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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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天壽 |
영어음역 | Seok Cheon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읍리(邑吏).
[가계]
본관은 충주(忠州). 도사(都事) 석광필(石光弼)의 고손이다. 작은아버지는 석감(石鑑)이며, 아들은 석응선(石應璿)으로 사마시에 합격했다.
[활동사항]
석천수는 예조(禮曹) 및 병조(兵曹)의 수교(受敎)를 수록한 『호성공사실(護聖公事實)』중의「호성사고유문(護聖祠告由文)」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피난해 있던 어느 날 밤 교동(校洞)에 들어갔다가 왜병의 방화로 마을이 불타는 것을 보고 작은아버지 석감과 화염을 무릅쓰고 향교에 뛰어들어 오성(五聖)의 위패를 모시고 심항산(心項山) 옛 절에 모셔두었다가 난이 평정된 뒤에 다시 대성전(大成殿)을 세워 봉안했다.
[상훈과 추모]
숙종 때 장례원 판결사(判決事)에 증직되었다. 지방의 유림들이 향교 앞에 호성사(護聖祠)를 세워 두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석전제(釋奠祭) 때 동시에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