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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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原道 |
영어의미역 | Jungwondo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최규성 |
[정의]
995년(성종 14)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는 전국을 통일된 국가체제로 다잡기 위하여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일대 개편을 단행하지만 중앙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목민관을 파견하지는 못하였다. 이 후 983년(성종 2) 12목이 설치되어 목사가 파견된 데 이어, 995년 7월에 중앙정부에 의한 실질적인 지방통치를 시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려 최초로 전국을 10도로 분할하여 관리하는 10도제가 시행되면서 중원도는 그 하나가 되었다.
[관련기록]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성종 을미 14년 7월조 기사에 관련 기록이 나와 있다.
[변천]
1005년(목종 8)까지 10도제가 유지되다가 이후 수차례의 변화를 보게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이르러 4도호(都護) 8목(牧) 56지주군사(知州郡事) 28진장 20현령의 외관 조직으로 개편되면서 고려의 지방제도는 일단락을 보게 되었다. 고려 중기에 이르러 지방군현에 대한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군현 사이의 중간기구로서 5도양계의 설치를 보게 되었다.
[내용]
10도는 중원도를 비롯하여, 관내도·강남도·영남도·영동도·산남도·해양도·삭방도·패서도 등이었다. 이때 중원도가 13주 42현을 관할하게 하였던 것으로 볼 때 현재의 경기도 남부 지역과 충청남도·충청북도 지역의 상당 부분을 관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원도(中原道)란 도명은 치소로 삼은 중원경(中原京)의 명칭에서 따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 5경의 하나인 중원경(中原京)이 충주에 설치되면서 ‘중원(中原)’이라는 주호(州號)가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9세기 말 후삼국시대가 전개되면서 5소경체제가 무너지고 중원경 체제에도 변화가 왔다. 충주는 이 후 중원부(中原府), 또는 중주(中州)란 이름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중부 내륙 지역을 대표하는 거읍(巨邑)으로 살아남았다. 마침내 중원도가 설치되면서 그 치소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또 옛 중원경 시대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의의와 평가]
고려 성종 때 실질적인 지방통치를 시도하기 위한 차원에서 10도제가 실시되면서 목종 대까지 충주는 중부 내륙지역의 수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충주는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중부 내륙의 거읍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 전기에 충청도의 수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