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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역사와 문화.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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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고구려의 지명. 국원성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고구려가 한반도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확보한 거점 지역인 오늘날 충주 지역에 성을 쌓고 붙인 이름이다. 이 지역은 신라가 차지한 후 진흥왕 대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으로, 경덕왕 대에는 중원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가 건국되고 나서 태조에 의해 충주라는 명칭으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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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치된 행정구역. 6세기 중엽 신라의 진흥왕은 활발하게 영역을 확장하며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그 결과 동북쪽으로는 함경도의 마운령과 황초령, 서북쪽으로는 한강 하류지역까지 차지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고구려가 장악했던 국원, 즉 충주 지역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이듬해 귀족 자제와 왕경(王京) 6부(部)의 부유한 백성을 국원소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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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옛 이름. 『고려사(高麗史)』에는 충주의 다른 이름으로 대원(大原)과 예성(蘂城)이 등장한다. 그 중 대원은 고려 성종이 정한 별호라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성종 이후부터 충주라는 공식 명칭과 함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충주를 대원이라 부른 사례가 너무 단편적이고 부족하기 때문에 유래를 확인하기는 어렵고, 다만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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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의 별칭. 『고려사(高麗史)』에는 충주의 다른 이름으로 예성(蘂城)과 대원(大原)이 등장한다. 그 중 예성은 대몽항쟁의 공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별호인데, 이후부터 충주라는 공식 명칭과 함께 별칭으로 불렸다. 현재까지도 충주의 학교·단체 등의 이름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고려사』에는 예성에 “1255년(고종 42)에 다인철소(多仁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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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6세기경 신라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던 충주 지역을 빼앗은 뒤 그곳에 국원소경을 설치하였다. 7세기에 접어들어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과 중국의 당, 일본까지 관련된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신라는 백제를 통합하고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장악했으며, 고구려는 당에 의해 멸망되고 그 땅에서 발해가 건국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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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현재 충청북도 충주 지역은 신라의 중원경에서 고려 940년(태조 23년) 충주(忠州)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충주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983년(성종 2년)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이곳에 목(牧)이 설치되었다. 이후 고려의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부분적으로 행정 단위의 명칭이 변경되기도 하였으...