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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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代孝子門 |
영어의미역 | Dutiful Son Entrance of Three Generations |
이칭/별칭 | 문화유문 삼대 효자각(文化柳門 三代孝子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산 86[감노로 98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봉희 |
성격 | 효자문(孝子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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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716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산 86[감노로 987-1] |
소유자 | 문화유씨 종중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문.
[개설]
1716년(숙종 42)에 명정(命旌)된 문화인 유충건(柳忠健)과 아들 유시량(柳時亮), 손자 유송제(柳松齊)의 3대에 걸친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문이다. 유충건은 유몽정(柳夢鼎)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광해군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36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죽을 먹으며 시묘(侍墓)하다 묘소 아래에서 죽어 현종 때 호조정랑에 증직되었고, 1716년(숙종 42) 정려를 명받았다.
유시량은 인조 때 사어(司禦) 벼슬을 지낸 인물로, 10세 때 부친상을 당해 애통해 하면서도 시존(侍尊)하는 절차가 어른과 같았으며, 장성해서도 지성을 다해 효도하고, 모친이 병을 얻어 위독하게 되자 대소변을 맛보며 단지(斷指)를 하여 6년이나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이에 현종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증직되었고, 정려를 명받았다.
유송제는 효종 때 장령(掌令)을 지낸 인물로, 부친이 충치가 심해 음식을 못 먹자 손수 음식을 입으로 씹어 입 속에 넣어주는 등의 효성을 보였으며, 아우 유계제(柳桂齊), 유회제(柳檜齊)와도 우애가 돈독하여 향리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현종 때 승지(承旨)를 증직하였고, 숙종 때 정려를 명받았다.
[위치]
안락리 소재 수상초등학교를 지나 본평마을과 능안마을 사이 남북으로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유용량(柳用良) 묘와 유몽정(柳夢鼎)의 묘 근처이다.
[변천]
3대에 걸친 효자문으로, 중수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유시량과 유송제는 현종 때 정려가 명해졌고, 숙종 때 유충건에 대한 정려가 명해진 것으로 보아, 1716년에 3대에 걸친 효자문이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
덤벙주초석을 놓고 원형주를 세워 공포(栱包)를 생략한 굴도리집으로 결구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대량 상부에 대공(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도록 한 3량집이다.
세 개의 편액에는 각기 ‘효자증통훈대부호조정랑행통훈대부종부사주부유충건지문(孝子贈通訓大夫戶曹正郞行通訓大夫宗簿寺主簿柳忠健之門)’, ‘숙종병신명정동상갑신오월입효자증통훈대부경흥창사행어모장군세자익위사사어유시량지문(肅宗丙申命旌同上甲申五月立孝子贈通訓大夫慶興倉寺行禦侮將軍世子翊衛司司禦柳時亮之門)’, ‘통훈대부승정원도승지제교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예문관직제학상서원정행통훈대부사헌부장령겸춘추관편수관유송제지문(通訓大夫承政院都承旨製敎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藝文官直提學尙瑞院正行通訓大夫司憲府掌令兼春秋館編修官柳松齊之門)’이 각자되어 있다.
[현황]
동남향으로 배치된 효자문으로, 앞면 오른쪽 칸에는 유충건의 편액이, 중앙 칸에는 유시량의 편액이, 왼쪽 칸에는 유송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문화유씨 남성들의 3대에 걸친 효성으로 인해 세워진 효자문으로, 그들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잘 보존,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