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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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道傳 |
영어음역 | Jeong Dojeon |
이칭/별칭 | 종지(宗之),삼봉(三峰),문헌(文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정미 |
[정의]
고려 후기 충주사록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봉화호장을 지낸 정공미(鄭公美)의 4세손으로 검교밀직제학을 지낸 아버지 정운경(鄭云敬)과 어머니 단양우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정도전(鄭道傳)은 1337년(충숙왕 복위6) 단양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남한강의 도담삼봉을 좋아해 정자를 짓고 즐겨 찾았고, 도담삼봉의 이름에서 삼봉이라는 호를 가져왔다. 1360년 충주에서 진사시에 급제하고, 1362년 문과에 급제하여 충주에서 최초의 관직인 충주사록으로 역임했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 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를 거쳐 1370년(공민왕 19) 성균관박사, 1371년 태상박사가 되었다.
1375년(우왕 1) 북원의 사신을 맞이할 때 권신 이인임(李仁任)·경부흥(慶復興) 등의 친원배명 정책에 반대하다가 나주 회진현 거평부곡(현 전라남도 나주시 소재동)으로 유배되었다. 1337년 유배에서 풀려나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1383년 동북면 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가 인연을 맺었다. 1384년 전교부령으로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이 되어 정사 정몽주(鄭夢周)를 수행해 명나라에 다녀왔다.
1385년(우왕 11) 성균제주, 남양부사를 지내고 이성계의 천거로 성균관대사성에 올랐다. 1388년(우왕 18) 6월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실권을 장악하자 밀직부사에 올라 조준(趙浚) 등과 전제개혁을 적극 건의하고, 조민수 등 구세력을 제거하여 조선 건국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어 조준·심덕부 등과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여 좌명공신으로 충의군에 봉해져 삼사우사가 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지경연사를 지낸 뒤 정당문학으로 성절사겸변무사의 정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이성계가 명나라를 침공하려한다는 윤이·이초의 무고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도평의사사동판사, 성균관대사성, 지문하부사, 대사헌, 삼사부사를 역임하고 1391년 이성계가 군사권을 장악하여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자 우군총제사가 되었으나 구세력의 탄핵을 받아 경상도 봉화로 유배되었다.
1392년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이성계가 황해도 해주에서 사냥 중에 낙마한 사건을 빌미로 정몽주 등의 탄핵을 받아 보주(현 경상북도 예천군)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방원에 의해 정몽주가 살해된 후 풀려나 1392년 7월 조준·남은 등과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개국의 주역이 되었다. 개국공신 1등으로 문하시랑찬성사·도평의사사동판사·판호조사·판상서사사·보문각대학사·지경예문춘추관사·의흥친군위절제사 등 여러 요직을 겸하면서 실권을 장악하였다.
1392년 겨울 사은사겸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393년(태조 2) 문하찬성사로 동북면도안무사가 되어 동북면 개척에도 힘을 기울였다. 1394년(태조 3) 판의흥삼군부사로 경상도·전라도·양광도의 삼도도총제사가 되어 지방의 재정 및 병권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다. 한양 천도 때는 궁궐과 종묘의 위치 및 도성의 기지를 결정하고 궁·문의 모든 칭호를 정했다.
1396년 표전(表箋) 문제로 명나라가 내정을 간섭하자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서 군비를 정비하고 사병 혁파를 추진했다. 1397년에는 동북면도선무순찰사가 되어 성과 보루를 수축하고 군현 및 참(站)의 이름을 개정하였다. 1398년(태조 7) 왕세자 이방석(李芳碩)을 옹호하다가 제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참수되었다. 당시 나이는 61세였다.
[학문과 사상]
정도전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아버지의 친구인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정몽주·박상충·박의중 등과 수학했다. 불교를 배척했고, 성리학 외에도 군사·외교·역사·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서 해박한 지식과 안목으로 500년 조선왕조의 토대를 구축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 『심기리편(心氣理篇)』, 『감사요약(監司要約)』, 『경제문감(經濟文鑑)』, 『경제의론(經濟議論)』, 『심문천답(心問天答)』, 『팔진삼십육변도보(八陣三十六變圖譜)』, 『오행진출기도(五行陣出寄圖)』, 『강무도(講武圖)』, 『진법(陣法)』, 『진맥도결(診脈圖訣)』, 『태을칠십제산법(太乙七十諸算法)』, 『상명태을제산법(詳明太乙諸算法)』, 『불씨잡변(佛氏雜辨)』 등이 있다. 특히 『불씨잡변(佛氏雜辨)』은 조선시대 배불숭유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저술이다. 작품으로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 「신도가(新都歌)」 등이 있다. 정도전의 시문을 모은 『삼봉집(三峰集)』, 『금남잡영(錦南雜詠)』, 『금남잡제(錦南雜題)』 등이 전해지고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