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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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土-寅- |
영어음역 | Yi In |
이칭/별칭 | 야수(野搜),소옹(素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야수(野搜), 호는 소옹(素翁). 할아버지는 이희선(李喜善)이며, 아버지 충강공(忠剛公) 이상급(李尙伋)이다.
[활동사항]
이인은 장유(張維)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36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하였다. 1642년 문과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라 검열·전적·지평 등을 역임하고, 1645년 필선을 지냈다. 1646년 개성경력으로 나가 음사(淫祀)를 금하였다. 1649년 영암군수로 있을 때 민막십여사(民瘼十餘事)를 상소하여 임금이 모두 받아들였지만 1652년 이 일로 무고를 당해 원성으로 정배되었다.
1657년 성균관직강·북청판관, 1658년 사예·양양부사, 1661년(현종 2) 정주목사 등을 지냈다. 1662년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청나라 역관의 힘을 믿고 작폐하는 자들을 엄단하였다. 1664년 동부승지·성주목사, 1666년 형조참의 등을 역임했으며, 1669년 제주목사로 임지에서 죽었다. 박세견(朴世堅)이 “제주목사 이인이 바다 밖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었으니 생각해 주어야 할 듯합니다.”고 상소하자 현종이 “그의 상여가 지나는 도(道)로 하여금 담군(擔軍)을 차출해 호송하게 하라.” 라고 명하였다.
[묘소]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엄동(奄洞) 몽산(夢山)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