 자원 봉사 활동과 사회 복지 사업, 소비자 보호 사업 및 환경 보호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충주시 여성단체협의회에는 충주시 미용사회, 충주시 주부클럽, 충주시 대한어머니회, 충주시 새마을부녀회, 충주시 새마을부녀후원회, 충주YWCA, 충주주부교실, 재향군인여성회, 충주어머니회, 매선라이온스클럽, 아이코리아, 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들의모임, 새마을사랑모임회, 충주시 농가주부모임 등 충주 지역의 여성 운동 사회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주요 사회 운동 단체]

충주 지역에는 다양한 사회 운동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2005년 3월 15일 충주사회단체연합회는 회원 단체 간 상호 협력과 지원, 충주 시민의 권익 보호, 지역의 발전을 위한 실천적 시민 운동 전개, 건전한 시민 참여와 여론 형성,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견제, 지지와 협력 활동 등 충주 발전을 위한 제반 활동을 전개함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충주사회단체연합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 단체들을 보면, 충주시 새마을회, 대한노인회 충주시지회, 한국농촌지도자 충주시연합회, 중원연구원, 청주지방법원법무사회 충주지부, 충주사과발전회, 충주시 지체장애인총연합회, 충주시 여성단체협의회, 충주시 새마을부녀회, 충주친환경농업인연합회, 옥외광고협회 충주시지회, 충주시 이통장협의회, 충주산림조합, 충주시 중소상인연합회, 충주시 생활개선회, 중원민속보존회, 한국농업경영인 충주시연합회, 해병대 충주시전우회, 새마을지도자 충주시협의회, 서로돕기시민모임협회, 한국노총 충주지역지부, 충주시 새마을사랑회, 바르게살기운동 충주시협의회, 대한미용사회 충주시지부, 한국BBS 충주시지회, 자연보호연맹 충주시협의회, 전아연 충북지부회, 충주개인택시지부, 전국주부교실중앙회 충주시지회, 환경실천연합 충주시지회, 환경보호국민운동본부 충주시지회, 야생동물보호협회 충주시지부 등으로 그 목적과 특성 그리고 활동도 다양하다.

[의의와 평가]

2008년 현재 충주 지역 사회 운동의 주요 관심사는 경부운하 건설을 둘러싼 환경 문제와 지역 발전 문제이다. 이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가 제기하면서 전국적 이슈로 등장한 환경적 쟁점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국정 및 지방 행정에 시민 사회 운동 진영의 참여를 통해 운영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이른바 협치가 다양한 현대 사회의 새로운 국정 운영 모델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충주 지역의 시민 사회 운동 및 단체의 책임 있는 사회적 실천이 요구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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